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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들만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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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Jun 26. 2024

남자아이들에게 놀이란...

남자아이들에게 놀이는 무엇일까요.

터울도 크고 성향도 다른 남자아이 둘을 키우면서, 두 가지 선택을 아이들에게 제시하면, 늘 각각 다른 선택을 하는 아이들이 유일하게 의견일치 보는 선택지가 운동입니다.


특히나 둘째 꼬맹이가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부쩍 몸으로 노는 놀이를 좋아하게 되었는데요. 그러다보니, 주말에 두 아이가 하고 싶은 게 다를 때면 늘 축구공이나, 배드민턴, 야구 배트와 야구공, 농구공과 캐치볼, 심지어 플라잉디스크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가까운 공원으로 향하곤 합니다.

심지어 비가 오는 날에도 폭우만 아니면(아니 장마만 아니면), 각종 운동 도구와 돗자리 하나 들고 가까운 한강 다리 밑으로 향하곤 합니다.

비오는 날 실내로만 갈 수 있다는 게 편견이라는 걸 깨달은 건 불과 몇 달 되지 않는데요. 비가 올 때면 실내 갈 곳을 찾다가 결국 두 아이의 선택지에 맞는 곳을 찾지 못해 집에 눌러앉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폭우가 쏟아질 거라고 예상하지 못하고 신나게 축구공을 차다가 쏟아지는 비에 가까운 한강 다리 밑으로 피신했을 때, '오? 비가 안 들이치네? 비 오니까 오히려 시원해서 좋은데?' 를 깨달은 이후로는, 비가 오나 햇볕이 쨍쨍 내리찌거나를 상관하지 않고 밖으로 밖으로 나오게 되었답니다.


어제부터 줄기차게 내리던 빗줄기.

어제는 비를 피해 한강 다리아래에서 축구와 배드민턴, 야구를 번갈아가며 했었는데요.

오늘은 이모네 감자를 캐러가느라 새벽부터 서두릅니다.

비가 잠시 소강상태일 때 무조건 캐야될 것 같아서 말이죠.


다행히 어제 쏟아부은 비가 만족스러웠던지 오늘은 비도 내리지 않고 청명한 날씨입니다.

감자도 캐고 아욱도 뜯고, 이른 여름에 작물들에 꽃이 활짝 피어 상추 줄기도, 아욱 줄기도 다 뽑아내기로 합니다.

텃밭 작업을 마치고 나니 어느새 한 시.

보채는 아이들과 시장에 들러 과일들을 왕창 산 후 가까운 공원으로 향합니다. 아침부터 밥은 굶었는데 쉬지 않고 과일이며 물이 들어가니 배가 고프진 않네요.

늘 가던 그 곳에 자리를 잡으니 자연스럽게 운동 도구를 주섬주섬 챙기는 아이들.

텃밭이 엄마의 시간이라면 운동은 아빠의 시간입니다.

(물론 엄마도 과일 씻어 나르고, 물 떠오고, 자리 정돈하고 띄엄띄엄 작은 아이와 놀아주느라 쉬지는 못 합니다만...)


잔디밭 다른 한 켠에선 초 고학년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진짜 야구를 즐기고, 잔디밭 여기저기서 야구공으로 캐치볼을 하는 무리들이 오늘따라 꽤 많이 눈에 띄네요.


우리도 그 무리에 동참해서 아빠는 투수로 작은 아이는 타자로 큰 아이는 수비수로 엄마는 포수로 각자의 자리에서 야구를 즐기고 있는데, 어디선가 한 무리의 아이들이 다가와서는 주뼛거리며 구경합니다.


망설이던 아이들 가운데 한 아이가 조심스럽게 같이 놀아도 되냐고 물어보네요.

큰 아이에게 물어보라 하니 말 없이 씩 웃는 큰 아이.

괜찮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아이들이 가방을 내려놓더니 역시나 쭈뼛거리며 자리를 잡습니다.

아빠가 아이들의 자리를 하나씩 지정해주고 나니, 1~3 루수까지 수비수가 포진한 진짜 야구 모습을 갖추었네요.

속으로 이 상황이 우스워 큭큭 웃으면서도 아이들에게 기회를 두루두루 주면서 야구를 즐깁니다


아직은 4학년인 아이들의 야구 수비가 맘에는 안들었던 큰 아이만 다소 투덜댔지만, 뭐, 나름 예의도 지키고 기회도 두루두루 가지면서 홈런에 안타도 시원시원하게 나오는 아이들까지... 같이 놀던 아이들도 우리집 아이들도 흡족한 표정이네요.

한참 놀다 아이들을 데리러 오신 한 아버님이 이 상황을 보고 당황해하긴 하셨지만, 허락하에 조금 더 플레이를 즐긴 후 쿨하게 헤어집니다.


해가 있는 곳은 30도를 훌쩍 넘는데 그늘진 나무 아래나 구름이 가끔 해를 가릴 때엔 제법 선선하다보니 세 시간을 훌쩍 보내고 나서야 돌아섭니다.

야구 글러브 쥐고 공 잡는 법을 처음 배운 작은 아이는 세 시간을 놀고도 아쉬운 마음인 듯 하지만 새벽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무려 여덟시간동안이나 바깥에 있었는걸요. 허허...


우리가 자리를 정돈할 즈음에도 여전히 캐치볼이며 야구를 즐기는 남자아이들만 버글거리는 걸 보니 조금 우습기도 했지만, 집 안에 틀어박혀 게임만 즐기는 것보다 밖에서 운동을 즐기는 아이들이 훨씬 건강할 거라는 생각에 가슴 벅찬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저 아이들 모두 큰 아이처럼 코로나 시기를 겪었을 아이들.

그 시기를 무사히 넘기고 다시 바깥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이 더운 날씨에도 바깥놀이를 즐기는 것만도 어찌나 반가운지요.


정말이지 아들 엄마로서 이 잔디밭을 휘젓으며 동분서주 공을 쫓는 남자 아이들 모두가 진심으로 멋져보였답니다.

(신기하게도 여자아이들은 눈에 띄지 않더라구요. 에너지를 주체 못하는 남자아이들만 나올 정도로 무덥고 습한 날이어서일까요.)


집으로 돌아와서 쉬던 큰 아이가 지치지 않는 에너지 발산을 하려는지 빵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내심 지난주 만든 블루베리잼을 발라 먹을 빵이 필요했기에 조수역을 자처한 엄마.

식빵과 모닝빵을 만들고 나니 오늘도 밤 11시를 훌쩍 넘겨버리고 맙니다.

결국 굽는 건 에미 몫으로 남았지만, 아쉬운 맘에 잠에 들지 못하고 왔다갔다 하는 아이들을 보며 속으로 어찌나 웃었던지요.

이젠 곁에서 거들어주는 척 훈수 두는 에미도 필요 없이, 엄마와 동생이 오이마사지를 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동안 큰 아이 혼자 만드는 식빵입니다.

늦은 밤에 구운 빵. 작업 시간이 3시간이 훌쩍 넘는 식빵, 모닝빵을 만드는 바람에 구워지는 빵을 침 꿀꺽 삼키며 바라만 보다 잠든 아이들이 안쓰럽기도 합니다.

복직을 앞두고 생각이 많아지는 나날들이지만,  아이들은 매일매일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중2를 기다리고 있는 큰 아이의 변화가 여전히 두렵긴 하지만,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걱정하는 건 하등 쓸데없으니 말이죠.


복직을 앞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던 차, 큰 아이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아들아, 넌 엄마가 뭘 계속 해주면 좋겠니?"

"뭐. 딱히 바라는 건 없는데....주말 등산, 운동?"

"등산, 운동만 해주면 되는 거?"

"응."

"정말 다른 건 해줄거 없을까?"

"뭐...없는데..."


사춘기 녀석답게 시크하게 대답하는 큰 아이입니다.

말 한마디 없어도 운동 종류를 같이만 해주기만 하면 만사 오케이라니요.. 신기하기만 한 여자사람 엄마입니다.


남자아이들에게 운동은 어떤 의미일까요?

말로 놀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과의 대화나 놀이가 쉽지 않은 여자아이들과 달리, 공 하나면 연령불문, 모르는 사람과 말 한 마디 없이도 신나게 놀 수 있는 게 남자아이들 같습니다.

 여자사람인 엄마는 이해하기 어려운 남자아이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던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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