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였지만 즐거웠던 하루
이맘때면 사진 찍는 사람들의 로망이 있다
유부도에 가서 넓적부리도요를 찍는 것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요들이 잠깐 머물렀다 가는 곳이
군산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유부도이다
많을 때는 천여 마리(?) 정도의 물새들이 머문다
알락꼬리마도요, 검은머리물떼새, 좀도요, 민물도요 등등등
넓적부리도요는 한두 마리나 있을까?
사실 안 보일 때도 많다(못 찾는 건지도...)
그렇다고 새를 만나기 위해
유부도에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만조 수위가 700이 넘어야 한다
700이 넘어야 새들이 해변 가까이 앉는다
그래야 먹이활동 하고 쉬기도 하는 것을 찍을 수 있다
새를 찍는 사람들은 새들이 쉬는 것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적정거리를 유지하면서 사진을 찍는다
만조 시간도 사진 찍을 수 있는 적정 시간이어야 한다
해가 있을 때 찍어야 하니까
만조 시간이 너무 늦으면 찍을 수 없다
어제는 만조 시간이 오후 6시
만조 수위는 710 정도
3시에 약속이 되어 있어서
천수만을 들렀다 가기로 했다
천수만에 들어가니 아직 추수 전이었다
새가 있을 만한 곳은 무논(물이 있는 논)인데
몇 군데 안 보였다
한 군데 무논을 찾으니
좀도요와 꺅도요, 청다리도요들이 보였다
하늘에는 올해 처음 보는 기러기들이 날아간다
천수만에 알락개구리매가 보였다고 하기에 찾으러 가는데
멀리 하늘을 나는 제비갈매기들이 보인다
갈매기들이 나는 곳을 찾아갔더니
어제까지 서산 지역에 내린 많은 비로
천수만에서 간월호로 물을 빼내는 곳이 있었다
물을 빼면서 소용돌이치는 곳에 고기들이 보이는지
제비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날고 있었다
일단 찍기로 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제비갈매기보다 더 보기 힘든 구레나룻제비갈매기였다
한참을 찍었는데 다른 곳으로 이동을 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다시 알락개구리매를 찾아 이동했는데
B지구 무논 가까이에서 개구리매를 만났다
알락개구리매인 것 같은데 두 마리가 보인다
알락개구리매 두 마리인 줄 알았는데
한 마리는 새홀리기였다
새홀리기 어린 개체인 걸로 보아
영역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두 마리 맹금류의 공중전을 구경한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3시에 유부도에 들어갔다
물이 아직 많이 들어오지 않아 해변에서 기다리는데
멀리 저어새도 보이고
알락꼬리마도요도 떼로 보인다
멀어서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다
한참을 기다리니 새들이 날아온다
좀도요와 왕눈물떼새만 많고
다른 때에 비해 도요 종류가 많지 않았다
이리저리 넓적부리도요를 찾는데
다리를 들고뛰는 왕눈물떼새가 보인다
한쪽 다리가 꺾인 듯 보이는데
더 이상한 건 왕눈물떼새보다 작은 좀도요들이
아픈 새를 툭툭치고 지나가는 거 같다
나중에는 왕눈물떼새가 피해서 숨기까지...
큰 동물에게만 있는 줄 알았는데
작은 새들에게도 비정한 약육강식의 생리가 보였다
넓적부리도요는 물가에서 먹이활동을 한다고 하기에
카메라 렌즈로 부리까지는 구별이 되지 않아
나중에 확대해서 찾으려고
물가를 훑으면서 사진을 찍었다
한참을 찍으니 팔도 아프고 해서 쉬고 있는데
넓적부리도요를 찾았다는 소식이 들린다
찍었다는 분 가까이 가니
못 찍은 사람들을 위해 중계방송을 하신다
"가운데 나무 기둥 왼쪽을 지나갑니다"
"괭이갈매기와 나무기둥 사이에 있습니다"
"물가에서 앞으로 걸어오고 있습니다" 등등등
중계방송을 들으면서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찍은 사진을 확대해 보니 넓적부리도요가 찍혔다
"야호!" 소리를 지르며 좋아하니 옆에서 쳐다본다
그래도 좋은 걸...
유부도에 들어온다고 해서 모두 찍는 건 아니니 말이다
집에 와서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중계방송 듣기 전에도
물가를 훑으며 찍은 사진 속에
넓적부리도요가 있었다
벤딩을 한 좀도요도 보였는데
초점이 맞지 않아 내가 찍은 사진은 흐릿했다
태풍 플라산이 먼 곳을 지나간다기에
포항을 내려갈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포항에 내려간 분이 있었고
도둑갈매기를 찍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어떤 도둑갈매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올해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도둑갈매기를
여기저기서 찍었다는 소식이 들리니
환경변화로 인해서인가?
추석까지 이어진 무더위로 보아
좋은 일은 아닌 거 같다
그래도 넓적부리도요를 찍은 날이고
천수만에서 다른 새들도 만나
여러 가지로 즐거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