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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ul 22. 2023

나는 아버지가 하나님인 줄 알았다

〈교회 가기 싫은 날〉11.

  2020년 6월, 교회를 떠났다. 2년 전부터 시작된 싸움이었다. 떠난다고 했을 때, 온 우주가 말리는 느낌이었다. 머리는 괜찮다고 수없이 말했지만, 가슴은 떨고 있었다. 예수가 말하지 않았던가.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 해 주고, 너희를 모욕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여라.”(눅 6:27) 나는 버림받은 이스라엘 백성처럼 무서웠다. 목사에게 대적한 사람의 최후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목사와 갈등이 시작되자, 아버지가 나를 여러 번 설득했다. “나중에 후회한다.”, “난 그 목사를 이해한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생각해라.” 나는 텅 빈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대들지 말자’ 스스로 약속했다.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라도 참았다. 엄마와 동생이 아버지에게 맞섰다가 처참해지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아버지와 동생이 충돌하면 내가 나서서 소리쳤다. “너 정신이 있는 거야? 미쳤어?” 그러면 아버지는 잠잠해졌다. 나는 아버지 편이었지만, 아버지는 내 반대편이었다. 관계 문제로 고민하고 있으면 아버지가 조언했다.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 상대의 눈으로 보면, 나는 바닥이었다. 이기적이고, 교만하며, 예의 없는 나. 내가 나에게 몸서리쳤다. 내 편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아버지가 목사 편을 드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교회를 떠나고 두 계절이 지났을 때, 아버지가 또 말했다. “모두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이야. 누군가와 싸우는 건, 그걸 만든 하나님과 겨루는 거지….” 눈을 질끈 감았지만, 얼굴이 달아올랐다. 지난 2년, 바른 ‘나’로 돌아가려고 얼마나 애썼던가. 신이 버린 인생을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머리는 괜찮다고 했지만, 마음은 수없이 무너졌다.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넌 깊이가 부족해. 나이 들면 알게 될 거야. 지금 한 행동들이 뭐였는지….” 더 이상 삼키지 못하고, 따졌다. “저는 서른일곱의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깊이 있는 선택을 한 거예요.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지금은 이게 최선이에요. 제가 그날들을 견디며 얼마나 아팠는데….” 두 볼에 뜨거운 눈물이 흥건했다.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 각자의 길이 있어. 내 말이 맞다는 게 아니야. 그냥 알려주려는 거였어.” 침묵 끝에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내가 부족하지. 나 같은 사람이 무슨 장로야. 다 하나님 은혜지….”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내가 천천히 말했다. “아버지는 자신을 늘 부족하다고 하시는데, 이 정도면 충분한 삶이에요. 모두 출발점이 다르잖아요. 이만큼이 아버지 자리에서는 최선이었어요. 할아버지보다 나은 인생을 사셨으니까요. 부모의 안 좋은 습관을 끊어내고, 더 괜찮은 삶을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아버지는 그걸 해냈어요.” 아버지 말끝이 떨렸다. “그 말을 들으니까 왜 눈물이 나려고 하지?” 사자처럼 포효하던 한 남자의 가장 여린 속살이었다. 순간 깨달았다. ‘아, 이런 말, 아버지도 들은 적 없구나. 잘하고 있다고, 괜찮다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구나. 그래서 나도 듣지 못했구나. 한평생 스스로를 오해하며 살았구나.’ 아버지도 자기 자신이 늘 모자랐을 것이다. 다그치고, 몰아세우며, 혼자인 듯 생을 짊어지고 왔을 것이다.


  아버지가 말했다. “너 낳기 전에 기도 많이 했어. 종로 2가로 회사 다닐 때, 버스 정류장까지 진흙 길을 걸어서 다녔어. 찬양 가사랑 성경 구절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만날 기도했어. 지혜롭고 건강한 아이 달라고…. 너 그렇게 태어난 거야.” 여러 번 들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 말이 처음으로 내 마음 안에 박혔다. ‘나 그런 사람이구나.’ 남의 것 같던 내 삶에 그제야 내 것 같았다. ‘힘들면 울어도 되는구나. 괜찮은 척 웃지 않아도 되는구나.’ 눈가가 시큰했다. ‘뭘 하지 않아도, 그냥 숨만 쉬고 있어도, 홀로 남지 않겠구나.’ 든든했다.


  떠나는 것은 약해지는 것이다. 교회에서 밀려났고, 인생은 더없이 작아졌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살기 위해 걸었다. 이제야 안다. 실은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온 때라는 것을. 이제 그만 미워하라고, 신에게 가까워진다며 너 자신에게서 그만 멀어지라고 말이다. 나는 사랑하고 싶었다. 한 번도 산다는 느낌으로 살아본 적 없는 나를 안아주고 싶었던 것이다. 세상 끝 나에게 처음으로 손 내밀었다. 해가 뜬 아침에도, 비 내리는 밤에도, 바닥 밑에 더 바닥을 기어갈 때도, ‘나’는 ‘나’로서 아름다웠다. 그분이 늘 곁에 계셨기에…. 그러기에 당신도 아름답다. 그분이 늘 계시기에….


Photo by Liane Metzl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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