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승구 Feb 25. 2023

38. 육십령 탁배기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오는 아침 햇살을 맞으며 백두대간 육십령 고개를 향한다. 겨울의 육십령은 상고대와 눈꽃으로 치장해 있다. 육십령 휴게소에서 점심을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백두대간 육십령’ 통로를 지나 남강의 시발점을 향하여 달려간다. 정상을 경계로 통로(43m)를 지나니, 바로 함양 땅으로 들어선다. 눈앞에 펼쳐진 도로는 많은 구간이 직선화되어 굽이진 도로의 추억은 흔적만 남아있다.   


 사람은 본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마련이다. 이것은 자신을 담담하게 정화할 수 있는 것으로 가장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아마도 정책을 입안하는 누군가가 몸이 물에 뜨는 것에 흥분한 아르키메데스나 떨어지는 사과에 특별한 느낌을 받은 뉴턴의 흉내를 낸 것 같다. 굽은 도로를 펴서 아스콘과 콘크리트 덩어리로 발라놓았다. 육십령 고개는 개발하지 않는 것이 풍취가 있었으련만(?).


 육십령 고개는 산적이 많아서 함부로 넘지 못하여 산 아래 주막에서 며칠씩 묵으며 육십 명이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죽창과 몽둥이로 무장하고 떼를 지어 넘어야 화를 피했다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육십현(六十峴‘ *대동여지도’에는 육복치(六卜峙)로 표기되어 있다.)이라고 적혀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다니는 길목은 도적들이 들끓는다. 옛날에는 재물 도적이었고 오늘날은 정신 도적들이 많다.


 육십령(734m)에서 백운산(1,279m)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깃대봉(1,014m))이다. 봉우리 남쪽은 신라 영토고 북쪽은 백제 영토다. 낮에는  백제, 밤에는 신라의 깃발이 매달렸다고 한다. 동으로는 기백산, 남으로는 장안산과 백화산, 북으로는 남덕유산이 조망되는 삼국시대 요충지다. 매일 어른들의 전쟁놀이, ‘달팽이 뿔’ 위의 싸움이 있었다. 1,400년 전 이 시각 깃대봉에 국기를 매달려는 신라군과 백제군의 군영이 있을법한 양안에는 각각 휴게소와 주차장이 있다. 육십령 휴게소에 들어선다. 휴게소는 산행 들머리로 그 옛날 보릿고개가 되면 굶주린 경상도 난민들이 육십령 함양휴게소 터로 몰려왔다고 한다.


 1970년대 이전 육십령은 백성들의 목숨 줄이었고 생명선이었다. 동물들의 이동통로(복원된 백두대간)를 넘어 장수로 건너온 함양군 빈객에게 장수군 유지는 세경을 내고 장래쌀을 내어주었다. 해가 지나면 일부는 남고, 일부는 돌아갔다.


 일제가 1925년 북한 백두산에서 남한 지리산까지 한반도 남북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인 백두대간의 맥을 자른다고 능선을 깊게 파서 산줄기를 잘라 놓았다. 2013년에 백두대간 마루금(산줄기 이음선) 친환경 복원사업으로 생태 다리로 복원되어 동물이동통로와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다.     


 다리 아래를 지나면 동서문화의 소통문이 있다. 장수 쪽 휴게소 메뉴는 돈가스. 스파게티, 수제(手製) 만두 등이고, 함양 쪽 휴게소 메뉴는 김치찌개, 된장찌개, 추어탕 등으로 맛과 특색이 다르며 가격은 적당하다.


 장계에는 함양 출신들이 상당수가 있다. 그들은 누가 타지인이고 누가 내지인인지 다 알면서도. 그들은 편견이나 차별을 주지 않는 이웃이다. 주민들 가운데 직선으로 뻗은 육십령터널을 놔두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서 해발 734m까지 올라와 점심이나 저녁 먹으러 고개를 넘나드는 분들이 꽤 된다. 장수 사람들의 생활은 공동체다. 주민 대부분은 노인이다. 팔순이 칠순보다 더 많다. 애경사에는 노인들이 모여 음식을 장만한다. 사회는 유연한 삶보다는 규정과 규칙을 중시하고 있다. 10년 후 그림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려나?    

 

육십령은 남덕유산 산행의 기점으로 60여 굽이가 된다는 유래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 다른 전설은 먹고살기 힘들어 산으로 올라간 도적을 피하기 위해서는 60명 이상이 산을 넘어야 했다는 험지로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고, 현재는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의 도계다. 해거름에 장계에서 함양에 다녀오면서 함양에서 장계를 다녀오는 일행과 휴게소에서 만나면 다정하게 어우러져 탁배기 한 사발을 땀에 젖은 컬컬한 입에다 시원하게 털어 넣는다.     

작가의 이전글 37. 자전거 마실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