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 <담배 연기처럼>
"너를 너무 사랑해서 떠나는 거야."
"사랑하니까! 그래서 떠나는 거야."
로맨스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 남녀의 이별 장면에서 종종 등장하던 대화.
왠지 온몸이 간지러웠고, 유치했고, 또 진부하다 생각했었다. 어릴 때에는 "사랑하면 끝까지 옆에 있어줘야지. 저렇게 울고 불고, 죽겠다는데 떠나는 건 뭐야." 쉽게 고개를 젖기도 했다.
그런 나를 보며 "넌 아직 사랑을 몰라." 라며 혀를 차는 이가 있었다. 그 말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자, "진짜 가슴 아픈 이별을 해보지 못한 거겠지. 하기야, 그런 경험은 해서 뭐하겠니?"라며 실없이 웃었다.
그때로부터 나이의 앞자리가 두 번 바뀌었다. 그동안,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사랑해서 누군가의 곁을 꼭 떠나야 하는 상황이 세상에는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얼마 전, 마음의 준비도 없이 목 놓아 '엉엉' 울어버린 영화가 있다.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보게 된 <Five Feet Apart>. 영화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었던 터라, 해맑은 미소로 등장한 여자 주인공 헤일리를 보며 편한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슬픈 예감은 틀린 법이 없지. 남녀 주인공의 수려한 외모나 아름다운 음악, 등장인물들의 사랑스러운 의상과 달리 내용이 전개될수록 왠지 모를 불안함과 먹먹함이 가슴을 짓눌렀다.
주인공 남녀는 서로 같은 병을 앓고 있다. 사랑은커녕, 죽음의 공포와 매일 싸우며 살아가는 일상이 반복될 뿐이다. 하지만 병원에서 만난 이들이 서로에게 사랑의 감정을 싹 틔우고 키워갈수록 '나는 그/그녀를 죽일 수 있는 바이러스를 가진 공포의 존재'임을 직면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질 수도, 안아줄 수도 없다. 삶과 죽음으로 갈라져 다시 만날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 내 심장을 요동치게 하고 몸의 모든 세포가 오직 한 곳으로 집중하게 만드는 신비로운 사람이 바로 내 앞에 살아 있음에도 손을 잡는 것은커녕 6 feet 이내의 공간으로 다가갈 수 없다. 아니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는 무기가 될 수 있다.
영화는 말한다. 지금 당신 곁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안아주라고. 만지고 안고 사랑한다 말할 수 있음에 감사하라고. 그리고 그 감정을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표현하고 실천하라고.
혼자 거실에 앉아 엉엉 울다 조용히 pc 앞에서 작업 중인 남편의 뒤로 다가갔다. 덥석! 말없이 그의 목을 안고 등에 얼굴을 와락 기댔다. 그는 일 년 내내 뜨거워지는 법이 없이 차가운 내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토독토독... 내 손등을 살포시 몇 번 두드리더니 손목부터 손가락 끝까지 쓰윽 쓸어내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으로 나의 두 손을 완전히 덮었다.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늘 건강해요 우리. 응?"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나는 어서 대답하라는 듯 고개를 앞으로 내밀고 남편의 눈을 쳐다보았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겠다고 약속하라 강요하는 눈빛이었나 보다.
"당연하지! 그럴게요."
그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이토록 짧은 대답에 금세 마음이 편해졌다.
영화 속 주인공들과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코로나 팬더믹 상황으로 비슷한 경험을 했다. 2020년의 수개월 동안 사랑하는 외할머니를 같은 공간에서 만져볼 수도, 안을 수도 없었다. 간절함이 투명한 유리창에 가로막힌 채 서로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든 가능할 것만 같았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고 쉬이 여겼던 것들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눈앞에 두고도 만져볼 수 없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이 참으로 아팠다.
평생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 땅에서 함께 호흡하던 이가 죽음의 문턱에서 홀로 싸우고 있었다. 힘을 내라고, 사랑한다고, 꼭 괜찮아질 거라고 당신의 몸을 통해 완성된 몸의 체온과 목소리로 진심을 다해 전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우리가 다가가는 건, 할머니에게 위험이 될 수 있었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몸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존재를 이겨낼 힘이 없었다.
그렇게 무력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다. 그리고 모두는 각자의 방법으로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슬픔을 표현하고 이겨내는 방법과 정도는 저마다 달랐지만 모두의 마음에는 분명 '후회'가 있었다. 좀 더 찾아뵈었더라면... 좀 더 사랑한다 말했다면... 좀 더 표현했더라면...
스스로를 원망하고 지난날을 후회할 때는 매번 너무 늦은 경우가 많다. 사건은 이미 일어났고, 결과는 내가 바라던 바가 아닌 것이 대부분…… 계획이나 생각대로 세상일은 흘러가지 않고, 나는 무너진 가슴을 부여잡고 눈물만 흘릴 뿐이다.
예상치 못한 이별. 누군가를 떠나보내거나, 내가 떠나야 하거나.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이별이 있다. 지금도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이별의 과정 중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이를 깨닫고 슬기롭게 준비하거나, 이미 맞이했느냐의 여부에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이별은 거부할 수 없는, 어쩌면 공평한 것이니까. 세상에서 언제든 연기처럼 쉬이 사라질 수 있는 존재가 '인간', 바로 '나'와 나의 소중한 '누군가'라는 사실을 안다면 지금이라도 마음을 아끼지 말자.
그래서 오늘도 말한다.
"사랑해요!"
영화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버린 듯 하지만, 이 글의 시작은 신동엽 시인의 한 시에서 출발했다. 담배를 피워본 적도, 가족 중 담배를 피우는 이도 없기에 홀로 태우는 쓸쓸한 담배의 연기를 깊이 공감해 본 적이 없다. 헌데, 시인의 담배 연기는 시나브로 희미해져 가는 누군가의 힘겨운 호흡처럼 '턱' 숨이 막혔다.
위해주고 싶은 가족들은 많이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멀리 놓고 생각만 하다 말았다. 참말 그랬다. 생각만 하다 미처 움직이지 못한 나의 마음이 무서운 후회로 또 남게 될까 겁이 났다.
하여, 못다한 드레박질이 되지 않기 위해 사랑해야겠다. 마음껏 위해야겠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중이다.
- 신동엽 -
들길에 떠가는 담배 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 갔네.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머릴 놓고
나는 바라보기만
했었네.
들길에 떠가는
담배 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 갔네.
위해주고 싶은 가족들은
많이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멀리 놓고 생각만 하다
말았네.
아, 못 다한
이 안창에의 속상한
드레박질이여.
사랑해주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하늘은 너무 빨리
나를 손짓했네.
언제이던가
이 들길 지나갈 길손이여
그대 소맷 속
향기로운 바람 드나들거든
아파 못 다한
어느 사내의 숨결이라고
가벼운 눈인사나
보내다오.
<한글문학, 1966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