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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ul 07. 2023

나는 나의 길을 갈 것이다

〈교회 가기 싫은 날〉10.

2년 만에 사모를 만났다. ‘어색하게 인사하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속이 뜨거웠다. 예상했듯 그녀는 형식적으로 인사하며 나를 지나쳤고 휴대폰을 보다가 다른 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책을 읽는데 손이 떨리고 글자가 허공을 떠다녔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섰다가 전선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괜찮아, 괜찮아.’ 아무리 타일러도 내 마음이 내 것이 아니었다. 다시 돌아왔을 때 서운함과 두려움, 분노가 뒤섞여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여전한 그녀를 견딜 수 없었다. 모임이 끝나고 사모를 기다렸다. 그대로 집에 갔다가는 목사, 사모에 대한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길을 가로질러 그녀에게 다가서자 사모는 나를 피해 고개를 돌렸다. 다른 길로 에둘러 가려는 그녀 앞에 내가 섰다. “시간 있으세요?” “네….” 말끝을 머뭇거렸지만 잠깐 보자는 말까지 저버리지는 않았다. 카페로 가기 위해 그녀가 먼저 길을 건넜다. 나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 도로를 걸었다.


“저는 아메리카노요.” 카페의 공기는 차가웠고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내가 입을 열었다. “2019년 겨울에 뵙자고 말씀드리고, 2020년 1월에 연락한다고 하셨는데, 2년이 흘렀네요.” 수백 번 그려봐서 이미 겪은 듯한 장면이었다. 몸이 요동치고 발끝이 저릿했다. 사모는 바빴다고, 까먹어서 미안하다며 말을 이었다. “코로나 이후로 상담 일이 많아져서 오전 오후 모두 시간이 없어요. 목사님과 저는 각자의 일을 하면서 잘 지내고 있어요. 서로를 바꾸려는 교육의 방식은 통하지 않으니까 적당히 거리 두면서요.”


사모의 말이 심장에 박혔다. “똑같이 잘 지내고 있어요.”라는 말이 나를 조별했다. ‘나는 아직도 허우적대는데….’ 그들이 넘어지길 바랐다. 시편 109편을 붙잡고 처절하게 기도했다. “그가 심판을 받을 때에 죄인이 되어 나오게 하시며 그의 기도가 죄로 변하게 하시며….” 그곳에 가장 악한 시편을 퍼부었다. 하지만 나의 간절함은 오간 데 없고 모든 것이 멀쩡했다. 내가 말했다. “지난번에 마트에서 봤을 때 저를 피하시더라고요. 오래 기다렸어요. 2020년 6월에 우리가 떠난다고 했을 때 그때는 연락하실 줄 알았어요. 2021년 1월에 지휘자 이름 주보에서 바꿀 때 그때는 만나자고 하실 줄 알았어요. 2년 동안 많이 힘들었어요.” 수없이 곱씹어서 외어버린 말들이었다.


사모가 답했다. “불편해서 피한 건 사실이에요.” 잠시 침묵 끝에 사모가 말을 이었다. “목사님 설교가 잘못되었다고는 생각 안 하시죠? 목사님 동기들도 탁월한 성경 해석과 설교에 감탄해요. 인용해도 되는지 묻고요. 가르치는 방식으로 성도들을 성장시키는 건 목사님의 방식이에요. 그렇게 성공한 적이 많으니까 계속 그렇게 목회를 하는 거예요. 맞지 않으면 성도가 떠나면 되죠. 10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왜 갑자기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그렇다. 떠나면 되는 것을 왜 그러지 못했을까. 그땐 내가 그랬다. 모태로부터 목사를 대적하면 안 된다고, 교회를 떠나면 안 된다고 배웠다.


내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저희 어머님은 아직도 많이 괴로워하세요.” 나와 남편, 아이들, 아버님은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았다. 어머님은 고달프다. 교회를 안 다니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 집 근처에 있는 다른 교회를 간다. 언젠가 새로 옮긴 교회를 지나면서 어머님이 말했다. “저 교회는 1년을 다녔어도 내 교회 같은 느낌이 안 들어.” 떠난 교회는 어머님의 친정에서 시작한 교회였다. 교회를 나오는 것은 어머님의 한평생과 이별하는 일이었다. 가족들 하나둘 떠날 채비를 할 때 어머니는 여러 번 무너졌다. 사모의 말이 사무쳤다. “목사랑 안 맞으면 떠나면 되죠. 아니다 싶으면 말하면 되죠.” ‘내가 이렇게 힘이 생기기까지 얼마나 앞이 깜깜했는데…. 목사에게 반대 의견을 내고, 목사를 미워하는 일이 얼마나 큰 죄였는데….’


탁자 위에 놓인 손끝이 저릿했다. 내가 말했다. “지금 다른 지점에 있지만, 성도로서 목사에게 제 생각을 말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요. 제가 용기 내어서 말했을 때, 돌아온 건 그건 제 문제라는 말이었어요.” 사모도 인정했다. 어쩌면 목사를 나보다 더 혹독하게 겪은 사람일 테니까. 나와 사모의 관계는 괜찮았다. 문제는 아버님과 목사의 흐트러진 관계, 남편과 목사의 조각난 관계가 나와 사모에게로 번져오면서부터다. 목사는 어느 순간부터 아버님이라는 프리즘으로 나를 봤고 나를 불편해했다. 어느 날부터 사모의 눈빛이 목사와 비슷해졌다. 나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그들에게 늘 공손했던 나로서는 억울했다.


사모는 다시 한번 목사의 성경 해석이 얼마나 탁월한지 강조했다.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목사님은 학자가 되셨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목사님이 설교 시간마다 ‘마음’을 강조했는데, 저는 그 ‘마음’이 뭔지 모르겠어요. 그 부분 가장 힘들었어요. 지적인 부분에서는 탁월할 수는 있어도 ‘마음’은 없는 느낌. 제가 여러 번 손 내밀었어요. 잡아달라고 여러 번 말했어요. 그런데 매번 거절당했어요. 그런데 목사님이 말씀하셨던 그 ‘마음’이라는 게 뭘까요? 제가 아는 마음은 사랑인데, 목사님은 그 부분에서 치명적인 것 같아요.” ‘이 불경스런 말을 입 밖으로 내뱉다니…. 감히 목사를 판단하다니….’ 입술이 오돌오돌 떨렸다. 울 수 없는 울음이 꿈틀거렸다. 당장 벌을 받을 것 같은 섬뜩함이 나를 감쌌다.


성경이 율법적 완성을 말한다면 재정, 여자 문제없는 목사면 상관없다. 그러나 성경은 사랑을 말한다. 사모는 저마다 말하는 ‘사랑’이 다르다며 목사를 변호했다. 목사의 ‘사랑’은 탁월한 성경 해석을 통해 교인을 계몽하는 것이다. 마음을 깨우치고 바로 잡기 위해 얼마나 더 배워야 할까. 마음 깊숙한 곳에서 한목소리가 울렸다. ‘내가 아는 사랑은 그렇지 않다. 사랑은 그저 옆에 있는 것이다. 천 마디 말 대신 한 번 껴안는 것이다. 같이 헤매더라도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겁이 났다. 순간 내 마음을 설득하려다 그만 두었다. ‘지금 두렵구나. 망할 것 같구나.’ 위안과 염려가 뒤섞인 내 마음 곁에 살포시 앉았다.


대화가 끝날 무렵, 심장 박동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섬뜩함이 서글픔으로 누그러들었다. 사모는 방호복을 입은 듯했다. 문제없다는 단단한 외침이 사실 문제 있다는 울부짖음처럼 들렸다. ‘나도 나를 자주 속이지. 속고 있다는 것을 나조차 모르지….’ 문득 사모를 향한 회한이 피어올랐다. 목사는 취임 후, 해를 거듭하면서 기도회를 하나씩 없앴다. 내가 아는 복음은 인문학 강의, 사회 복지학을 넘어선다. 어느 순간부터 목사는 선교와 구제만 부르짖었다. 기도가 사라진 교회에서 지성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였으리라. 문득 그에게 영성을 묻고 싶었다.


한 시간, 대화의 끝이 보였다. 까만 커피가 담긴 빨간 컵이 애잔했다. 타버린 마음을 붙잡고 빨갛게 지새우던 밤 같았다. 분하고, 서럽고, 무서웠던 날들…. 마스크를 벗고 싶지 않았다. 그녀 앞에서 식어버린 아메리카노를 계산대에 반납했다. 목사나 사모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내 마음이 더 추락하면 어쩌지 걱정했다. 사모는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지난 10년 내가 참 좋아한 사람이었다. 사모는 사모의 여정을 걸어 갈 것이다. 나는 나의 길을 갈 것이다. 엉킬 대로 엉켜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대로 끝날 수도 있지만, 나는 이제 새로운 날줄과 씨줄을 감아 갈 것이다.


Photo by Lucas George Wend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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