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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y Apr 27. 2021

더 큰 글을,

사랑의 무게를 짊어지기 위해 쓰는 일

지난달의 북토크는 최근 가장 긴장되는 일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장소도, 처음 만나는 작가님들과 함께 하는 것도, 대학 시절부터 늘 멋있다고 생각한 선배와 같은 자리에 선다는 것도, 전부 어렵고 떨렸다.

설비 문제로 접속자와 댓글을 보진 못했지만, 나를 애정 하는 친구들이 계속 자리를 지켜 주었던 걸 안다. 저녁 시간 내내 자리를 지키는 일은 은근히 쉽지 않다. 그날만은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돌려줄 순 있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또 생각한다. 관계에서 자격이라는 건 서로가 서로에게 부여해주는 것이 아닌가 하고. 아무것도 아닌 우리는 누군가에게 자격을 부여받아 세상에 없던 의미가 되니 말이다.

나는 열다섯에 시작한 미술이라는 것에 이토록 애정, 혹은 애증이 있어서 떠나지 못하는데, 내게 사랑을 주는 사람들도 비슷한 마음이 아닐까 싶다. 비평하는 나는, 부드럽지 못하고 독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나를 단호하게 보지만, 아는 사람들은 안다. 말랑한 나를, 좋은 것 앞에서는 어쩔 줄 모르고 주저앉는 나를. 이런저런 나를 오래 보아왔기 때문에 내가 뭘 하든 그냥 애정을 건네는 것이다. 그럼 또 좋은 것 앞에서 쉽게 주저앉는 나는, 내게 선뜻 애정을 건네는 사람들 앞에서 녹아내릴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멀리서 담백한 연하장이 왔다. 염려하고 사랑하는 친구와 그의 가족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사진이었다. 어쩐지 그것만으로 눈물이 났다. 내가 아는 친구는 이렇게 별말 없는 안부라도 아무에게나 보내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또 북토크를 했던 날은, 집에 오니 갓 빨아 놓은 침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다, 그것은 딸이 무언가 하러 세상에 나서는데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뒤에서 밀어주는 엄마의 마음인 것을. 물론 이분은 매우 시크하게, "라이브 중간에 끊겨서 보다 말았다"라고 했지만. 나는 어른인 척해도 여전히 사방에서 건네준 배려와 사랑을 먹고 자란다. 언제까지 자라야 할진 잘 모르겠다.

북토크에서 미처 못한 얘기가 있다. 이 일을 계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지-라는 질문이었다. 같은 일을 할수록 자꾸 보이지 않던 어려움이 눈에 띄는데, 그걸 스스로 해결해가면서 일의 근력이 붙는다는 느낌이 들 때, 어떤 작업을 해내고 한 단계 올라섰다는 느낌이 들 때 행복하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 세계를 탄탄하게 넓혀 나가는 예술가들 사이에서 일하는 것이 좋다고, 점점 더 넓고 깊어지는 작업을 보면 내 것이 아니라도 괜히 짜릿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 사람들하고 같이 성장하면서 함께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어떤 좌절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매번 애쓰며 성취해왔지만, 이상하게도 이기고 싶은 적은 없었다. 어릴 때부터 경쟁을 피했다. 장난일수록 이기려 들지만, 큰 경쟁일수록 먼저 손을 놓는다. 딱히 깡이 없는 인간이랄까. 늘 얘기하는 요가도 그렇다. 말로는 누가 이기니 지니 하지만, 사실 같이하는 누군가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아마 다들 그럴 거다. 서로 너무 다르니까. 그런데 그 와중에 나는 또 잘하고 싶고 언젠가는 꼭 더 잘하는 상태가 되었으면 좋겠다.

도대체 이기려는 마음 없는 잘하고 싶은 마음은 뭘까 계속 생각했다. 내 잘하고 싶은 마음은 승리가 아니라, 반은 노력하고 버틴 나에 대한 보상, 반은 사랑의 무게다. 차곡차곡 어깨에 쌓인 그것을 지고 일어나 걷기 위해서 더 잘하고 싶다. 내가 넘어지면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주고, 다시 일어났을 때 진심으로 기뻐해 주던 그 사람들이 또 나로 하여금 웃길 바라므로. 사람은 모두 혼자서는 어딘가 부족하다. 나는 그들 덕분에 조금 더 견고한 일상을 꾸리고 용기 내어 쓴다.

말하지 않아도 건네주는 그런 사랑에 비하면 내가 쓰는 글은 참 작아 보인다. 어떻게 하면 그런 사랑을 넉넉히 담을 만큼 더 큰 글을 쓸 수 있을지, 사랑의 무게를 가뿐히 짊어질 만큼 쓰기의 근력을 키울 수 있을지 고민한다. 누구보다 잘하진 못해도 어제의 나보다는 잘할 수 있도록, 매일 나아지며 언젠가 완주는 할 수 있도록.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값진 일이다.

사랑은 다양한 모양이다. 똑같이 돌려받길 원하는 사랑도 있지만, 어떤 사랑의 목적지는 그저 상대의 행복이다. 그 마음에 책임지기 위해 더 큰 글을 쓰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를 생각하면 걱정이나 웃음이 번갈아 떠오르는 지금 당신, 당신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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