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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행자 May 27. 2023

좋은 친구란

좋은 친구란?

​영혼의 성숙을 돕는 친구이다.



인간이 양육자를 벗어나 사회를 만나게 되면서 만나게 되는 친구는 영혼의 성장이나 색깔과 상관없이 단지 같은 지역, 같은 나이 같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같은 유치원, 같은 동네, 같은 학교, 같은 학원 등등등…  ​유년 시절에는 그런 조건에 의해 친구를 만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서 강제로 소속되는 일이 줄어들면 삶의 사이클이나 처한 환경에 따라 자연스럽게 비슷한 주제로 만난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된다. ​종교에 의해 만나는 사람들, 아이양육의 주제를 가지고 만나는 학부모모임, 운동 같은 특정한 취미를 가지고 만나는 모임, 자격증이나 배움 등을 위해 만나는 모임 등등이다.


그러다 보면 ‘오래된’ 모임의 의미는 없어진다.


영혼이 성장함에 따라 과거의 ‘나’보다 항상 성숙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숙의 속도는 사람마다 차이가 날 수밖에 없고, 자연히 ‘오래된’이라고 불리는 인연들 사이의 (예를 들면 초등 동창이나 중학교 동창이나 대학 동창들)  성숙속도는 제각각 달라지게 된다. 그런 제각각의 속도들 중에서 성숙과 성찰을 위해 자신을 돌아보기 위한 작업은 따갑고 아플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보통은 그런 직면의 순간들을 피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분위기가 모임에서 형성되기 쉽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과거의 인연을 유지하기 위한 모임에는 성장을 멈춘 이들이 지속해 나가며 모이게 된다. 혹은 자신의 우월감을 과시하기 위해 모임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모이게 된다. ​


조금만 나의 미성숙을 깨달아도, ‘아 그런 미성숙한 인간관계를 통해서 값싼 우월감과 열등감을 주고받았구나’라는 마음이 들면 굳이 그런 모임을 찾아가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되고 주변이 고요해진다. ​따라서 내 주변의 사람들이 10년 전에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인연들로만 계속 채워져 있다면 내가 성장을 멈춘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가 성장하게 되면 스승도 달라진다. 초등 수학을 배울 때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필요하지만 중등 수학을 배울 때는 중학교 선생님이 필요하듯이.


뛰는 사람과 걷는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없다.


내가 10년 전에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본받을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을 지금도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면 나의 성장이 멈춘 것이다. 지금의 나와 10년 전의 나의 관점이 변화 없이 똑같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얼마나 더 성장하고 경험하고 깨우친 것들이 많을 텐데 아직도 똑같을 수가 있을까? 30살의 나와 20살의 내가 보는 관점이 똑같다면 호기심을 잃고 ‘내가 옳다’라는 판단에 갇혀 탐구심을 잃어버린 상태다. 앎은 끝이 없기에 절대적으로 ‘지금 알고 있다는 나’가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

물론 같이 성숙해 가는 ‘진정한 친구’라면 서로 10년 전의 관점이 지금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이야기할 수 있는 건강한 도반이라는 이야기이니 얼마나 즐거운 일일까. 성장하는 속도가 같다면 얼마든지 성장해도 친구가 될 수 있다. 또는 그때의 스승이 10년 뒤에도 스승일 수 있는 건, 스승의 수준이 너무 넘사벽이라 10년의 성장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정도이거나. 아 물론 스승도 다른 관점으로 보이는 것들이 많아지겠지. ‘아! 그때 그래서 나에게 스승님이 그 말씀을 하신 거구나! 그때 그 말이 이 말이구나! 그때의 나를 이렇게 가르치신 스승님이 대단하시구나! 얼마나 답답하셨을까!’하는 감탄이 흘러나올 테니까.


인맥관리는 딱히 할 필요가 없다.

‘인맥관리’라는 목적을 위해 일부러 안부를 묻고 선물을 보내야 유지되는 인맥이라면 필요 없다. 그 사람과 만나면 인사이트를 얻고, 나의 관점이 확장되고 또 배움을 얻는 관계라면 인맥관리를 하기 위해서 연락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마음이 동해서 선물을 보내고 싶어지고 만나고 싶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엔 또 ‘지금 여기’를 충실히 살면 된다. 나의 소신껏, 그러나 유연하게 호기심을 가지고 내 삶에 충실히 살아가자. 좋은 에너지를 뿜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내가 좋은 에너지를 뿜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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