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이야기꾼이 되고 싶다면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 로버트 브라우닝 글, 케이트 그린어웨이 그림
한때 내가 남자라면 붙이고 싶은 닉네임이 있었다. 바로 ‘피리 부는 사나이’.
‘피리 부는 엄마’, ‘피리 부는 여인’, ‘피리 부는 선생님’, 이렇게 바꾸어 볼까 생각도 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피리 부는 사나이’만큼 의미가 담아지지 않는다.
가수 송창식이 헐헐 웃는 얼굴로 기타를 치고 하모니카를 불며 부르던 ‘피리 부는 사나이’(1974년 발표)를 중학교 때부터 듣고 자랐지만 ‘피리 부는 사나이’란 이름에 매료 된 것은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에 케이트 그린너웨이가 그린 그림책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만나고부터였다.
이 책은 수려한 문장과 운율, 19세기 영국 빅토리아풍의 그림과 부드러운 목판의 색감을 느낄 수 있는 고풍스런 그림책이다. 저작권에 대한 제한이 없다 보니 검색해 보면 여러 출판사의 책이 나온다. 하지만 꼭 글 작가와 그림작가를 확인하시고 원본과 다름없는 책을 만나시길 권한다.
하멜른은 독일의 브라운슈바이크지방에 있는 작은 도시로 근처에 유명한 하노버시가 있다. 독일에 가면 꼭 가보고 싶은 도시다. 하멜른의 남쪽 성벽으로 베저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는데 이곳에는 가슴 아픈 전설이 하나 있다. 바로 ‘일천 삼백칠십 육년 칠월 이십이일’에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 마을 아이들이 몽땅 사라진 사건이다. 빠른 걸음으로 따라 갈 수 없었던 절름발이 아이 하나를 남겨 놓고 말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하멜른에 언제부터인가 쥐들이 출몰하여 여간 문제가 아니었다. 생활에 위협을 느낄 정도였으니 마을사람들은 읍장을 찾아가 이 일을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해고해 버리겠다고 윽박지른다. 하지만 읍장도 머리를 쥐어 짜 봤지만 방법을 찾지 못한다. 그때, 아주 낯선 사람이 나타났는데 빨강과 노랑이 반반인 짝짝이 옷을 입고 크고 깡마른 몸집에 바늘처럼 파랗고 날카로운 두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피리 하나로 쥐를 쫓아내 줄 테니 천 냥을 달라고 요구한다. 읍장과 마을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기 때문에 승낙한다. 사나이가 피리를 불자 마을의 쥐들이란 쥐들이 몽땅 쏟아져 나와 찍찍 끽끽 소리를 내며 피리 부는 사나이 뒤를 춤추며 따라간다. 결국 쥐들은 한 마리만 빼고 몽땅 베저강으로 굴러 떨어져 죽고 만다. 사나이는 당당히 약속한 천 냥을 달라고 하지만 읍장은 농담이었다며 오십 냥만 받으라 한다. 사나이는 ‘나를 화나게 하면 내 피리 소리로 뒤따라 오는 또 다른 무리를 보여 주겠다’ 소리치고, 읍장은 ‘어디 한 번 해보시오’라고 소리친다. 결국 사나이는 피리로 이번에는 절름발이 아이 하나만 남겨두고 마을의 아이들을 몽땅 데리고 사라진다. 지금도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지나갔던 거리를 ‘짝짝이색 옷을 입은 피리 부는 사나이의 거리’ 라고 부르고 있다.
이 사건은 한꺼번에 아이들이 실종된 고문서가 발견되어 실제 있었던 일임이 증명되었다. 마을을 습격한 쥐들은 스칸디나비아 반도 북부의 툰드라 지역에 서식하는 ‘레밍’이라 불리는 ‘나그네쥐’일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 쥐들은 무리가 일정 이상 불어나면 집단을 이루어 일직선으로 이동하여 호수나 바다에 빠져드는 습성을 지닌다. 또한 사라진 아이들은 게르만족의 동부개척시대에 젊은이들이 동부로 집단 이주한 설이나, 흑사병이거나 전쟁포로로 혹은 광산의 노동자로 끌려갔을 거라는 설 등이 있다. 하멜른은 피리 부는 사나이의 스토리텔링을 잘 살려 사람들이 찾는 도시가 되었다. 마치 지금도 피리 부는 사나이가 피리로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듯 하다.
‘피리 부는 사나이’ 이야기는 개구리를 잡으러 와룡산으로 갔다가 깜쪽같이 사라진 ‘다섯 명의 개구리 소년’ 이야기보다 몇 배는 충격적인 이야기다. 약속의 신중함과 신뢰, 정직, 믿음과 같은 도덕적 교훈을 배울 게 한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하니, 그 진실이 무엇이었는지 더 자세히 여러 가설에 대해 알고 싶어진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보다 더 이 이야기가 매력적인 것은 ‘피리 부는 사나이’가 부린 마법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사나이가 피리를 불자 쥐들이 춤을 추며 따라나섰고, 아이들도 춤을 추며 따라나섰다. 사람들의 마음을 훔쳐 배를 난파 시킨 요정 사이렌의 이야기도 떠오른다. ‘사람의 마음을 훔친’ 이 지점에 생각이 꽂힌다. 나 또한 여러 차례 아이들과 사람들의 마음을 훔쳐본 경험이 있어서다.
아이들을 앉혀놓고 책을 읽어 줄 때면 아이들의 몸은 여기 있지만, 이 세상에 머무는 게 아니라 판타지 세상, 즉 이야기 세상으로 옮겨진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속으로 생각한다. ‘오호, 이것 봐라! 몽땅 데리고 사라져도 되겠다!’ 싶은 생각, 그리고 문득 그 사나이가 떠오른다. ‘아, 피리 부는 사나이!’. 그 사나이의 피리 부는 솜씨가 사람이든 짐승이든 빠져들게 하는 이것이었구나! 어쩜, 춤을 추지 못해 따라가지 못한 절름발이 아이처럼 딴짓하느라 이야기 세상에 따라오지 못한 그런 아이 하나쯤 있는 것도 똑같다. 완벽하게 아이들의 마음을 훔쳤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된다.
모름지기, 그림책을 읽어주는 사람이라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이라면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어야 한다! 라고 빗대어 말한다. 그래야만 아이들을 이야기 세상으로 데려가 즐거움을 줄 수 있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요즘으로 말하자면 유괴범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야기꾼의 피리는 선량하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아이들과 이야기 세상으로 모험을 떠난다. 이야기 세상에서 즐거움을 주고 풍부한 문학적 경험을 갖게 한다. 무섭고 오싹한 이야기도 든든한 안내자가 곁에 있어 안심이다. 그림책에 쓰인 최소한의 정보로 그 외의 비워진 공백을 풍요롭게 이끌어 내어 즐거움을 배가 되게 해 준다. 이야기 세상의 모험을 마치고 다 같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온다.
아,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야기에 빠진 아이들의 눈동자를, 모두 깊은 무의식 세계에 도달한 상태와 같던 그 시간의 정적을 밀고 당기고 이야기로 채워 넣으며 피리를 불던 그때를, 지금 생각해도 전율이 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