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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민 Jun 30. 2022

싱글벙글 두 얼간이의 터키여행-1 (이스탄불)

케밥, 고양이, 돈두르마, 바가지

때는 2019년 여름, 힘들기로 소문난 본과 1학년 1학기가 끝난 직후였다. 당시 우리는 정신도 차리지 못하고 끝나버린 1학기 때문에 독기가 오를 대로 올라 있었다. 반드시 평생을 갈 추억을 남기겠다고, 마치 이번이 해외여행을 갈 마지막 기회인 것처럼 게걸스럽게 터키 여행을 결정했다. 그 해 연말에 생긴 일을 생각하면 맞는 결정이기는 했지만....


2017년 겨울에는 유럽, 2018년 여름에는 미국을 다녀기 때문에, 여행의 목적지로 일본/터키/호주가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일본은 너무 가까웠고, 호주는 당시 겨울이었다. 거기에 Grand bazaar를 꼭 가보고 싶다는 나의 입김이 더해서 터키행을 결정했다. 여행을 떠나기 얼마 전 터키에 쿠데타가 발생해 리라화 가격이 많이 내려간 것도 터키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


비행기와 숙소만 결정하면 세부일정은 어떻게든 굴러가게 되어 있다는 평범한 진리에 따라, 우리는 7박 8일 일정으로 Turkish airline 항공권을 예약하고, 이스탄불 - 카파도키아 - 데니즐리 - 페티예 - 이스탄불로 이어지는, 평이하다면 평이한 일정을 계획했다. 도시마다 반드시 해야 할 것들도 정했다. 이스탄불에서는 톱카프 궁전과 Grand bazaar를 방문하고, 카파도키아에서는 열기구를 타고, 데니즐리에서는 파묵칼레를 방문하고, 페티예에서는 행글라이딩을 하기로 했다. 가족 단위 여행객이었다면 2주는 잡아야 할 일정이었지만, 유일하게 가진 무기인 젊음을 믿고 실로 자비계획을 잡았다.


비행기에서 내려 버스를 타러 가자 우리를 반긴 것은 자욱한 담배 연기였다. 정말 눈이 매울 정도로 심했다. 터키 사람들은 담배에 대해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다. 후술 하겠지만, 카파도키아에서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도 설명하다 말고 담배를 꺼내 물곤 했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식사를 하러 나갔다. 그래도 터키인데, 첫 저녁은  케밥이어야만 했다. 시장에 가자 식당가가 이루어져 있었고, 작은 우산과 조명을 달아 두어 노천 식사가 가능했다. 본토 케밥은 외수용(?)에 비해 훨씬 정갈했다. 적당히 양념이 된 고기, 납작한 빵, 야채, 그리고 소스. 한때 이슬람 제국이었던 점이 무색할 정도로 터키의 EFES 맥주는 청량했다. 아타투르크 감사합니다.

이스탄불의 노천 식당가
케밥. 종류가 참 많았는데,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식당 인근에는 고양이들이 배회하고 있었는데, 한두 번 얻어먹은 솜씨가 아닌 듯했다. 손님이 오면 슬쩍 눈치를 보다가, 케밥 접시가 나오면 의자 밑으로 슬그머니 와서 차마 먹을 것을 나눠주지 않을 수 없는 얼굴을 들이민다. 이 고양이들은 음식을 가린다. 고기를 주면 냉큼 받아먹고, 빵을 주면 "이게 다야?"라는 듯한 얼굴로 쳐다보고, 야채를 주면 본 척도 하지 않는다. 거기다가 메인 요리인 케밥 접시가 주방으로 돌아가고 감자튀김이 상에 올라오면 유유히 사라지는 노련함까지 보였다. 내가 졌다.

이게 다야?

기분 좋게 취한 우리는 이스탄불의 중심 광장을 걷다가 아이스크림 좌판을 보았다. 돈두르마라고도 불리는 터키 아이스크림이야 서울에서도 많이 본 것이었지만, 줄 듯 말 듯 손님의 애간장을 태우다가 건네주는 이 쫄깃한 아이스크림의 본고장에 온 이상 꼭 먹어야 했다. 함께 간 친구는 출발 전 공항에서부터 하루에 돈두르마 한 개씩을 먹겠노라 다짐하기까지 했다. 돈두르마 하나씩을 주문했다. 좌판에는 두 명이 앉아 있었는데, 주문을 받고 아이스크림을 푸는 사람에게 얼마냐고 묻자 옆 사람을 가리키며 "Ask him"이라고 말했다. 이스탄불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돈두르마 하나에 보통 7-8리라, 비싼 곳은 10리라 정도 가격을 받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20리라를 부르는 게 아닌가. 친구와 나는 서로를 쳐다봤다. 어수룩한 관광객 등쳐먹었구나! 속았다는 걸 알면서도 "합쳐서 20리라라는 거지?" 라는 질문을 던져 봤지만 아니였고, 이미 아이스크림은 다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는 꼼짝없이 20리라씩을 냈다. 그 돈두르마는 결국 터키 여행을 통틀어 우리가 가장 비싸게 사먹은 돈두르마가 되었다. 심지어 묘기조차 부려주지 않았다.

20리라짜리 돈두르마. 맛은 좋았다.

숙소로 돌아오자 쿵쿵대는 음악소리가 우리를 맞았다. 1층 로비에 클럽 음악을 틀어 놓고 파티를 하잰다. 아찔했다.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alldayallnight였는데, 이 뜻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피곤하고 일정이 많은 여행객이었고, 서둘러 잠을 청했다. 밤귀가 어두운 나는 푹 잤지만, 친구는 잘 자지 못했다.


터키의 아침식사는 간단했다. 계란, 소시지, 야채, 치즈, 그리고 빵. 건강한 아침식사의 전형과도 같았지만, 시차 때문인지 밥맛이 썩 좋지는 않았다. 먹고 나오는데 호텔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우릴 보고는 Korea? Samsung!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가슴이 웅장해진다...

본격적인 관광에 앞서 현지 여행사에 들려 필요한 예약들을 하기로 했다. 몇 군데를 둘러보던 중 Paran tours라는 이름에 정감이 가서 들어갔다. Emin이라는 이름의, 친절한 남자가 우리를 맞았다. 이 남자는 조만간 의도치 않게 우리에게 빅엿을 먹일 뻔하니 이름을 잘 기억해 두도록 하자. 아니나 다를까, 한국인이 사장이라고 한다. 진짜 "파란" 투어였다. 우선 카파도키아로 가는 19:30 버스를 예약하고, 카파도키아 투어를 예약했다. 카파도키아는 주요 관광지가 널리 흩어져 있고, 교통이 좋지 않아 대부분 투어로 여행한다. 가장 대표적인 투어 두 개가 Green tourRed tour였는데, 2박할 예정이었던 우리는 각각 하나씩 예약했다. 그리고 열기구. 카파도키아의 상징과도 같은 열기구를 한국에서 예약할 수도 있었지만, 26만원이라는 상당히 부담스런 가격과 함께, 현지에서 더 싸게 예약했다는 여행기를 본 우리는 현지 예약을 시도했다. 그런데 웬걸, 300유로, 한화로 약 50만원이라는 것 아닌가. 해서 카파도키아 현지에 가서 취소표를 예약하면 더 싸게 구할 수도 있다는 Emin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카파도키아로 가는 버스는 오후 7시 30분에 출발예정이지만, 그래도 오후 6시 30분까지는 가라는 말을 남기고 Emin과 헤어졌다. 그는 이스탄불 관광을 끝내고 찾아가도 좋다며 우리의 무거운 짐을 맡아 주기까지 했다. 우리가 우리에게 닥칠 일들을 알았더라면 그에게 한번 더 확인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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