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때알 Dec 04. 2022

#19. 오래 살아서 뭐하게야

김용삼 <오래 살아야 할 이유>

"우리 된장에 무쳐야 맛나제, 산 된장은 맛이 없어서 못써."


양푼이 가득 무친 봄동을 한 입 받아먹고 좋아하는 손녀를 보며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고춧가루, 간장에 무치는 겉절이와 달리 할머니표 봄동 무침은 달랐다. 집된장과 들기름, 마늘과 통깨를 넣어 버무렸다.

“나무새(나물)는 힘을 주믄 맛이 없단마다. 설렁설렁 털어서 무쳐야제.”

양념도 아낌없이 듬뿍 넣는 할머니의 나물이 있으면 늘 밥 한 공기로는 부족했다. 봄에는 두릅, 곰취, 고비, 고사리를 비롯해 오가피와 가죽나무 새순, 숙지와 참나물까지 온갖 산야초가 밥상 위에 올라왔다. 계절마다 밥상은 다채로웠다. 미나리와 가자미로 무친 새콤달콤한 회무침, 살짝 쪄서 간장과 참기름에 양념한 햇마늘 조림은 매운맛 하나 없이 찐 감자처럼 맛있었다.

“할머니! 마늘이 완전 맛있어!”

“포근포근하지야? 하지 감재(감자)같이.”

마늘과 고추는 매운맛 때문에 지금도 날로 먹지 못하는 난 할머니가 만든 마늘 조림이 그렇게 맛있었다.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셨던 할머니 덕분에 부침개는 사계절 빠지지 않았다. 보드라운 새순만 고른 쑥 부침개, 아끼지 않고 듬뿍 넣어 초록색에 가까웠던 부추 부침개, 방풍나물, 세발나물, 돌미나리, 취를 넣은 산나물 부침개까지. 향긋한 계절을 일 년 내내 즐겼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골목길 입구에 고소한 기름 냄새가 풍기면 코를 킁킁거렸다.

‘이 맛있는 냄새가 우리 집에서 났으면 좋겠다.’

가방 어깨끈을 양손으로 잡고 달음박질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점점 더 진해지는 기름 냄새. 우리 집에서 나는 냄새가 맞았다. 신이 나서 가방을 벗어놓고 부엌에 가면 할머니가 틀림없이 부침용 뒤집개를 들고 서 계셨다.

“학교 다녀왔습니다아아아!”

씩씩하게 인사는 하지만 두 눈은 프라이팬에 고정한 채 침을 꼴딱 삼키고 있는 손녀딸.

“오냐! 우리 강아지 학교 갔다 왔냐아? 배고프지야? 따땃할 때 얼른 묵어봐.”

대나무 채반에 담겨 있는  곱게   감자 부침개와 노란 고구마튀김이었다.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포근포근한 감자 부침개는 최고의 간식이었다.

“할머니가 해주는 게 젤 맛있어!”

“느그 엄마가 해준 것이 더 맛나제 뭐시 그래야.”

“아니 진짜 이거 맛있어 할머니!”

“그래야아? 그라고 맛나야?”

“응! 맛있어 할머니!”

할머니 옆에 앉아서 뜨거운 전을 호호 불어가며 먹었다. 할머니는 뜨거운 줄도 모르고 소쿠리에 바로 꺼낸 부침개를 맨 손으로 가지런히 놓았다.

"맛나지야? 어서 묵어. 따수울 때 어서."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무렵,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뜨끈한 토란국을 끓여주셨다. 알밤처럼 동글동글한 토란을 삶아서 잘 우려낸 다시 국물에 넣고 끓여낸 들깨 토란탕은 별미 중의 별미였다. 조미료 대신 엄마가 담근 집간장을 몇 스푼 넣고 곱게 간 들깨가루와 송송 썬 대파를 넣었던 토란탕.

태어나 처음으로 외국에 나갔던 스물세 살. 출국 전 모든 준비를 마치고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러 갔던 날 엄마는 멀리 떠나는 자식을 위해 한 상 가득 음식을 차렸다. 고기, 생선, 잡채, 나물, 과일까지. 마치 명절처럼 풍성한 상이었다. 그중 할머니의 토란탕도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토란탕을 가장 먼저 먹었다.

“할머니! 역시! 이 맛이지. 이 맛!”

며칠 굶은 사람처럼 어찌나 맛있게 먹었는지, 할머니는 식탁에 앉아 나를 빤히 쳐다보셨다.

“내아 강아지는 토란도 잘 묵고, 노무새(나물)도 잘 묵고! 요런 것을 좋아한디, 외국 나가믄 묵고 싶어도 못 묵을 것인디. 짠해서 으짠다냐.”

“할머니! 평생 가서 사는 것도 아닌데, 돌아와서 또 먹으면 되지잉!”

“내가 하루하루가 다르단마다. 간도 잘 못 보고, 짠지 싱거운지, 신 것은 입에도 못 대것꼬, 매운 것을 그라고 잘 묵었던 내가 인자 속이 아퍼서 못 묵겄고. 이것도 언제까지 할 수 있을랑가 몰겄다."

할머니는 그 후로도 몇 해 동안은 종종 요리를 하셨다. 물론 엄마가 기본 찬과 국, 찌개며 모든 찬거리를 다 준비하셨지만 할머니는 때때로 드시고 싶은 음식을 스스로 만드셨다.


오랜만에 본가에 들렀던 날, 할머니는 식탁 위에 양푼이를 넣고 뭔가 조물조물 무치는 중이셨다. 내가 좋아하는 쑥갓나물이었다. 살짝 데친 쑥갓잎의 물기를 꼭 짜서, 집간장과 참기름, 마늘과 깨를 넣고 무친 쑥갓은 향기와 식감이 좋아 즐겨 먹는 나물 중 하나였다.

"우와! 할머니! 쑥갓이네?"

"오야! 요새 통 입맛이 없어서 무쳤는디. 으짤랑가 모르겄다."

"어디 아아아~~~"

할머니 앞에서 모이를 기다리는 아기새처럼 입을 크게 벌렸다. 할머니는 쑥갓 한 줄기를 손가락에 돌돌 감아서 입에 쏙 넣어주셨다.

"으짜냐? 간이?"

간이 이상했다. 생각보다 많이 짰다. 밥이랑 같이 먹는다고 해도 너무 짜서 먹기 힘들 정도였다.

"아! 할머니 간은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은데. 깨만 더 뿌리면 되겠어요."

"그래야? 나는 통 간을 모르겄단마다. 참말로. 으째 이라고 다 고장이 나븐지 모르겄다. 눈이 안 보여서 바느질도 못하겄고, 간을 몰라서 노무새 하나 못 만들것꼬, 다리는 이 모양이라 느그 엄마 일도 못 도와주것꼬. 방에만 앉어서 삼 시 세끼 밥이나 축내제. 내가 요라고 고장이 나브렀단마다."

할머니는 웃으며 이야기하셨다. 분명 웃고 있었지만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다.

"할머니! 무슨 그런 말씀을! 할머니가 만든 게 얼마나 맛있는데."

"내 새끼들인깨 그라제. 밖에 나가믄 인자 아무것도 하믄 안된단마다. 나 같은 늙은이는. 가만히 해주는 것이나 받아묵고 앉아 있어야제."

"할머니...."

"그랑깨 나이 든 사람이 쓸데없이 오래 살면 못써. 젊은 사람들한테 도움도 안 되고 못쓴 것인디...... 오래 살아서 큰일이다. 느그 엄마 아빠만 힘들게.”

그때였다. 언제 부엌에 들어오셨는지 아빠가 말씀하셨다.

"와아아! 언제 또 쑥갓을 무치셨어요? 우리 어머니가 만드셨으면 틀림없이!"

할머니는 아빠의 입에도 쑥갓 무침을 한 입 넣어주셨다.

"얼른 밥 먹어야겠네요. 역시 우리 어머니 솜씨는! 이래서 내가 다른 데서 밥을 못 먹은다니까요."

아빠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조금 전 한 숨 쉬던 할머니는 금세 활짝 웃으셨다.

"오냐오냐. 애미는 아직 멀었다냐? 얼른 밥 묵자."

"할머니가 오래 사셔야 이렇게 맛있는 거 우리가 먹지잉!"

"그래야? 죽도 자와도 오래오래 살어야 쓰겄다잉? 내아 새끼들 봐서라도 오래 살어야 쓰겄어."

아빠의 떨리는 얼굴을 기억한다. 아빠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아니, 감히 비교할 수 없었겠지.

요리는 물론이고 술 빚는 솜씨도 최고였던 할머니. 술을 얼마나 맛있게 담그셨는지, 아빠의 친구 한 분은 종종 할머니를 찾아와 "어머니가 만든 동동주가 세상에서 제일 맛나요!"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산야초 이름이며 약초의 쓰임에도 해박하셨던 터라 시장에서 사 온 푸성귀를 어떻게 요리해 먹어야 하는지 모르는 앞집 아줌마는 할머니를 찾아와 묻기도 했다. 그렇게 모든 감각이 야무지고 완벽했던 할머니가 음식의 간도 제대로 맞추기 어려운 나이가 되었다.


언젠가 한정식 집에 갔다가 전채 요리로 토란탕이 나왔다.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백자에 담긴 맑은 토란탕은 우리 집 식탁에 오르던 할머니의 토란탕과는 모양새가 달랐다. 한껏 멋을 토란탕을 한 입 입에 넣었다. 꿀꺽. 목이 메었다.

"오냐. 내 자석들이 잘묵응깨 또 해주마. 애끼지 말고 많이 묵어잉!"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또 한 입 꿀꺽.

"타지 나가서 잘 챙겨 묵어라잉? 우짜든지 밥심인깨. 맛난 거 천지여도 밥이 젤인깨. 이잉?"

주름진 손등, 굳은살 박힌 갈라진 손끝, 탕탕탕, 달그락달그락, 차락차락....... 부엌에 서 계시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왜 영원할 것처럼 여겼을까. 그렇게 쉽게 떠나보내게 될 줄을 몰랐을까.

"내아 새끼 많이 묵어잉! 내가 오래 살어야 쓰겄다. 요런 것이라도 해줄라믄."

엄마가 보내주신 된장으로 끓인 호박찌개, 매콤한 묵은지, 두릅 장아찌로 저녁을 먹는다. 할머니가 천국으로 가신 지 꼬박 5년이 된 12월의 첫 주말. 맛도 모른 채 밥알을 씹으며 중얼거린다. 괜히. 그곳까지 닿으라고 중얼거린다.

'백 살까지도 살 거라 하시더니...'


매운 음식이라면 누구보다 즐겨 드시던 할머니였지만, 돌아가시기 몇 해 전부터는 맵고 신 음식은 아예 입에 대시지도 않았다. 이렇게 맛있는 엄마의 김장 김치도 맛 보시지 못하고.





오래 살아야 할 이유


시골 할머니 집에서

딩동딩동 택배가 도착했습니다

아빠 혼자서 들 수 없을 만큼

큰 종이 상자에 가득

김치가 들어 있었습니다


아빠는 엄마에게

당장 밥을 달라고 어린아이처럼

떼를 썼습니다

우리 식구는 할머니가 보내 온

김치 하나만 가지고

이른 저녁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날 저녁 아빠는

따르릉따르릉 시골집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아빠는 할머니에게

철부지 소년처럼 재잘재잘 말했습니다

할머니가 담근 김치 말고는 맛없어 못 먹는다고

김치 때문에라도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아빠의 눈시울은

시골집 감나무의 홍시처럼 붉어졌습니다


한두 달이 지나면

김치 냄새가 물씬 풍기는 택배가

우리 집에 또 도착할 것입니다


(김용삼·아동문학가, 1966-)


김용삼 시인은 고려대학교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2002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에 시가 당선되고, 2005년 동시 '빈 집' 외 5편으로 제3회 '푸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군산에서 목회를 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 시집 '다섯 아내를 둔 자의 슬픔', 동시집 '아빠가 철들었어요'가 있다.   <출처 : 교보문고, 인물&작품>
매거진의 이전글 #18. 보듬을 수 있을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