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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별하 Aug 17. 2022

그림책 에세이 '우리의 태몽'

그림책 '백두산이야기'   류재수 글 그림


하늘에 별이 총총한 까만 밤이었다. 무슨 연유인지 홀로 숲길을 걷고 있었는데 조각배 하나가 하늘에서 동동 내려오더란다. 하도 신기해서 쳐다보니까 배 안에 예쁜 선녀가 셋. 그중 제일 예쁜 선녀가 배에서 내려 사뿐사뿐 걸어와 엄마 품에 안겼단다. 그렇게 나는 태어났다. “그래서 너는 어느 점집을 가서 태어난 날과 시를 넣어 물어봐도 나중에 크게 될 인물이라고 그러더라!”하고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어머니가 들려주신 태몽이다. 우리 어머니는 비교적 사남매의 태몽을 또렷이 기억하고 계셨는데 틈만 나면 어제 꾼 듯 생생하게 들려주셨다. 어릴 적에는 그 이야기가 무척 재밌었고 듣기도 좋았는데 점차 타령이 되어버린 태몽 이야기가 더 이상 흥미롭지도 않을뿐더러 그렇다고 아주 듣기 싫은 것도 아니었지만 ‘또 시작이네!’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어떤 때는 사남매의 태몽 레퍼토리가 시작되면 “깨끗한 옹달샘에 물을 떠서···” “똬리를 튼 시커먼 뱀이 발뒤꿈치를 콱!” 하고 어머니 이야기를 앞질러 흥을 빼버리곤 했다. 그런데 그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태몽 이야기가 은연중에 나에게 무언의 암시처럼 되어버렸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특별한 사람. 이다음에 큰일을 할 사람!’     

  그 무의식은 나의 자긍심이자 내면에 잠재된 힘이었다. 아주 크게 그 힘을 느낀 날을 기억한다. 결혼하고 직장 다니랴, 살림하랴 시댁이란 새로운 관계에 적응하랴 몹시 힘들었던 시기, 쉬고 싶은 마음에 친정에 들리게 되었는데 등을 보이고 누워있는 딸의 모습이 애처로웠을까 어머니가 또 태몽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어디 가서 물어도 니는 유명한 사람이 되어 큰일 할 사람이라 카던데···” 그때였다. 온기라곤 없던 내 마음에 거짓말처럼 후끈 뜨거운 기온이 느껴지더니 풀린 눈이 대번에 반짝 살아났다. ‘맞아, 내가 그런 사람이었지!’ 태몽은 어른이 되어서도 힘을 발휘한다.
 
 그 후 이 책을 만났다. 류재수의 <백두산 이야기>. 나는 늘 이 책을 사람들에게 우리나라 태몽이라 소개한다. 전집 형태의 외국 번역물과 무단 복제가 성행하던 시절, 1988년 통나무 출판사에서 펴낸 우리나라 최초 창작 그림책이다. 작가가 직접 그리고 쓴 단행본이었으니 그 당시로선 놀라운 출판물이었다. 국내 출간 이듬해 1990년, 일본의 권위 있는 출판사 후쿠인칸-쇼텐에서 출판됨과 동시에 무대극으로 꾸며져 일본 내 순회공연이 있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유난히 묵직한 책의 장정은 이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의 웅장함을 전하고자 하는 기획 의도가 읽혀진다. 


 옛날옛날 세상이 생겨나기 전에는 모든 것이 혼돈인 상태였고 아주 캄캄했다. 하늘과 땅도 구분이 없었는데 틈이 생기면서 가볍고 맑은 기운은 위로, 무겁고 탁한 기운은 아래로 가라앉아 하늘과 땅이 되었다. 그 후 빛이 생기고 생명들이 하나 둘 생기면서 사람들도 많아져 마을과 나라를 이루고 평화로운 그 나라를 조선이라 불렀다. 조선 사람들은 착하고 부지런했다.

 그들에게 고민거리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하늘에 해가 둘, 달이 둘이어서 너무 뜨겁고 추워서 살 수 없다는 거였다. 사람들이 하늘에 빌자 천지왕은 흑두거인을 보내 주었는데 실패하고 만다. 이번에는 따님왕에게 빌자 백두거인을 보내주게 되고 백두거인은 해 하나, 달 하나를 없애 조선에 평화를 가져다준다. 흑두거인은 훗날 이웃나라를 충동질해 조선을 쳐들어오지만 백두거인은 흑두거인을 물리친다.

 ‘어려움이 생기면 너희를 다시 도우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백두거인은 깊은 잠에 빠진다. 


훗날 조선은 가뭄으로 다시 큰 시련을 겪게 된다. 몇해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쩍쩍 갈라진 땅에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고,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죽을 지경에 이른다. 이때, '어려움이 생기면 너희를 다시 도우러 오겠다'는 백두거인의 말을 기억해 내고, 북을 두드리고 춤을 추며 잠들어 있는 백두거인을 깨운다. 약속처럼 백두거인은 다시 굉음을 내며 폭발하면서 비를 내리게 해 주었고 그후 다시 쓰러져 깊은 산이 되었는데, 그 산이 바로 백두산이다. 사람들은 더욱 굳게 믿는다. 언젠가 다시 큰일이 일어나면 잠자고 있는 백두거인이 일어나 우리를 도와줄 것을.

 <백두산 이야기>는 백두산과 민족의 기원을 담은 신화다. 고조선의 탄생과 우리의 조상들의 어질고 지혜롭고 부지런함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이웃 중국의 침탈로 쫓겨다니던 민족의 고난과 농경민족으로 비가 내리지 않아 겪게 되는 환란을 어떻게 이겨 왔는지도 짐작하게 한다. 중국과 우리를 상징하는 동물이 흑룡과 백호, 독수리와 학으로 상징되는 것도 알 수 있다. 흑룡과 백호가 100일 밤낮을 싸우다가 마침내 독수리로 변해 도망치던 흑룡을 백호가 학으로 변해 쫓아가 기다란 부리로 독수리의 가슴을 팍- 뚫는다. 통쾌함, 이 장면에서 아이들의 박수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독수리는 떨어져 사막이 되었다’라고 하여 그곳이 중국의 타클라마칸 사막을 말하는 걸까? 상상하게 한다. 그 밖에 기본적인 황토색과 고구려 벽화를 연상케 하는 그림, 탈춤과 농악대의 힘 있고 정겨운 그림이 한국적인 멋을 느끼게 해 준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 ‘향수’의 주인공 ‘그루누이’는 냄새에 대한 예민한 코를 가졌지만 정작 그는 아무런 냄새를 지니지 못한 인간이었다. 소설에서 ‘냄새가 없다는 것은 두려움과 혐오감을 갖게 한다’ 라고 적혀 있다. 어떤 두려움일까? 이 소설을 읽으며 생각해 본적 없는 나의 체취에 대해 생각했다. 체취란 각자의 개성과 정체성으로 와 닿았다. 특히 정체성, 사람에게 정체성이 없다는 건 두려운 일이 분명하다. 흔히 외국 나가 살게 되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고 한다.  잊고 살지만 떠나보면 안다. 모국의 중요성을. 바로 자신의 근원이며 고유한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안데르센의 아버지는 구두 수리공이며 어머니는 청소부였지만 아버지는 늘 안데르센에게 자신들의 가문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어릴 적에 들려주었다. 미운 아리오리가 바로 자신이었던 안데르센이 백조의 꿈을 가졌던 것은 아버지가 가르쳐준 자신의 뿌리에 대한 자긍심 때문이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그 수많은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기술자는 외국에서도 손재주가 뛰어날뿐더러 성실하고 책임감이 높다는 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부지런하고 선량하고 뛰어난 민족 DNA가 분명 있는 것이다. 작은 나라에서 일으키는 IT기술과 한류문화를 보더라도 말이다. 참으로 중요한 건 우리가 어디에 있건 내가 누구인지 분명히 아는 일이다. 우리에게 힘든 일이  일어난다면 또한번 북과 꽹과리를 들고 잠든 백두거인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백두거인은 다름아닌 우리의 몸속에 잠들어 있는 것이다.
 

    


- 그림책으로 놀아주세요-


#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제대로 알게 해 주세요.

# 우리 집안의 좋은 점을 찾아 들려 주세요.

# 태몽이나 아이와 관련된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이 책을 읽을 때는 서사성을 반영하여 웅장하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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