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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알 Feb 14. 2022

#16. 세상과 통하였구나.

장석주 <대추 한 알>

매년 세 번의 복날이 되면 삼계탕집 앞에 죽 늘어선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뉴스에 등장한다. 이열치열 사자성어는 어김없이 언급되고 전국의 양계장 풍경도 전해진다. 


이전에는 특별하지 않던 날이지만, 직장인이 된 후 - 특히 사무실에 있는 평일에 복날이 돌아오면 - 한 번도 그냥 지나는 일이 없었다.

 

“오늘 복날인데 몸보신하러 가셔야죠~”


우르르 몰려간 삼계탕집에서 각자 뜨거운 뚝배기 한 사발을 놓고 앉았다. 처참하게 다리를 꼬은 채 전사한 닭다리를 뜯으면 콧잔등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근처 직장인들은 다 이곳으로 모였나 싶을 정도로 북적이는 가게 안은 뚝배기 속처럼 뜨거웠다. (누가 닭이고 누가 사람인지...) 짙은 초록색 앞치마를 두르고 쟁반을 가슴 높이까지 든 채 좁은 식탁 사이를 요리조리 오가는 아주머니 얼굴의 고운 화장은 어느새 다 뭉개져 있었다.     


쫀득한 찹쌀죽과 잘 익은 살코기, 갓 버무린 매콤한 배추 겉절이로 배를 채우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지저분해진 식탁 위, 앞 접시마다 수북이 쌓인 잔뼈 사이로 퉁퉁 불어 질펀해진 대추 한 알이 보였다.      


“대추가 독을 빨아들인다고 하더라고요. 삼계탕에 들어간 대추는 그래서 안 먹는 게 좋다고 하던데!”

“맛도 없고 생긴 것도 쭈글쭈글 이상한데, 왜 넣는지 모르겠어요.”


아직도 들썩들썩 끓고 있는 뚝배기가 상 위로 놓일 때 누군가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일제히 뚝배기에서 대추부터 건져냈다. 


“근데 삼계탕에 무슨 독이 있어요?” 


궁금한 나의 질문에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우연히 뉴스를 보다 ‘대추를 먹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는 잘못된 상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게다가 삼계탕에 들어가는 재료에 ‘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쩌다 ‘대추’는 이렇게 버려지는 신세가 됐을까. 닭뼈 무덤 사이에 섞여 있던 대추의 모습이 자꾸 생각났다. 재래 시장의 과일전에 가도 대추를 잘 보이는 곳에 진열해 놓은 경우는 드물다. 다른 과일처럼 화려하지 않고 인기가 많은 것도 아닌 대추를 우리는 얼마나 눈여겨보았던가.      




엄마는 몇 해 전, 앞마당에 대추나무 묘목 한 그루를 심었다. 어렸을 때 있던 대추나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고 가는 나무였다. 무심하게 지나쳤던 그 대추나무를 다시 마주한 건 어느 늦은 여름이었다. 언제 이렇게 컸는지 키는 나보다 훌쩍 커 있었고, 짙은 초록색 잎이 무성하게 달린 가지마다 탱글탱글하고 반짝이는 대추 알이 셀 수 없이 달려 있었다.


“우와아아아!”


크기도 제법 컸다. 한 알을 ‘톡’ 따서 한입 베었다. 입에 가득 찬 과육에서 달큼한 물이 쏟아졌다. 씹을수록 단맛이 아삭아삭 퍼졌다. 쭈글쭈글 말려져 있거나, 차 속에 둥둥 떠 있는 절편의 모습이 익숙했던 나에게 이토록 흠 하나 없이 고운 대추의 자태는 그저 놀라웠다. 예쁜 것이 이렇게 맛도 좋다니! 대추 세 알을 아삭아삭 선 채로 해치워버렸다.  

   

꼬맹이 조카 녀석들도 대추를 따 먹었다. 아이의 작은 손에 꼭 쥔 대추 알은 더욱 단단하고 싱그러워 보였다.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 너도 한 알, 나도 한 알, 저마다 대추에 손이 갔다. 그렇게 많은 손이 닿았는데도, 대추 농사는 풍년이었다. 비록 초가을의 지독한 태풍에 가지가 꺾이고 열매 일부가 무참히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했지만, 남은 대추는 가을 햇살을 받고 더욱 탄탄하게 영글었다. 그리고 한 아름 되는 바구니를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대추를 말리며 엄마는 말씀하셨다.


“대나무도 휘휘 쓰러지고 감도 맥없이 다 떨어졌는데, 이 작은 대추는 몇 번의 태풍을 다 버틴 걸 보면 참 신기하지?”     




그렇다. 닭 뼈에 묻혀 아무렇게나 버려질 일이 아니었다. 봄, 여름, 가을의 수많은 낮과 밤을 지나고 견뎌왔을 대추의 시간을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나를 비롯한 우리들 대부분은 과일전의 입구에서 비싼 몸값 자랑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녀석들 보다, 일부러 찾아야 구할 수 있는 대추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장하고 기특한 대추. 

그래서 더 마음이 쓰이는 너처럼 나 역시 세상과 잘 통(通)하여야 할 텐데 말이다.

청사과 처럼 탱글탱글한 대추도 가을이 되어 붉은 빛 내려 앉으면 하나 둘 주름이 늘어난다.


<대추 한 알>

      

                   ― 장석주(1955∼ )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장석주 시인 <사진출처 :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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