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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y Jun 12. 2021

과정의 묘미

봄의 마음

조금 안갯속의 날들이다. 연초부터 벌인 일이 많은데 아직 전부 준비 단계라 일의 양이 가늠이 잘 안 되어서 괜히 여유로운 기분이었다. 게다가 3월 내내 컨디션이 좋지 않아 크게 진도를 빼지 못했다. 폭풍 전야 같다. 아마 4, 5월부터는 울면서 달리겠지, 그러면 또 어떻게든 수습될 테다.


사실 올해의 결말은 대충 그려진다. 지금의 일들이 어떤 형태로 나올지 어느 정도 예상도 되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반전을 기대하진 않는다. 책 한 권 더 쓴다고 갑자기 대단해지지 않는다는 건 이미 알고 있고. 내 삶에서 작년의 역할이 `시작`이었다면, 올해의 역할은 `과정`과 `연결`, 그래서 목표는 중간이다.


영화의 결말을 알고 보는 걸 은근히 즐기는 편이다. 책을 읽다가도, 특히 쫄깃한 종류라면 슬쩍 뒷장을 들춰본다. 작가에게 이끌려 스릴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결말을 미리 안다면 숨겨 놓은 복선이나 인물의 감정 변화 같은 걸 더 디테일하게 관찰할 수 있다. 보통 같은 것을 다시 볼 때 감상하는 방식인데, 난 처음부터 그렇게 보는 것도 좋다. <식스센스>의 반전을 미리 알았지만, 연출하는 방식을 관찰하느라 상당히 재밌게 봤던 날부터다. 이야기에 휘둘리지 않고 작가의 기술을 감상하면서 같이 힘겨루기 하는 느낌이랄까.


결말로 향하는 과정이 충분히 흥미로우면, 결말이 의외로 김 빠지는 것이라도 괜찮다. 일이나 인생도 마찬가지다. 특별한 결말을 원하진 않는다. 물론 노력한 만큼 정방향의 결말이라면 좋겠지만 아주 귀한 행운이나 역대급 반전까진 필요 없다. 다만 과정이 풍성하고 재미있었으면 좋겠다.


최근에 국립현대미술관 <멀티버스> 전에서 관람한 권하윤 작가 님의 VR 퍼포먼스 작품 <잠재적인 마법의 순간을 위한 XX번째 시도>가 생각났다. VR 속에서 관객은 갇혀 있는 반딧불들을 꺼내 하늘로 날려 주고, 그들은 별이 된다. 관객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하늘에서 별이 빛나고, 걷는 방향대로 각자의 별자리를 그린다.


물론 VR 속 세상이기 때문에 내가 보는 것들이 밖에선 보이지 않는다. 허공에 대고 흔드는 알 수 없는 몸짓만 보일 뿐. 하지만 그 안의 내게는 보인다. 한 걸음 디딜 때마다 별이 하나씩 떠올랐다. 움직인 흔적이 내 것이고 내가 알면 된다. 일이나 사는 것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미래는 알 수 없고 지금 하는 일이 허공에 대고 손을 흔드는 것처럼 무의미해 보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매 순간의 스텝이 선명하게 내 것이면 족하다. 언젠가 그것을 모두 이어 만든 별자리는 분명 내 것일 테니까.


작년이 봄이라 생각했다. 긴 겨울을 보낸 뒤 15년에서 19년까지가 봄이 올 듯 말 듯한 2월이었다면, 20년은 드디어 봄이라 부를만한 3월이었다. 가슴이 뛰어서 봄인 줄 알았지만, 그럼에도 결과에 조급해하는 마음이 깔려 있었다. 일이든 관계든 다른 무엇이든. 그러다 동력이 떨어져, 연말의 마감을 마친 뒤 근원 모르는 불안으로 한동안 힘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은 애타는 마음이 줄었다. 작년처럼 가슴이 뛰지는 않는데, 어쩐지 더 따스하고 선명한 기분으로 지금을 즐기며 하나씩 스텝을 밟는 과정이 좋은 날들이다. 봄을 향해 서두르는 마음을 지나, 한창 봄을 만끽하며 다음 계절을 재촉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 그런 4월의 마음.


며칠 전엔 아주 오랜만의 연락이 왔다. 오래 고민하고 기다렸다가 용기 내서 미안함을 전했다는 걸 짐작했기 때문에 그 마음을 등지고 싶지 않았다. '사람의 관계는 가까웠다가 멀어지기도 하고, 다시 가까워질 수도 있다'라고 생각해왔다. 그렇지만 멀어진 것을 끌어오려 노력하진 않았다. 그 문장은 내게, 멀어진 것은 내버려 두어도 된다는, 조금 냉소에 가까운 말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어쩐지 끌어당겨도 괜찮겠단 생각이 들었다. 봄바람에 자연스레 등이 떠밀렸다. 작년이 나의 봄인 줄 알았는데 아마도 새봄이, 더 완연한 봄이 또 오고 있나 보다.


밤바람이 슬며시 고와졌다. 어젯밤엔 새벽녘까지 테라스에 있었는데 춥지 않았다. 어느새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었나, 세어 보다 그만두었다. 자연스레 변하는 것을 굳이 따져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자연스레 변하는 마음도 그냥 두어야지. 다만 변화를 찬찬히 살피고 느끼면서. 그렇게 천천히 계절이 변하는 것처럼, 4월 같은 한 해를 보내고 나면 신록이 빛나는 계절을 거쳐 분주한 여름이 올 테다. 이렇게 봄을 다지고 나면, 내년과 내후년이 조금 더 치열한 계절이라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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