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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별하 Oct 15. 2023

이상한 출석부

-이름의 힘


아이들 가르치던 일을  접고 그림책 출판사에 다닐 때였다. 그래도 아쉬움이 있어하던 차, 우연한 기회로 일주일에 두 번, 집 가까운 초등 돌봄교실에서 저녁 글쓰기를 지도했다. 


돌봄 야간반이라 불렀는데, 퇴근이 늦은 부모님들을 위한 돌봄시스템이었다. 글쓰기 수업이었지만 나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나누어 동화구연, 시낭송, 토론, 동시집 읽기, 시 쓰기 등을 다양하게 가르쳤다. 일찍 집으로 가던 몇몇 아이들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그날 만은 늦게 귀가하기도 했다. 한 해는 시낭송 대회에 여러명을 지도하여 데려갔는데 그중  한 녀석이 대구예선에서 1등, 서울 본선에서도 1등을 하여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3년동안 아이들의 글과 그림을 모아 문집도 3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실험정신으로 내가 가르치고 싶은 것을 맘껏 시도해 본 즐거운 시간이었다. 나를 믿고 맡겨준 돌봄 선생님께 두고두고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초등 저학년이 많은 돌봄교실은 평온한 날보다 늘 사건 사고와 티격태격 다툼이 많았다. 새학년이 시작되는 때는 더욱 그랬다. 제각각의 개성으로 그야말로 조용한 날이 없었다. 우는 아이, 소리치고 싸우는 아이, 욕설하는 아이, 낮에 학급에서 있었던 일로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주의가 주어져 잘 지켜 보아야 하는 아이, 손가락을 빨아 늘 몸에서 냄새가 진동하는 아이, 냄새가 나서 못 견디겠다고 이르는 아이등등으로 시끌벅적했다. 돌봄선생님은 스무명 넘는 아이들을 나긋한 말투로 감당이 안되는지, 칭찬과 꾸지람, 부탁과 협박, 회유를 번갈아 쓰며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는데  반쯤 영혼이 나간 얼굴로 자주 힘들다고 했다.


싸우고 소리치는 게 일상이어서 하루는 내가 제안을 했다. 

"이름 대신 불리고 싶은 예쁜 별명을 짓고, 거기다 '님'자를 붙여 부르기로 하자."
그랬더니 '송이'가 제일 먼저 자기를 '행복님'이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그러자 너도나도 자기별명을 지어 발표를 한다. 

친구들이 '님'자를 붙여 불러준다.

삭막한 돌봄교실에 웃음꽃이 피었다.


싸움을 잘 걸어 친구들로부터 기피대상 1호인 재호가 뜻밖에도 자기를 '시인'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그 순간 나는 무척 놀랐고, 반가웠다. 그때 우리는 한창 도서관에 있는 시집을 빌려와 소리내어 읽기도 하고 필사와 질문만들기 등의 활동을 열심히 할 때였다. 재호가 진짜 시인이 되고 싶은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시를 읽은 까닭인지 스스로 불리고 싶은 별명이 시인이라니 얼마나 기특한가 말이다. "시인님~" 친구들이 부르자 재호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순한 얼굴로 배시시 웃었다. 재호가 다시 보였다. 어쩜 재호가 시인이 될지도 모를 일이라 상상하니 더욱 기뻤다. 


아이들은 돌봄선생님도 별명을 지으라고 한다. 돌봄선생님도 쑥스러워 하시더니 '빨간모자'라고 했다. 아이들이 또 웃으며 부른다. 

"빨간모자님~"

그러자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며 귀여운 얼굴을 하고선 서울말씨로 대답한다.

"왜 불러~"

"와 하하하하하~" 또 웃음꽃이 피었다. 

 경상도 억양에 화 난 코뿔소처럼 "야들아, 조용!"을 목이 쉬어라 외치던 돌봄선생님의 마음엔 귀여운 빨간모자가 들어있었나 보다. 

모두 웃었다. 행복님, 시인님, 빨간모자님, 힘센 용가리님...

불리고 싶은 이름에 님자를 붙여 불러주자, 모두 점잖은 신사가 되고 숙녀가 된다. 

그 시간이 시가 되었다. 이상한 출석부.


'햇볕 환한 교실

선생님이 출석을 부른다


빨간모자님, 행복님, 힘센용가리님, 하늘요정님

시인님-, 시인님-


"하얀여우님, 시인님 화장실서 안 왔는데요"

수다양님 대답에 아이들이 책상을 치며 웃는다

빙그레님, 천하장사님....


일주일에 딱 한 번,

'이상한 출석부르기'

이 시간엔 말썽꾸러기 재호도 시인이 된다'


시인이 되고 싶다던 재호, 10년도 훌쩍 넘은 이야기이니, 지금은 대학생이 되었겠다. 

김춘수시인의 시 '꽃'이 생각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 


이름의 힘, 이름은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갖게 한다. 우리는 존재를 이름으로 기억하고 규정한다. 내가 부르는 대로, 우리가 불리워지는 대로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부모로부터 받은 이름을 새로 개명하는 것도, 직업에 어울리게 호를 만들고, 작가명을 지어 붙이는 것도 이름이 나를 대표하고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누가 나에게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이름을 불러 줌으로 우리는 꽃이 될 수 있다. 새로 지은 내 이름, 윤별하 참 좋다. 이름처럼 나는 별처럼 높고 가치있는 일을 하고 싶다.


#이름의 힘 #부모교육#돌봄교실

#동시로 배우는 세상

#동시집 '어느새 끈끈한 사이가 되었다' 브로콜리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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