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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Apr 29. 2024

사춘기 아이와의 취미생활, 등산

북한산 둘레길 11~12 코스

화창한 일요일입니다.


토요일에는 가까운 공원에 다녀왔습니다. 남편이 짐이 많다며 구시렁댔지만, 꿋꿋하게 축구공 하나, 배드민턴, 간식거리들과 줄넘기까지 챙겨갔지요.

주말이지만 자동차를 안 쓴지 오래됐습니다.

아이들이 크니 굳이 자동차 없이 따릉이와 킥보드, 튼튼한 두 발 만 준비되면 주차 걱정 없이 가볍게 떠날 수 있어 좋습니다.

가까운 공원 우리만의 아지트에서 배드민턴과 공놀이를 즐기고 있자면 촬영 나온 사람들의 표적이 되기 쉽습니다.


아이들과 남편이 신이 나서 축구를 하고 있고, 저 홀로 쉬고 있자니 초상권을 무시하고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걸 발견했습니다. 카메라가 다른 곳을 향할 땐 렌즈 방향이 행여 아이들에게 향할까 싶어 긴장해서 쳐다보다가 기어코 저희 아이들을 찍는 사람들을 발견하면 찍지 말라고 나름 정중히 부탁합니다.

(속으로는 굳이 남의 아이들 사진을 찍는 게 화가 나서 부글부글 끓긴 하지만요....)


어제는 작은 아이의 뜻에 따라 공원에서 놀았구요.

오늘은 큰 아이 뜻에 따라 등산을 가는 날입니다.

날도 좋아서 한 달 여 벼르고 벼르던 북한산에 오르기로 합니다.


8코스까지는 순서대로 갔는데 9~10코스는 동네를 지나가는 길이라 생략하기로 합니다.

11~12코스로 정하고 출발하자니 아직 4월인데 30도에 육박하는 뙤약볕이네요. 숲에 가면 나으려나요...


지하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고 내리니 뜨거운 뙤약볕 아래 서로 뒹굴며 장난치는 고양이들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고양이들의 사진을 찍어주고는 둘레길 산행을 시작합니다.

 오만 벌레들이 우리를 맞아주니 산행은 시작부터 난항입니다. 초입에서만 30분 넘게 지체되는데도 벌레를 찾아 눈이 이리 저리 돌아가니 산을 오르는 게 쉽지 않네요.


잎을 둥글게 말아서 그 안에 알을 낳는 거위벌레, 몸이 ㄷ자로 구부러지는 자벌레를 비롯해 여러가지 애벌레들이 우리를 맞아줍니다. 야생 그대로의 산이라 모기 기피제를 뿌려도 달려드는 모기를 막기가 쉽지 않은데, 벌레를 관찰하고 사진을 찍느라 가만히 서있다보면 어느새 모기들이 우르르 몰려드네요. 결코 쉽지 않은 산행길입니다.

말로만 듣던 북한산 도롱뇽은 깊은 계곡에서 살 거라는 생각과 달리 뜻밖의 장소에서 서식하고 있었습니다. 무사히 잘 깨어나 도롱뇽으로 성장하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전설로만 들어온 북한산 도롱뇽 알을 드디어 영접합니다. 위치는....음. 도롱뇽이 잘 자라기 위해 비밀에 부치는 걸로요....올챙이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조만간 개구리로 변신하면 어마어마하게 시끄러워질 것 같긴 합니다. 하하.

사슴풍뎅이를 비롯한 각종 애벌레들(자벌레 포함) , 대벌레, 어마어마한 개미군단, 그리고 북한산 산행중에 수없이 많이 본 딱정벌레..
귀한 장면인데 사진뿐인게 아쉽습니다. 여왕개미이구요. 막 날개를 떼어내고 있는 장면입니다. 좀전에 공주개미 촬영을 놓쳐서 아쉬웠는데 이 귀한 장면에 얼마나 감동받았던지요.
애벌레는 전문가가 아니라 동정(어떤 곤충인지 확인하는 것을 말합니다)이 쉽지 않습니다. 어떤 나방애벌레인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자연 그 자체의 모습만으로도 즐거워집니다.

북한산 둘레길 코스를 오랜만에 도는데요.

이번 둘레길은 중간에 동네가 안 나오고 내내 산길만 이어져서인지 조금 '많이' 힘들었습니다.

12코스를 내려오자마자 보인 CU 편의점이 어찌나 반갑던지요.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던 편의점에 들러 아이들에겐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쥐어주고, 어른들은 얼음컵을 사와서는 가지고 온 커피를 부어 마시니 천국이 따로 없더라구요.

 늘 언덕 수준의 낮은 산만 오르다가 모처럼 산다운 산을 오르니 기진맥진이라, 예정되었던 13코스는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그래도 산행 중 심심해질 때면 수수께끼, 말놀이 등을 이어나가니 심심할 틈이 많진 않아서 다행이었어요. 물론, 산행 끝자락엔 너무너무 힘들어서 작은 아이의 수수께끼 이야기에 모두가 한 마음으로 "이제 그만!"을 외치긴 했지만 말이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엔 어느새 사람들로 가득해집니다. 

만원버스 속에서 어느새 잠든 아이를 안고 내리니 실눈 뜨고 씨익 웃는 작은 아이를 보며 다들 폭소합니다.


땀 뻘뻘, 흘리며 5시간만에 집에 돌아오니 휴...이제야 살 것 같습니다.

모두가 지친 이 와중에 씻고 나오자마자, 빵 만들겠다고 달려드는 큰 아이에게 두손 두발 다 들었습니다.

워낙 빵 만드는 기술은 우리집 최고가 되었으니, 조용히 보조쉐프로 변신하는 엄마 아빠.

오늘도 2~3시간 넘게 걸려 식빵과 피자 도우가 완성되었습니다. 저녁 먹는 가운데서도 수시로 발효 상황을 보고, 성형하느라 바쁜 큰 아이를 보니 뿌듯하네요.

그저 에미와 애비는 옆에서 입으로만 거들뿐.


"오. 아들. 제빵사 시켜야겠네!"

라는 에미 말에, 급 정색해서는

"제빵은 취미일 뿐!"

이라며 재빠르게 선을 긋네요. ㅋㅋ

그래그래. 제빵은 취미로 즐기거라....


큰 아이가 만드는 빵에 따따봉 엄지척 해주니 사춘기 큰 아이 얼굴에도 웃음이 피어납니다.


이렇게 소소한 행복으로 가득찼던 하루가 또 흘러가네요.

식빵과 남은 반죽으로 만든 모닝빵. 반죽이 예술이라 나온 식빵 모습도 시판제품 같네요. 모닝빵 색깔이 예술인데요. 달랑 하나라 쉐프님 입속으로만 들어가서 아쉽긴 합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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