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생리가 멈추지 않을 수 있어?

인생 2회차, 나는 오늘을 삽니다.

by 나타샤


나는 암환자다.

그리고 이름을 바꿨다.


나는 35살이다. 1년째 살아남는 중이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던 무수히 많은 날들 중하나였다. 요즘 많은 박물관에서 접하게 되는 영상컨텐츠를 활용한 전시를 메인으로 하는 전시기획이 주업무였다. 실감컨텐츠관 구축, 유물복제, 수장고(유물보관을 위한 항온항습시스템을 갖춘 장소) 시스템 확충을 중심으로 다양한 업무에 관여했다.


일 외에 개인적으로 대학원수업을 들었고, 논문주제를 잡기 위한 세미나를 진행중이었다. 타인을 위한 글이 아닌 나를 위한, 내가 세운 논리를 증명하는 글을 적기 위한 공부를 하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내고 있었다. 코로나가 확산되는 가운데 학부 수업들은 대부분 비대면으로 이어졌지만, 대학원 수업은 학부와 달리 소수만 참여하는 형태여서 주로 대면으로 이루어졌다. 물론 심각 수준의 단계에서는 비대면인 줌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그럼에도 한 강의에 참석하는 인원은 여전히 3-4명 정도였기에 매주 돌아오는 발표자료를 만들고, 참고 논문들을 정리해가는 일련의 과정들이 녹록치 않았다.


하루 3-4시간 정도의 수면과 배달음식이나 간편식으로 때워지는 식사들, 야근을 밥먹듯이하는 와중에 식사를 잘챙겨먹고 잠을 푹자는 건 욕심이었던 시간이었다. 출장도 많은 편이었고, 정부예산으로 하는 사업이었기에 전시개편이 이루어지고 나면, 다음 고용은 불확실한 상태였다. 30대 중반에 들어선 나는 여전히 불안했고, 자리를 잡아가는 동기, 선후배들을 보며 더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역사를 배워서 뭐 먹고 살래?'라는 그런 말들이 틀렸음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모든 것을 잘해내기 위해 노력했던 시기였다. 21년 3월 이직을 하고 학기가 시작하고, 4월 중순쯤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던 어느날, 시작된 생리. 매달 3일에서 5일 정도 규칙적으로 이어지던 생리였는데 그달은 많이 힘들었던 것인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생리양이 줄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4월 10일쯤 시작된 생리가 일주일, 보름, 한달이 지나도록 계속되었다. 어라...이상한데? 싶었다. 하지만 그 바쁜 삶은 나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곧 끝나겠지? 라는 마음으로 무시했다. 내가 아플줄도 모른채...


5월 초여름이 되면서 지난하게 이어지던 생리가 이상하게 점점 양이 많아졌다. 아... 좀 이상한데? 왜이러지 하면서도 나는 그달을 넘겼고, 결국 6월이 되어서야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을 직감했다. 생리양이 줄어들기는 커녕 점점 늘어났다. 평소에 쓰는 생리대로는 감당이 안될 정도였고, 1시간에 한번씩 화장실에 가야 할만큼 많은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어라? 이거...진짜 뭔가 큰일났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너무 많은 피를 흘려서 하늘이 핑돌았다. 아... 이거 생리가 아닐수도 있겠구나. 빈혈로 쓰러질 것 같은데? 하는 생각과 함께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불현듯 내 몸이 이상하다는 걸 알았던 것 같다. 빈혈을 앓았던 적이 있었던 나였기에 철분주사라도 맞을 생각으로 시간을 내서 병원으로 갔다. 혼자서는 무서워서 잘 가지 못하는 산부인과였지만, 같이 갈 사람도 없었던 나는 인터넷을 열심히 검색해서 유명하다는 곳을 혼자 찾아갔다. 그날이 6월 28일이었다. 생리가 두달넘게 계속 이어지고,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쓰러질 것 같은 날이 되어서야 겨우 찾아간 것이다.


선생님은 왜 이제 왔냐며 덤덤하게 진료를 보셨고, 내막이 두꺼우니 소파술을 진행하자고 하시며 상태가 좋지 않으니 내일 바로 시술 일정을 잡고 가라며 돌려보냈다. 나는 약이나 처방 받아올 줄 알았는데 갑자기 소파술이라니? 너무 뜬금없었지만 단호했던 선생님 얼굴에 휴가 하루도 어렵게 냈는데 팀장한테 뭐라그러지 라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끝까지 나 자신에 대한 걱정은 없었던 나였다.


집으로 돌아와 팀장에게 병원에서 다음날 간단한 시술과 검사를 해야한다고 하니 부탁드린다며 간청하는 전화를 했고, 팀장은 일정상 어렵지만, 그동안 열심히 했으니 하루 더 쉬고 출근하라는 뜨뜨미지근한 허락을 받아냈다. 찝찝하지만 허락했으니, 병원에 연락을 하고 시술시간을 확인하고 사전에 안내를 다시 전해들었다.


사실 이때까지만해도 간단하게 자궁벽에 조직을 살짝 긁어내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병원에서는 마취를 하고 진행되며, 며칠간은 무리하면 안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시술 직전에 검색을 해보니, 소파술이 낙태시술을 하는 것과 같은 방법의 시술이라는 것이었다. '아!... 그런거였구나'하고 깨닫자, 내이름 석자가 불리고 나는 수술방으로 들어갔다. 정말 생리 그깟게 안멈춘다고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은 생각을 하는 와중에 나는 잠에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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