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의 밸런스
서로가 가장 덜 다칠 수 있는 균형의 순간
사람의 마음속엔 누구나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한 사람의 성격을 형성해온 조건과 삶의 굴곡들, 그 모두를 거쳐 온 사람의 내부는 복잡한 형태다. 밖으로는 단순해 보여도, 누군가의 특성 뒤에는 수없이 많은 이유와 맥락이 있다.
어떤 심리적 문제와 행동을 수정해야만 본인도 타인도 행복해질 수 있고, 마침내 관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더라도 단번에 문제를 고칠순 없다. 때로는 문제의 인지조차 어렵다. 자기 마음은 너무 가까워서 더 모르는 일이 부지기수라. 상대의 심리적 문제를 수정하는 것이 당위적으로 옳다고 해서 곧바로 밀어붙이기 어려운 이유다.
그래서 가까운 사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해 본다. 그조차 그 사람의 일부이므로. 문제를 방치하거나 무조건 참는 것과는 다른데, 그가 자신의 마음을 천천히 인지하고 고칠 수 있도록 약간의 여유를 주며 수위를 조절하는 것에 가깝달까. 문제 해결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대의 마음이 많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관계에 있어서 상대의 심리적 문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반대로 내가 갉아 먹히는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내가 너무 받아준다고 했지만,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그의 지금이 형성된 과정을 알기 때문에 덮어두고 내 편의만 요구할 수 없다.
자주 하는 말이지만, 누군가의 맥락을 알면 화내기가 어렵다. 딱히 화가 없는 인간이 아닌데도 점점 화내는 일이 적어지는 이유는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사방에서 받아들이다 보니 내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음을 함께 끌어안는 건 좋지만, 자꾸 타인을 우선하고 내 마음을 돌보지 않으면 결국에는 타인을 돌볼 마음조차 남지 않는다는 것을, 몸이 많이 아팠던 어느 날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은 밸런스가 가장 큰 고민이다. 관계에서 상처를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 내가 아닌 것은 언제나 마음에 생채기를 낸다. 그렇지만 이왕이면 나도 타인도 최대한 덜 다칠 수 있는 절묘한 밸런스를 찾아내고 싶다.
퍼포먼스 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 는 약 12년 간 연인이자 동료로 함께했는데, 그들의 절묘한 밸런스를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정지 에너지>(1980)다.
두 사람은 커다란 활과 화살의 반대쪽을 각각 잡고 서서 버텼다. 누구 하나 실수한다면 치명적인 사고가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단순하지만 매우 위험한 이 퍼포먼스는 서로에 대한 신뢰는 물론 균형을 맞추기 위한 연습과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작품이었다.
"어떤 종류의 관계이건 일방적으로 한쪽이 다른 한쪽에 맞추어서는 건강한 관계가 형성되기 어렵다. 각자의 생각을 주장하고 부딪히고 맞춰가는 과정을 피곤한 다툼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이 과정은 균형을 맞추고 조화를 찾아가는 좋은 방법이다. 저울의 양쪽에 거의 같은 무게의 추가 담겨 있는 상태처럼, 적절한 균형을 이루었을 때 관계는 생기 넘치는 긴장을 가질 수 있다. 양쪽 모두가 만족하는 평화가 찾아온 상태, 그러나 변함없는 정지가 아니라 한쪽에 아주 작은 추를 더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균형이 무너질 수 있는 상태, 그래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를 바라보며 애쓰는 상태다. 사랑이건 일이건 예술이건 그런 긴장과 노력 사이에서 가장 좋은 것을 만들 수 있다."
ㅡ 책 <마리나의 눈> p.79
밸런스는 결국 신뢰와 노력, 지속의 문제다.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사랑의 문제다. 한쪽 혼자 마음이 크고 애달파서 애쓴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관계만 그럴까,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한 가지 능력으로, 혹은 한 사람의 마음으로 총량을 채울 수는 없다. 나 역시 언젠가는 그걸 잘 몰라서 혼자 애쓰고 앞서 나갔다.
물론 아직도 때로는 아끼는 이의 마음을 잠식하는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우리 모두 좀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앞선다. 내 마음 안에 펼쳐지는 그 '마음'이 너무 넓어서, 스스로 지고 일어서지 못하고 주저앉곤 한다.
그렇게 감당 못할 '마음'을 자꾸 지고 일어서려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지만, 이제는 안다. 아직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상대에게 움직일 여유를 더 건넬 만큼 내가 더 넓어질 시간을, 타인이 그 '마음'에 보폭을 맞출 시간을, 그리하여 우리 사이의 밸런스가 이루어질 시간을 말이다. 한 뼘의 여유를 더 갖고 기다리면 우리 둘 다 최대한 덜 다칠 수 있는 균형의 순간이 올 테다.
기다리는 마음의 다른 말은 좋아하는 마음이다. 어쩌면 다가서는 마음보다 더 큰, 사랑하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