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구별행자 Jan 05. 2023

성인자아의 용서

  새엄마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 쓰레기라는 말을 들으면서 내가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에 들어가는 상상을 했다. 인간쓰레기라는 것은 100리터 쓰레기봉투에 들어있음 직한 사람을 말하는 거겠지?   인간이 쓰레기봉투에도  넣어지지 않는데, 몸을 쪼그리고 고개를 숙이면 봉투를 묶을  있을까?  처리하기 힘들겠다. 인간쓰레기는  처치 곤란한 존재구나라고 생각했다. 나에 대한 혐오의 이미지와 함께  켠에는 새엄마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나를 통제하고 비난하고 학대하는 새엄마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

  나를 왜 그렇게 미워하는지에 대해서 내가 그럴만한 존재라고만 받아들이기에는 괴로웠다. 그래서 새엄마가 다리에 장애가 있어 자유롭게 나가지 못하니 나를 시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매일 집안에 틀어박혀 나가지도 못하고 중학시절을 보내지도 못했으니 학창 시절을 즐기는, 더군다나 의붓딸인 내가 더더욱 미워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다. 미성숙하고 악독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나보고 악마라고 눈을 부라리며 폭언을 쏟아내던 그 표정이야말로 악마라고 생각했다.


  내 내면을 정돈하며 나를 지키기로 결정하고 다시는 새엄마가 나를 함부로 대하게 놔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초등학교 1학년이던 내 아들에게도 소리를 질렀던 날, 단단히 결심했다. 내 아이들에게까지 나에게 하듯 상처주도록 두고 보지 않을 거라고. 그 이후로 연락을 일체 끊었다. 2년이 넘도록 전화는커녕 얼굴하나 비추지 않았다. 새엄마는 갈등이 있을 땐 무조건 내가 잘못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이라 역시 연락한 통 오지 않았다.


  그 2년 동안 내 안의 슬픔과 분노들과 마주하며 지내던 어느 날. 새엄마가 해주던 맛있는 음식들이 떠올랐다. 내가 초등학생쯤이었던 것 같다. 새엄마와 맛있는 간식을 많이 만들어 먹었던 기억이었다. 떡을 기름에 튀겨 설탕이나 꿀에 찍어 먹기도 하고, 라면이나 건빵을 튀겨 설탕에 묻혀 맛있게 먹었고, 야채 철마다 삶은 옥수수를 맛있게 먹었다. 정구지전, 초장에 찍어 먹었던 배추전, 식빵에 마가렛을 발라 구운 토스트, 매콤 달짝했던 쫀득쫀득한 닭발. 노릇노릇한 고구마에 김치를 올려먹었던 기억. 짭조름 달달했던 푸근한 삶은 감자. 보들보들하니 김이 나던 그 모습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주전자에 끓인 보리차의 그 따듯하고 구수하던 냄새. 주전자가 식기를 기다렸다가 새엄마가 시키면 그 주전자를 물병마다 옮겨 붓는 심부름을 했다.

  그렇게 맛있는 간식들을 만들 때면 나는 다리가 아픈 새엄마의 조수 노릇을 톡톡히 했다. 싱크대 옆에 서있다가 감자를 깎으라 하면 감자칼로 감자를 깎고 정구지를 같이 다듬고 옥수수수염을 다듬었다. 새엄마가 소금을 꺼내오라 하면 꺼내오고 그릇을 꺼내라고 하면 꺼내고 나는 옆에 대기하고 있다가 새엄마의 손과 발이 되어 심부름을 했다.


  그랬던 일상의 기억이 어느 순간부터 바뀌었다. 중학생 때 도시락을 싸가야 했는데 도시락통을 열어보니 밥과 고추장, 그리고 냉동실에 있던 하얀 진미채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던 거였다.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중학생 때의 도시락은 상처받은 기억이 되어 있을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뀐 건가 생각하다가 뇌리를 스치듯 알았다. 새엄마의 두려움이었다. 새엄마는 혼자가 두려웠던 거였다. 동네아줌마들과 수다를 떨고 친분을 쌓아도 됐겠지만 나랑 있을 때처럼 몸이 불편하다고 이것저것 부탁하기가 어려웠던 새엄마는 나랑 있으면서 조수역할을 톡톡히 하니 같이 간식을 만들어먹는 것이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전 아들 셋 집의 막내딸이었던 새엄마는 본인의 엄마가 친구였다. 자기 엄마와 친구처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수발을 들어주는 관계가 익숙했을 터였다. 그래서 장애가 있는 아빠에게 딸린 의붓딸을 보았을 때 자기의 경험에 비추어 그러한 관계의 친구가 생길 거라고 기대했겠구나 싶었다. 장애로 인해 중학교 때 중퇴를 한 새엄마는 친구를 사귀기 어려웠고 외로웠을 것이다. 예민하고 까다로워 동네에서도 동네 아줌마들과도 왕왕 갈등이 있었던 걸 보면 충분히 추측이 되었다. 그렇게 의붓딸과 간식을 만들어먹고 일상을 의지하며 지내던 날들이 달라졌다. 의붓딸이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혼자인 시간이 급격히 늘어났다. 나는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좋았다. 새엄마는 사회로부터 단절되고 도움을 받을 의붓딸이 없는 일상이 버겁고 두려웠겠구나 하고 느껴졌다.

  새엄마의 그 두려움의 크기가 얼마나 컸을까 감히 가늠해 보았다. 그 간식을 만들어먹는 시간이 즐거웠고 그 시간이 줄어듦에 두려워 나에게 분노로 표현했겠구나. 그 즐거운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었던 마음이 새엄마 나름의 사랑의 방식이었겠구나. 적막한 집에서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익숙하지 않은 성격에 두려움이 악과 분노로 바뀌었겠구나. 나를 친구로 생각했고 나에게 의지했었구나. 나는 겪어보지 않았을 두려움을 느꼈던 그때의 새엄마를 생각하니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안타까웠다.


  이러한 관점은 이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관점이었다.   전만 해도 누군가 이러한 관점을 얘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내면과 단절되어  아픔과 고통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고통을 받아들이긴 힘들기 때문이다. 내가  자신도 돌볼  모르는데 다른 사람의 고통어떻게 진정으로 공감할  있을까. 나는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하면서 조금씩 새엄마를 이해할  같다. 아직은 분노가  크지만 나를 대하듯 타인을 대할  있게, 나를 사랑하는 일을 계속 배우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책이라는 세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