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가 되어버렸어
내 자랑 누나야. 바보처럼 살지 마. 내가 바보 멍청이라고 그랬다고, 정말 그렇게 살면 어떡해. 그러지 마 누나야.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울지 않으려고 하는데 구멍 난 파이프처럼 자꾸 물이 솟았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녀석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소리 없는 메시지를 한참 쳐다보았다.
친구들보다 한 뼘은 작았던 녀석. 어려서 말다툼을 하면 동그란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올라 약이 올라 소리를 질렀다.
“이 바보야. 이 멍청아!”
목 아래에서 빼액 소리를 지르는 녀석에게 나도 같이 큰 소리를 냈다.
“니가 바보지. 내가 왜 바보냐! 누나한테 까불고 있어.”
유치하기 그지없던 싸움은 아빠의 등장으로 진화가 되곤 했다.
“사랑하는 누나고, 사랑하는 동생인데 바보 멍청이가 뭐야. 둘 다 잘못했어. 저기 서서 잘 생각해 봐. 뭘 잘못했는지 알 때까지 서있는 거야. 알겠지? 뭐가 잘못됐는지 알겠으면, 그때 서로 사과하고 안아줘. “
저 녀석은 분명 바보 멍청이가 맞는데, 그게 뭐 어떻다고 그러실까. 평소에 듣지 못한 엄한 목소리로 우리를 마당에 세워 벌주시는 아빠가 서운했다.
반복되는 생각과 말대로 우리 삶은 그렇게 되어가는 것 같다. 어른인 아빠는 그 사실을 알았던 걸까. 어른이 되면 내 의지와는 다르게 바보처럼 살아가는 때가 많아서 어린 자식들은 그 말을 입에 담지 않길 바라셨던 것일까. 바보처럼 살지 말라고. 바보가 되어 살지 말라고.
바보가 되어가는 중이다. 아닌 걸 아는데, 타인이 처한 상황일 땐 그렇게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왜 그러질 못할까.
사랑하는 사람들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소중한 그들을 애태우고 있다. 이 봄, 예쁜 꽃도 따뜻한 바람도 마음 편히 즐기지 못하고 있을 내 가족. 그들의 자랑거리로 거듭나야 하는데 쉽지 않다.
나의 모든 말과 생각이 쌓여 현실이 된다면, 이젠 정말 바꿔야지. 이 두껍고 거칠고 무거운 껍데기를 벗어버려야지. 내일은 조금 더 바보가 아니기를…
2024.4.20.(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