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phy Jun 12. 2021

안전한 자리

내가 찾았듯이 당신도 내게

친구는 내게 리액션형 인간이라고, 받아주는 표시가 난다 했다. 어떤 사람에겐 절대 곁을 내어주지 않지만, 누군가를 받아들일 땐 표시가 크게 난다고, 그래서 상대는 그걸 잘 알고 내게 기대는 거라 했다. 사실 내 영역 안에 받아들인 사람에게 나는 정말 큰 수용력을 발휘한다. 가까운 친구들은 그런 관계의 모양에서 상처 받는 나를 걱정하지만 나는 또 괜찮다. 이미 처음부터 상대에게 내어 준 자리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게 누울 자리를 발견한다면 좋은 일이 아닐까.


믿는 구석이 없는 건 아니다. 절대적으로 단호한 어떤 구석이 있기 때문에, 벼랑 끝까지 몰리진 않는다. 곁을 쉽게 내어주고 남들보다 마지노선이 훌쩍 뒤에 있는 대신, 절대적인 기준을 넘는 순간 심하게 매몰차다. 가끔 친구들의 계약이나 고민 상담을 해주다 보면 발견하는 내 모습이다. 나는 사실 스스로 평가하기에 매우 냉정하고 못된 인간이다.


그런데 사실 난 누가 선을 넘는 걸 좋아한다. 좀 이상해 보이지만, 선을 넘는 걸 허용하는 사람들이란 사실 내가 허락한 안전한 사람들이다. 아무리 선을 넘어도 나의 본질을 해치지 않을, 내 마지노선을 안전히 지켜줄 사람들에게 나는 내 곁을 무한히 내어줄 수 있다. 그들이 내게 편하게 구는 게 무엇보다 좋다.


안전하다는 건 관계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나의 고유함을 침범당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행동해도 괜찮은 것, 내 존재가 어떤 식으로든 받아들여지는 것. 그저 좋아해 주는 것과는 다르다. 내게 환상을 가지고 무조건 좋아해 주는 사람보다, 내가 가진 단점까지 입체적으로 아는 사람이 편안하다.


영화 <타인의 친절> 에선 모든 인물이 어딘가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타인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친절함을 건네고 그게 결국 타인을 구한다. 누구나 유능할 수 없고, 이 사회에 딱 들어맞을 수도 없다. 모든 걸 평준화시키는 이 사회는 마치 평균적인 어떤 인간상이 있는 듯 굴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누구보다 뛰어나고 누구보다 모자라다. 그렇기에 내가 모자란 부분은 타인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이 바보 같은 사회의 기조 때문에 나는, 내가 모자란다는 것을 인정하고 타인에게 쉽게 기대도 된다는 것을 아는 데에 너무나 오래 걸렸다.


이 영화의 결말은 별것 없다. 다들 적당히 행복해진다. 물론 그들의 삶에 앞으로도 시련이 닥치지 않을 거란 보장은 없다. 하지만 내가 아는 건, 또는 그들이 아는 건, 그런 어려움이 닥쳤을 때 타인에게 기대도 된다는 것, 삶에서 의외의 도움과 친절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별 것 아닌 이 영화가 끝날 때 즈음, 내가 막다른 길에 섰을 때 받았던 작은 친절들이 생각나 눈물이 났다.


최근에 친구들의 고민이 자주 들린다. 이상하게도 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건 내가 대단한 해결책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친구들은 내가 도덕적 판단을 내리지 않을 것 같아서라고 얘기했다. 나라고 내 삶에 기준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내 삶일 뿐이다. 내가 믿는 내 친구들이 기준이 없으리라고 생각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꺼내 놓는 고민이라면, 본인도 어쩔 수 없는 것일 텐데, 거기에 내 판단이 뭐 얼마나 필요할까. 어쩔 수 없는 삶의 기로에 선 친구의 고민을 나는 그저 들어줄 뿐이다. 내가 그 친구에게 내어 준 사랑의 자리만큼. 그저 그들이 내게서 안전한 자리를 찾았으면 좋겠다.


<타인의 친절>에서 기억나는 대사는 다른 게 아니라, '저 사람은 안전해요'였다. 지나가듯 나온 대사였지만, 클라라가 안전한 자리를 찾으려 얼마나 애썼는지 알고 있었으므로 그 '안전'하다는 말이 내게도 위안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나도 안전한 친구들과 있을 때 무엇보다 안심된다. 선을 넘고 싶은 사람이라는 말에도 그저 재밌고, 질문을 수없이 듣고는 계산하지 않고 솔직히 대답해도 전혀 공격받았단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깊이 이해받았다는 느낌이 들 때, 혹은 상대방이 내게서 안전한 자리를 찾았다는 느낌이 들 때, 나는 그렇게도 그 순간이 좋은 거다. 관계와 관계가 교차하며 만든 틈에서 서로 공통된 자리를 찾아 안착했다는 그런 느낌. 그게 좋아서 나는 또 나를 열어 둔다. 어른이 되어서도 안전한 자리를 찾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내가 타인에게 안전한 자리를 찾았듯이, 내가 허락한 사람들이 내게서 꼭 필요한 안전한 자리를 찾았으면, 그렇게 내게 기댔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과정의 묘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