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오래오래 같이
나를 지키며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는 법
몇 달만에 권작가님을 만났다. 만날 때마다 슬쩍 귀띔해 주신 다음 작업의 구상이 구체화된 걸 보면 어쩐지 함께 감격스럽다. 나도 괜히 더 부지런해지고 싶은 용기를 얻는다.
잠깐 커피를 나누다가, 밤샘 작업 얘기가 나왔다. 누구에게도 방해 없음이 보장된 혼자만의 어둠이 꼭 필요하다고. 집중해서 간신히 이어낸 끈을 놓치고 싶지 않아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다가 자꾸만 밤이 더 깊어진다고. 그 마음을 너무 잘 아는 우리는, 좋아서 미치지 않으면 누가 이런 걸 계속하겠느냐고 웃었다.
프랑스에서 와서 대만으로 떠나는 작가님과 아쉬운 인사를 나누며, 우리 오래오래 같이 작업하고 또 글쓰고 했으면 좋겠다고, 매번 새로운 걸 만들어 오는 작가님처럼 나도 매번 더 좋아진 글을 보여드리고 싶다 생각했다.
저녁에 찾아간 정작가님의 전시는 신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못 보던 작품이 많으면 직업병처럼 제작연도부터 본다. 최근의 숫자들이 빽빽한 걸 보면 내 작업도 아닌데 먹먹해진달까. 작가님은 한동안 늘 새벽 4시까지 작업했다고, 그나마 마무리 즈음되어서야 깊은 밤 산책이나마 할 수 있었다고 하셨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글쓰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다른 작가가 늦은 시간까지 작업하는 걸 보면 매번 응원 반, 걱정 반이다. 잠이 모자랄 텐데, 허리가 아플 텐데, 같은 오지랖들. 하지만 건강에 안 좋은 걸 알면서도, 하고 싶은 욕심과 해야 하는 책임과 해내야 하는 신뢰와 해냈을 때의 기쁨 때문에 늘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하지 말라고 말할 수 없다.
작업 때문에 손목이나 허리를 치료받을 때마다, 병원에선 무조건 사용하지 말라고만 했다. 안 쓰는 게 최선인 걸 의사가 아닌 나도 알지만, 사는 게 또 그것만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킨다. 작업하는 인간들뿐 아니라, 모두 마찬가지일 거다. 절대적으로 안전하게 일하는 방법은 없다. 조금 위태로운 가운데 밸런스를 지키며 스스로 터득한 기술로 일하는 게 그나마 최선의 방법이다.
일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을 가끔 받는다. 물론 몸과 정신 건강을 위한 여러 플랜이 있지만, 나도 다 지키지 못한다. 심지어 상황은 모두 달라서 딱히 뾰족한 수를 건넬 순 없고 그저 공감하고 이해한다. 오늘도 조금만, 조금만 하면서 밤을 넘기는 마음, 해내야 하는 여러 역할의 틈에서 오롯이 내 것인 일을 일구는 부지런함, 잠깐 아픔도 잊을 정도로 애타게 좋아하는 마음, 각자 다른 이유의 간절함.
그렇게 현실을 비집고 올라오는 용기의 모양을 본다. 좋아하는 마음과 간절함만을 가지고는 무언가 만들기 어렵다. 그 마음을 방해하는 모든 걸 치우고 뚫고 딛고 일어나는 단단한 용기가 있어야만 결국에 무언가를 만든다. 예술 작업만은 아닐 거다. 자기 일이 평범하다고 말하는 모든 친구들에게서 나는 그런 용기를 본다.
그리고 거기서 반대로 나의 용기를 찾아낸다. 오늘 자신의 세계에 하나의 레이어를 더한 작가님과 꾸준히 신작을 선보이는 작가님을 보면서, 요 며칠 작아졌던 내 용기를 다시 꺼냈다. 전형적인 형태가 아니라도 내 용기들은 여기저기 산재해 있었다. 매일 일어나고 밥을 잘 챙겨 먹는 마음에, 일정의 막간에 다른 전시를 하나라도 더 보며 시야를 넓히려는 사소한 도전에, 내일의 계획을 세우는 희망에, 취침을 오분 늦추는 무리수에, 또, 또,
오래 건강하게 계속하잔 말을 유난히 자주 한다. 예전엔 빨리 올라가는 게 더 멋진 줄 알았다. 하지만 반짝 빛났다 사라진 걸 많이 보고 나서야 알았다. 갑자기 빛나는 것보다 꾸준히 오래 빛나는 게 더 어려운 일임을, 그렇게 오래 남아야만 이룰 수 있는 자기만의 세계가 있음을. 그래서 진심으로 모두 오래 건강하게 계속했으면 좋겠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는 간절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자기만의 밸런스를 지키며 지속할 수 있기를, 그래서 무탈하게 그 '조금'을 더 해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막간엔 꼭 숨 쉴 틈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좋아해서 애타지 않으면 도대체가 할 수 없는 이 바보 같은 일을 우리 오래오래, 같이 했으면 좋겠으므로.
길고 긴 하루였다. 시작부터 유난히 길었던 이번 주는 주말의 마감까지 더하면 아주 꽉 채워 긴 시간이 될 테다. 하지만 이번 주에 만났던 사람들과 좋았던 일들, 자기 자리에서 용기 내 지속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나도 오늘치 용기를 모아 마지막 일과를 마치고 일기를 쓴다. 고마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