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어설픈 장마가 가고 푹푹 찌는 더위가 시작됐다.(그리고 이 글을 쓰는 동안 갑자기 다시 비가 꽤나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아내와 나는 7월의 한복판에서 금요일 연차를 내고 여행길에 올랐다. 이번 우리의 여행지는 충청남도 '부여'. 사실 나에게 부여는 꽤나 익숙한 도시다. 고향과 가깝기에 유년 시절부터 수차례 방문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 그러나 마음먹고 부여를 '여행'해봤다고 생각한 적이 없기에, 또 몇 군데 방문해보고 싶은 곳들이 있기에 차를 몰고 부여로 향했다.
'부여하면 빼놓을 수 없는 그곳, 장원막국수'
서울에서 약 2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부여. 그중에서도 우리가 첫 목적지로 삼은 곳은 부여 구드래 나루터 선착장 근처에 위치한 '장원막국수'였다. 장원막국수는 부여 맛집을 꼽으라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곳으로, 외관은 마치 옛날 허름한 시골집 같은, 흔히 말하는 노포 감성을 최대치로 느낄 수 있는 맛집이다. 어렸을 때도 이미 유명했던 곳이라 와서 먹어보았던 기억이 있는데, 십수 년 사이 그 명성은 퇴색하기는커녕 오히려 배가 된 것 같았다. 이곳의 메뉴는 간단하게 막국수와 편육뿐, 그야말로 자신감이 넘치는 곳이라고 볼 수 있다. 이곳에 우리는 약 11시 40분쯤 도착하였는데, 이 시간부터 이미 긴 대기줄을 뽐내며 부여에서 가장 유명한 국숫집이라는 위용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큰 걱정은 필요 없다. 후루룩 시원하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국수가 주 메뉴인만큼 대기줄은 빠르게 줄어간다. 약 15분 정도 기다리니 어느새 우리 차례가 다가왔고, 방이 아닌 평상에 있는 자리를 배정받아 막국수 2개와 편육을 주문했다.
메뉴가 간단하니,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곧바로 세팅이 시작된다. 얼핏 봐도 시원해 보이는 육수와 야들야들해 보이는 편육이 우리의 식탁으로 올라온다. 육수는 그야말로 새콤한 맛이 일품, 그리고 면발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막국수 면발보다 조금 더 얇은 편이다. 다른 계절에 먹어도 맛있겠지만, 뜨거운 여름 한복판에서 점심으로 먹는 장원막국수의 맛은 특별했다.
'부여 농산품을 활용하는 카페 단청'
막국수로 허기를 달랜 후, 우리는 다시 차에 올라 약 5분 거리에 위치한 부여 시내로 향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으면 맛있는 커피가 생각나는 건 당연지사, 미리 알아봐 둔 카페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이번에 우리가 방문한 카페 단청은 부여중앙시장 끄트머리에 위치한 곳으로, 부여에서 생산되는 농산품을 활용한 메뉴들을 선보이는 곳이었다. 카페 이름이 '단청'인 만큼 카페 내부의 일부 공간을 단청으로 꾸며놓은 것이 인상 깊었다.
이곳에서 우리가 주문한 것은 '정동두부슈페너'와 '방울토마토 그라니따'였다. 정동두부슈페너는 콩물과 커피, 메이드 시럽, 시장 참깨와 참기름이 어우러진 한국적인 스타일의 커피로, 고소함이 극대화된 맛이었다. 방울토마토 그라니따는 이와 상반되게 상쾌함이 돋보였던 디저트로, 부여군 세도면에서 자란 방울토마토와 허브를 함께 얼려 만든, 부여 농산물을 활용해 만든 이탈리아식 디저트였다. 주차하고 걸어오느라 솟아올랐던 더위가 시원한 커피와 상큼한 디저트로 깔끔하게 해결되어 버렸다.
'찬란한 백제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국립부여박물관'
부여 여행을 온다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우리의 다음 행선지였던 국립부여박물관이다. 옛 백제의 수도였던 부여를 방문하는데 국립부여박물관을 방문하지 않는 것은 수박을 사서 알맹이를 먹지 않고 껍데기만 먹는 것과 같다. 우리는 거의 딱 오후 2시에 맞춰 박물관에 입장했는데, 마침 매 정각마다 진행되는 레이저쇼가 진행되고 있었다. 어린아이들과 함께 가족단위로 방문하는 인원들이 많은 만큼, 모든 세대가 흥미를 가지고 볼 수 있는 레이저쇼를 기획한 것 같았다.
약 10분간의 관람을 마치고 총 4개로 나누어진 전시실을 관람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꼭 방문하고자 했던 곳은 '제2 전시실', 그렇다 바로 백제금동대향로가 전시된 공간이었다. 1993년 12월 12일 주차장 공사를 하던 중 발견된 이 향로는, 문화재의 가치를 심도 있게 알지 못하는 나에게도 매우 뚜렷한 인상으로 다가온 유물이었다. 제2 전시실에서는 우아하고 고귀한 자태를 자랑하는 백제금동대향로를 가까이서 관람할 수 있었고, 그 이유만으로도 국립부여박물관을 방문할 이유는 충분했다. 나오는 길에는 이를 기념 삼아 1만 원짜리 백제금동대향로 미니어처를 구입해 보았다.
'쌀로 만든 디저트를 파는 쌀굽당'
숙소로 향하기 전, 우리는 디저트 가게 '쌀굽당'으로 먼저 향했다. 부여 여행을 시작하기 전 부여 여행 유튜브 브이로그를 보기도 하고(카페 단청도 이 유튜브 브이로그에서 발견했다.), 부여가 고향인 주변 지인에게 가볼 만한 곳을 추천받아 보기도 했는데 공통적으로 언급되었던 곳이 바로 이 '쌀굽당'이었다. 부여 시장 내에 위치한 이곳은 친절한 사장님이 운영 중이셨고 매장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아 보였다. 한쪽 공간에서는 열심히 디저트가 제작되고 있어 보였고, 쌀로 만든 다양한 디저트를 판매되고 있었는데 그중 달콤하면서도 바삭한 오란다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감태 오란다, 인절미 오란다, 커피 오란다 등등 그 종류도 가지각색. 주변 지인 선물 겸, 우리가 먹을 겸 여러 종류의 오란다를 집어 들고 기분 좋게 가게를 나섰다.
'부여스러움이 담긴 숙소, 롯데리조트부여'
쌀굽당에서 디저트를 풍성히 집어 들고 발걸음을 옮긴 곳은 이번 여행의 숙소 '롯데리조트부여'였다. 처음에 부여 여행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이 롯데리조트부여 묵기 위함이 컸다. 천편일률적인 호텔 스타일이 아닌 부여의 색깔이 담겨 있는 숙소에 한 번쯤 방문해 보고 싶었기 때문. 마찬가지로 백제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디자인으로 꾸며진 '롯데리조트'와 백제 왕궁을 재현한 '백제문화단지'또한 롯데리조트부여에 함께 위치해 있으니 가족 단위로 방문하기도 참 좋은 곳이었다.
리조트는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동반객들이 대부분인 것처럼 보였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아웃렛과 붙어 있고, 박물관 관람은 물론 물놀이 시설까지 함께 있으니 아이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기에는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난 하이퀄리티의 숙소는 아니었지만, 깔끔하고 쾌적하게 묵기 좋은 기분 좋은 곳이었다.
'필수 포토스폿 그 이상, 성흥산 사랑나무'
"부여에는 하트 모양의 나무가 있대." 아내가 부여 여행 코스를 짜던 중 해준 말이다. 그렇다, 부여군 임천면에는 연인들의 포토스폿으로 유명한 '사랑나무'가 있다. 사실 이 사랑나무는 완벽한 하트 모양을 갖춘 나무가 아닌, 하트의 반쪽 모양을 한 나무이다. 이 나무에 서서 사진을 찍고, 나머지 반쪽은 편집으로 붙여 하트모양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출발 전 아내에게 '가짜 사랑나무'라고 말했다.)
디저트 쇼핑을 마친 후 리조트에 체크인을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던 우리는 다음 코스인 사랑나무 방문을 두고 고민이 많았다. 날이 많이 더웠기에 순간 다음 스케줄을 정리하고 휴식을 취할까 싶기도 했고, 리조트에서 약 20km를 차로 달려가야 했던 곳이었기에 약간 귀찮음이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 그러나, 서울에서 약 200km를 달려 부여까지 왔는데 20km쯤 더 가는 것이 대수일까. 부여까지 왔는데 포토스폿 명소에 들리지 않는 것이 아쉬워 다시 차를 몰고 나섰다.
약 20분이 걸려 도착한 성흥산. 임천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우측으로 난 산길을 차로 꼬불꼬불 따라 올라가다 보니 주차장이 나왔다. 이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약 10분간 등산을 하여 드디어 목표인 사랑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사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사랑나무보다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탁 트인 풍경이었다. 부여 방향부터 논산 방향까지 주변의 평야지대가 한눈에 들어와 순간 더위를 식혀주는 듯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등산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순간적으로 짧게나마 등산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랑나무에는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몇 팀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평소 주말에 도착하면 정말 사진을 찍기 위해 꽤나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들었는데, 우리는 평일 오후에 도착한 탓인지 조금만 기다린 후 바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농담으로 '가짜 사랑나무'라고 했을 정도로 큰 감흥이 없었는데, 막상 방문해 보니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삼각대를 세운 후 아내와 열심히 추억을 사진으로 남겼다. 포토스폿이라는 곳에 큰 감흥이 없는 편인데, 이곳 은 언젠가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한번 방문하여 사진을 남기고 싶은 명소였다.
'부여 여행의 대미, 궁남지'
부여에는 유명한 연못인 '궁남지'라는 곳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연못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보다 이곳을 더 유명하게 만든 것은 이 맘 때쯤이면 만개하는 '연꽃'이다. 나는 연꽃을 떠올리면 '온화함, 따스함' 등의 단어가 생각난다. 한 여름에 개화하는 꽃에 온화함과 따스함을 언급하는 것이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연꽃은 그처럼 은은한 매력이 있는 꽃이다. 하지만 평소에 연꽃을 보기는 쉽지 않은데, 부여의 궁남지를 방문하면 놀랄 만큼 많은 연꽃들을 구경할 수 있다.
여행 이틀째 점심을 먹은 후, 약 오후 1시 가장 뜨거운 낮 시간에 우리는 궁남지에 도착했다. 익어버릴 듯한 뜨거운 햇볕 아래 연꽃을 구경하기 위해 모인 여러 관광객들이 궁남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있었다. "너무 더우니까 진~짜 짧게만 보고 오자."라는 말을 남기며 아내와 나는 차 문을 열고 나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막상 궁남지 곳곳을 채우고 있는 연꽃들을 보자 아름다운 풍경에 '짧게'의 의미를 순간 잊고 말았다. 햇볕은 뜨거운 만큼 선명하게 궁남지를 비추고 있었고, 새파란 연잎과 은은한 분홍빛의 연꽃들은 우리를 비롯한 많은 방문객들을 반겨주고 있었다. 연꽃을 구경하며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궁남지 연못 한가운데 위치한 포룡정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포룡정까지 직접 발길을 디뎌보기도 하고,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궁남지 속 포룡정을 배경으로 사진도 한 장 남겨보며 부여 여행을 마무리했다.
'여행을 마치며'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사 온 백제금동대향로 미니어처를 책상 위에 전시해 두었다. 불과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부여 여행이 벌써부터 그립다. 최근 나는 국내 여행에 대해 권태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딜 가도 비슷한 느낌을 지울 수 없고, 지역에 대한 특색을 느끼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 부여 여행은 나의 그 권태감을 해소해 줬다. 강렬하지 않지만 은은한 지역의 특색이 곳곳에서 넘쳐났던 이번 여행은, 뜨거웠던 더위만큼이나 선명했던 기억으로 머릿속에 남아 있을 것 같다. 한 여름의 부여 여행, 꽤나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