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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별하 Aug 19. 2022

그림책 에세이 '엄마는 넘버 투!'

그림책 '망태할아버지가 온다' 박연철 글 그림

영화 <가위손>의 모티브가 된 그림책이 있다. 바로 19세기 치과의사였던 하인리히 호프만이 그리고 쓴 그림책 <더벅머리 페터>이다. 그 당시 부모들은 아이들이 말을 안 들으면 ‘치과의사께 데려간다’라는 말로 윽박지르곤 하여, 치과에 오는 아이들은 치과의사를 굉장히 무서운 사람으로 여겼다고 한다. 호프만은 겁에 질린 어린 환자의 긴장을 풀어주고 치료를 잘 마치기 위해 자주 이야기를 들려주다 보니 이야기꾼이 된 것이다. 
 
 <더벅머리 페터>는 책 표지가 무척 인상적이다. 얼마나 빗지 않고 얼마나 깍지 않은 것인지, 멋대로 자란 지저분한 머리와 기다랗고 휘어지게 자란 손톱의 남자아이가 정면을 보고 팔을 벌리고 서 있다. 영화 <가위손>을 인상 깊게 본 사람이라면 주인공 ‘조니 뎁’의 모습을 단번에 떠올릴 수 있다. 이 책은 호프만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주려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만든 것인데 출판 후 호불호가 무척 갈리는 당시의 문제작이다. 내용인즉 잔인한 책 내용이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부정적 평가와 다른 한편은 이 그림책으로 아이들의 나쁜 버릇을 고칠 수 있어 감사하다는 호평을 받는다는 것이다. 
 
 독일에 ‘치과의사’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망태할아버지’가 있다. 우리나라에도 어린아이가 말 안 들으면 ‘망태할아버지 잡아가라 한다!’라고 생전 보지도 못한 망태할아버지 이름을 들먹이며 겁을 줬다. 나도 솔직히 옛날 사람이라 그런 적이 있다. 그 옛날에는 ‘호랑이’가 그 역할을 해 왔지 아마. 한밤중 아이가 울음을 멈추지 않고 칭얼대자 ‘밖에 호랑이 왔다!’라고 겁을 준다. 마침 호랑이가 바깥에서 듣게 되고 ‘에헴, 역시!’하고 자기 존재감에 으쓱대고 있는데, 아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할 수없이 ‘알았다. 곶감 줄게!’ 하는 말에 울음을 멈추자 ‘이크, 나보다 더 무서운 놈이 있구나!’ 하고 소심한 호랑이가 도망간 이야기는 누구나 기억하시리라.

     

망태할아버지 이미지는 대략 이렇다. 떠돌이로 보인다. 해진 옷을 입고 지저분할뿐더러 냄새가 날 듯하다. 나이가 좀 들었고, 가까이 가면 해를 끼칠 것 같아 무섭다. 어릴 적 우리 아이들은 저희 판단에 그러한 사람이 보이면 ‘엄마, 엄마, 우리 동네 망태할아버지가 나타났어!’ 하며 호들갑을 떨곤 했다. 실제로  나는 망태할아버지를 보고 온 세대다. 망태할아버지는 1960년대 모자를 쓰고 커다란 집게와 망태를 들고다니며 지금으로 말하자면 재활용품 등을 모으러 다니던 사람이다.  사는 집이 따로 없고 거지처럼 다리밑에 움막을 짓고 모여살았다. 거지는 일을 하지 않고 우리가 아침밥을 먹고 난 시간이면 바가지를 들고 밥을 얻어 먹으러 왔지만 망태지기는 일을 하고 다녔으니 차림새는 비슷했지만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내 기억에 망태할아버지는 밥을 얻으러 오는 거지보다 무서웠다. 그 커다란 집게 때문인지도 모르겠고, 우리에게 구걸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떼쓰고 울던 아이는 ‘망태할아버지 잡아가라 한다!’는 소리에 경악을 한다. 숨넘어갈 듯 더욱 운다. 발악에 가깝다. 다음 단계, 어쩔 수 없이 다급히 발을 동동거리며 엄마에게 간다. 이제 엄마 편이다. 망태할아버지도 같은 편이다. 세상에 ‘항복’이란 이야기다. 박연철 작가의 <망태할아버지가 온다>는 아이들에게는 스릴을 주고 망태할아버지를 빙자하던 어른들에게는 한방 먹이는 통쾌한 그림책이다. 한방 먹었지만 유쾌함이 있다. 말로만 듣던 망태할아버지가 어떤 일을 하는지 그림과 글로 보여주는데, 보기에 따라 끔찍하다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밝고 아름다운 그림책도 많은데 왜 하필 이런 끔찍한 것을 읽어주냐고 한다. 엄마의 부적절한 행동과 권위를 실추시키는 이 책을 두고 ‘굳이’라는 생각에 책의 선택을 망설이는 부모도 있다. 불편하다는 이야기다. 


‘망태할아버지는 정말 무서워. 말 안 듣는 아이를 잡아다 혼을 내준대. 우는 아이는 입을 꿰매 버리고, 떼쓰는 아이는 새장 속에 가둬 버리고, 밤늦도록 안 자는 아이는 올빼미로 만들어 버린대.’.....우리 엄마가 그랬어. 난 망태 할아버지가 정말 무서워.’     


본문 내용이다. 망태할아버지는 누군가? 보지 못했고, 나타나지 않았으니 귀신인가? 하느님처럼 세상의 약자인 어린이 편은 분명 아니니, 깡패인가? 그렇다면 망태할아버지는 넘버 원이다. 망태할아버지를 들먹여 아이들을 제압한다는 것은 “너 계속 말 안 들으면 우리 형님 데려온다!”. 이쯤 되는 말과 같지 않을까? 엄마는 넘버 투?     


아이들은 세상에 억울한 게 많은 약자다. 부모는 아이를 세상으로 연결해주는 창구이고, 엄마, 아빠가 사라지면 세상이 사라지는 거다. 유치원에 들어갈 때쯤 되면 세상의 부조리함에 조금씩 눈을 뜨게 된다. 얼마나 맛있고, 재밌는 게 많은데, 안 된다고 하는 게 많다. 나는 더 놀고 싶은데 무턱대고 시간이 되었으니 그만하고 자란다. 아이는 안다. 어른은 밤이 늦도록 자지 않고 그들만의 즐거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어른은 되고, 나는 안 되고! 때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윽박지른다. '어린이세계'를 너무나 몰라준다. 부모에게 맞서거나 뜻을 거스를 때는 각오해야 한다. 세상과 맞서는 거다. 엄마 저 너머에는 정의로운 하느님이 아니라 망태할아버지가 있다. 

     

이 책은 주제도 재밌고 글과 그림이 잘 짜여 있어 좋다. 특히 아이코노텍스트를 전체적으로 잘 이용하여 심리를 잘 드러낸 점이 돋보인다. 엄마가 들려 준 망태할아버지의 존재, 아이를 몰아붙이는 엄마의 기세, 지시하는 엄마의 굳고 날카로운 얼굴, 엄마와 대치하는 위태로운 전투, 전투 후 잠자리에 누워서의 불안한 아이의 심리 등 명장면이 많다. 어느 하나를 최고의 장면으로 꼽기 힘들 정도다. 엄마와 싸울 때 의자 위로 올라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대항하는 장면을 보면 -사람이 의자 등받이 위로 올라가 서 있을 수 없을뿐더러, 심지어 이 의자는 다리가 부러져 있다- 아이의 화가 난 상태와 현재 위태로운 심리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다. 아이는 부조리에 참을 수 없다. 흡사 정의를 위해 세상에 항거하는 어른의 모습이다.      


부모와 다툼이 있을 때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죄의식을 갖게 된다. 어쩌면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과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을 배반한 듯한 도덕적 죄의식에 빠지게도 한다. 이 책에서도 그러한 부분이 잘 반영이 되어있다. 자, 그런데 반전이 있다. 망태할아버지에게 끌려가 벌을 받을까 봐 불안한 아이는 ‘항복!’의 눈물을 흘리며 엄마를 외쳐 부른다. ‘엄마!’, 엄마가 달려온다. 어라, 엄마의 얼굴이 누가 봐도 착하고 예쁜 얼굴이다. 그동안 보여 준 사나운 얼굴은 어디 갔을까? ‘엄마 여깄어.’ 아이와 엄마는 서로 안으며 화해한다. 마지막 한 페이지 그림이다. ‘엄마 등에 찍힌 선명한 동그라미!’ 저것은 망태할아버지가 말 안듣는 아이를 잡아가 착한 아이로 만들어 보낼 때 찍는 도장이다. 그럼 망태할아버지가 잡아간 것은 누구였을까? 아이들에게 물으면 ‘엄마!’라고 하지만 ‘왜 잡혀갔지?’ 라고 물으면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모른다 한다.    

 

생각해 보니 '호랑이 잡아가라 한다!' 다음으로 '순사아저씨 잡아라가 한다.'는 시절도 있었다. 순사 다음으로 해방이되고 한국전쟁이 터지고, 고아들이 생겨나면서 만들어진 것이  망태할아버지다. 아이를 공포에 떨게 하는 인물도 시대를 반영하는 걸 알겠다. 망태 할아버지가 지금도 유효한지 모르겠다. 

부모가 되어본 이는 안다. 오죽하면 있지도 않은 이야기로 아이를 협박하여 그 순간을 제압하려 하겠는가! 순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을게다.  ‘저기 아저씨가 이놈한다!' ‘망태할아버지 잡아가라 한다!’ 까지는 봐 줄만 하다. 그런데, ‘아빠 온다!’ ‘그럼, 엄마에게 다 말한다!’. 이런 말로 아이를 협박하는 일은 설마 없어야겠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믿을 만한 사람은 부모 말고 누가 있겠는가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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