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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별하 Oct 21. 2023

내가 가식적이라고?

마을 소출력 fm방송 '윤미경의 꽃분홍 책방' 은 초대손님과 책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다. 한달에 두 번 이었지만 5년 가까이 했으니 그동안 많은 사람이 왔다갔고 걔중 몇명은 꾸준히 몇달을 함께 하기도 했다. 그중 1년은 대학교 1학년인 큰아들과 함께 진행하였는데 모자가 함께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 부러움과 칭찬을 많이 받았다. 실상은 아들에게 책도 읽히고, 추억도 만들고 싶은 나의 욕심이 앞장섰고, 아들은 그저 엄마의 바람을  맞춰주는 것이었다. "아휴, 그렇다 쳐도 아들이 엄마 뜻을 따라준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예요" 하고 사람들은 무조건 응원해 주었다. 


하루는 아들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이라는 소설을 소개하겠다고 했다. 작가의 작품을 몇권 읽은 적이 있지만 '왜 이런 책을?'이라 생각했다.  이 말은 고등학생에서 갓 대학생이 되었으니 잘 알려진 고전이나 자기계발서와 같은 책을 읽고 일상을 되돌아본다던가, 꿈과 비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책이길 바랐다는 말이다. 남들에게는 '자식들의 선택을 존중해 주라'라고 강의 하고 다녔지만 나도 어쩔수 없는 이기적인 엄마였다. 그런데 그야말로  잠깐 사이에 책 이야기에 홀딱 빠져들었다. 신선한 흥미와 작가가 만들어 낸 책 속의 탄탄한 세계관이 감탄스러웠다.  얼른 다음달이 되어 이 청년이 추천하는 또다른 책을 만나고 싶어졌다. 그 후 아들이 어떤 책을 가져오든 기대를 갖고 열린 마음으로 듣는 자세를 가지게 되었다. 


방송국이 10주년을 맞아 책을 발간하기로 한 때였다. '윤미경의 꽃분홍책방'은 기획자가 엄마와 아들이 훈훈하게 대담하는 형식으로 글을 싣자고 했다. 그런데 아들 녀석이 이런  분위기가 싫다고 했다. 엄마 혼자 책 만드는데 참여하라는 것이다. 엄마 뜻에 따라 함께 진행 해 왔지만 마치 방송이 원했던 일마냥 행복하게 엄마와 인터뷰를 하고 싶지 않다는 거다. 그건 가식이라고 했다. 싫다는 아들을 겨우 인터뷰장소까지 데리고 왔지만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을 나타냈다. 담당자는 낌새를 채고 질문지를 둘테니까 둘이서 녹음을 해 두면 자기가 정리하겠다고 스튜디어를 나가버렸다. 


가식, 이 단어를 두고 방음된 스튜디오안에서 마이크를 꺼두고 한 시간 넘게 땀을 뻘뻘 흘리며 불티나는 논쟁이 시작 되었다. 케케묵은 사건들이 다 소환되고, 둘이서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자식과 논쟁(?)을 해 본 부모라면 안다. 조금 큰 자식들은 어찌나 말을 잘하는지 대개의 부모들이 말싸움에 밀린다. 나는 쓰러지는 평정심을 바로 세우며 나의 정당성과 어떤 부분의 이해를 부탁해야 할지를 가열된 머리와 냉정한 가슴으로 답을 찾으려 했다. 마치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기분이다.  아들의 요지는 밖으로 그런척 하며 누군가에게 그럴싸한 사람으로 보여지는 게 싫다는 거였다.  엄마와 함께 방송하는 자신을 '멋진 젊은이!'로 칭찬해 주는 게 기분이 나쁘진 않지만 칭찬만큼 자신을 과대평가 받고 싶지 않고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동조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아무튼 이 논쟁이 어떻게 끝이 났느냐 하면.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너를 보여주고 싶다고? 그러면 왜 메이커 옷을 필요하니? 새 옷으로 왜 꾸미려 하니? 그건 가식이 아니니?...만약 너와 내가 다투었어. 그때 네 친구가 지나가면서 인사를 했어. 나는 현재 기분이 좋지 않지만, 오랜만에 보는 네 친구의 인사를 반갑게 받아줄거야. 왜냐하면 그 친구에게 화가 난게 아닐뿐더러, 상대에 대한 예의라 생각하거든. 이건 사회성이야. 내가 그랬듯이 너도 화가 나더라도 엄마와 관계되는 사람들에게 예의를 갖춰주면 좋겠다."고 부탁함으로 이야기가 끝났다. 아들은 나름 할 이야기가 많은 듯 한데 엄마를 봐주기로 한듯 하고 나는 아들의 의사를 받아들여 질문에 대한 답을 각자 써서 종합해 보내는 걸로 합의를 봤다. 그 치열한 논쟁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시간이 난감했지만 과히 나쁘지 않았고, 지금은 추억거리가 되어 회상한다.  


막내가 초등학교 2학년때 쯤이다. 친구가 집으로 놀러 왔다. 방안 이야기 소리가 귀를 솔깃하게 해 들어보니, "우리 엄마는 우리한테는 막 소리를 지르다가도 전화가 오면 여보세요~~ 하면서 콧소리를 낸데이..." 하며 내 흉을 보고 있었다. 한마디로 엄마는 가식적이라는 이야기다. 아이들 이야기가 사실이다. 밖에서는 교양 있게 절대 소리를 지르거나, 눈썹을 치켜 뜨지 않지만 3년터울 아들 둘에 딸 하나, 3남매를 기르다보니 소리 치지 않고 하루를 보내기가 쉽지 않다. 어느날 삼남매가 또 전화를 받는 내 목소리를 흉내를 내며 저희들끼리 깔깔거리고 웃었다. 그때 이렇게 이야기했다. "얘들아, 그건 가식이 아니야. 사회성이야. 집에서 너희들한테 화가 났다고 화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면 상대방이 얼마나 당황하겠니. 엄마는 사회성이 뛰어난 거지. 너희들도 배워야 해!" 그 뒤 우리집에서 가식적인 엄마라는 말은 들을 수가 없었다. '암, 내가 사회성이 뛰어난 게 사실이니까.'


흔히 엄마들끼리 만나 수다를 떤다라고 가볍게 말하지만 아니다. 사실은 나와 비슷한 고민과 취미를 가진 이웃을 만나 격없이 나를 표현하고, 표현하면서 나를 제대로 인식하고, 지지와 공감, 위로를 받는 치료와 힐링의 시간이다. 아이들의 수다도 그렇다. 수다는 쓸데없는 것이 아니다. 


밥 먹을 땐

조용히

밥만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만


우리가 목빼고

점심시간 기다리는 건


밥맛보다

더 맛있는 

수다 맛 때문이라는 걸

선생님은 정말 모르신다

                            .... 수다맛 전문(윤별하)



유대인들은 "내가 하루라도 더 살아야 하는 이유는 이 세상이 더 나은 방향을 발전하는데 기여하기 위함이다!"라고 한다. 우리나라 노인들에게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실까? 이른 아침이면 어김없이 골목 안을 깨끗이 쓸고, 길을 가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을 만나면 슈퍼에서 야구르트라도 대접하고, 자투리 천으로 바지를 만들어 노숙자들에게 나눠주고, 철저한 분리수거로 환경문제에도 작은 힘을 보태는 우리 엄마는 "큰 손자 장가가는 거보고 가려면 하루라도 더 오래 살고 싶다."라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우리 형제에겐 가족의 중심이고, 이미 동네 모범이 되는 봉사를 실천하시는 엄마는 충분히 유대인들처럼 당당히 자신을 말할 수 있다. "하루라도 더 살아서 세상에 기여하고 싶다"고.


나를 예쁘게 포장하여 칭찬받고 싶거나, 변명하려는게  아니다. 그 시간을 어떤 프레임으로 보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긍정적인 프레임으로 보면 가식적 친절은 사회성이되고, 수다는 대화가 되고, 엄마의 '오래 살고 싶다'는 노인의 부끄러운 노욕이 아니라 사회적 기여로 차원이 달라진다. 오해 당하지 말고, 오해하지도 말고 나를 제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끝으로 나는 가식적이어도 친절하고 예의바른 사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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