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재첩국

맑음의 깊이

by 은파랑의 토닥토닥


하동의 아침은 물로 시작된다. 섬진강 위에 얇게 깔린 안개가 천천히 걷히면 강은 바다를 향해 조용히 흐른다. 이곳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자리다. 서로 다른 것들이 섞이며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공간이다. 그런 흐름 속에서 작은 조개 하나가 자란다. 재첩 그리고 재첩이 한 그릇의 국으로 완성된다.

재첩국은 맑다. 겉보기에는 단순하다. 국물을 한 숟갈 뜨면 시원하게 퍼지는 첫맛, 이어서 은은하게 올라오는 감칠맛이 입안에 머문다. 짠맛은 강하지 않고 대신 물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작은 재첩을 입에 넣으면 오독오독 하지만 거칠지 않다. 씹을수록 미묘한 단맛이 풀리며 국물과 하나로 이어진다. 이 음식은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몸을 풀어준다.

재첩국의 중심은 재첩이다. 섬진강 하구에서 자라는 이 작은 조개는 깨끗한 물에서만 살아간다. 안에는 자연의 농도가 담겨 있다. 아미노산과 미네랄이 풍부해 국물은 맑지만 깊다. 여기에 더해지는 것은 마늘, 대파, 약간의 소금. 그 이상은 필요 없다. 이 음식은 재료를 더하는 대신본질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완성된다.

하동 사람들에게 재첩국은 특별한 음식이 아니다. 그저 늘 곁에 있던 음식이다. 새벽 강가에서 재첩을 캐고 돌아와 바로 끓여 먹던 한 그릇이다. 특히 술을 마신 다음 날 이 국은 몸을 깨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재첩국에는 화려한 유래보다 생활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하루를 시작하고 다시 일어나기 위한 음식의 흔적이다.

하동의 재첩국은 복잡하지 않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탁한 것을 걷어내고 맑은 것만 남기는 맛이다.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몸도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진다. 이 음식은 말한다.깊은 것은 반드시 무겁지 않아도 된다, 맑음 속에서도 충분히 깊어질 수 있다. 하동의 재첩국은 그렇게 흐른다. 조용히 하지만 끊임없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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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명 은파랑. '토닥토닥' 출간작가. 복잡한 마음을 단순하게 풀어내는 글을 씁니다. 지친 하루에 작은 쉼이 되는 문장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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