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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f Mar 03. 2024

(영화) 어떤 여인들

certain women

같은 지역의 네 여인이 교차하며 조금씩 연결된 삶을 살아가는 옴니버스 구성의 영화로 감독인 켈리 라이카드가 그리는 특정 지역의 배경은 늘 깊은 우물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준다. 배우들의 연기 이전에 카메라가 응시한 풍경 자체가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고 때로는 속살의 그림자를 반사하는 연기를 하고 있다고 할까. 구체적인 서사를 제시하는 리얼리즘 영화들과도 조금 결이 다르게 보이는 이유가 매 순간 우리를 붙잡고 있는 복잡한 정서가 분열된 채로 배경 속에 녹아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미국 북서부 몬태나주 리빙스턴이라는 도시와 그 주변 마을이 배경인데 광활하고도 스산한 대륙의 풍경이 그대로 전해진다.


1 &2. 겨울 아르바이트로 목장에서 말들을 돌보는 여인(릴리 글래드스톤)이 저녁에 트럭을 몰고 마을에 나갔다가 우연히 들어간 주민센터에서 교사를 위한 학교법 야간 강의를 듣게 된다. 강사인 신입 변호사(크리스틴 스튜어드)는 학자금 대출 상환에 허덕이며 왕복 8시간 걸리는 작은 마을까지 야간 알바를 하러 왔고, 목장 여인의 안내로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게 된다. 변호사가 어려운 형편에 법학대학원을 졸업했는데 제대로 풀리지 않아 신발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오면 안 되기에 고군분투한다는 자조적인 얘기를 하자, 목장 여인이 말하길 "신발을 파는 게 두려운가요?"

밥벌이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저 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절적 취업으로 여러 일을 하면서 가지게 된 자신감 혹은 가벼움인가.

목장 여인에게는 직장이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직(職)도 장(場)도 흐르는 것이라 어떤 모양이 되든 크게 의미가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

 매일 말들을 축사에서 풀어주고 먹이를 초원에 던져두고 그 뒤를 개가 따라다니고 저녁에는 숙소에서 간단한 요기와 티브이를 보고 또 아침이 오면 같은 장면이 반복되는 여인에게, 변호사의 등장은 묘한 설렘이 스민 일상의 활력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3. 또 다른 에피소드의 여인은 사업가인 배우 미셀 윌리엄스.

다소 관계가 소원해 보이는 남편과 사업을 공동 운영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경영자인 미셀이 도시를 떠나 시골에 살고 싶어 집을 짓는 이야기들이 진행된다. 매입해 둔 토지 부근 이웃 정원에 버려진 듯 보이는 사암이 건축자재로 필요하지만 고집 센 할아버지의 추억이 어린 공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매번 거절을 당하고 만다. 할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방문한 어느 날 오래된 자신의 집과 정원을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마당 저편의 새소리가 마치 ‘How are you?’처럼 들린다고 하니 미셀이 호응하며 새소리 운율로 “I am just fine.”이라고 노래하듯 대답하는데, 피식 웃음이 났다. 공간에 대한 갈망은 서로 다른 모양이지만 닮아있다.


4. 마지막 여인은 변호사(로라 던)로 산재 소송 고객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약자의 억울함과 경제적 보상을 위해 애쓰지만 그 어딘가에서 접점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고객이 인질극까지 벌이는 상황까지 맞닥뜨리게 되고 직접 그 속에 개입하게 되는 일화이다. 그리고 위 미셀의 남편과 만남을 가지는 사이로 잠시 비친다.

    

목동인 릴리가 변호사인 크리스틴의 일터까지 찾아갔다가 자신을 낯설게 만드는 다른 삶의 기반을 보고 돌아오는 길의 쓸쓸한 운전, 또 다른 변호사인 로라 던이 강약의 사회구조 속에서 해결할 수 없는 피로감을 느끼는 저녁이 그리고 고집스레 자신의 집을 지어가는 미셀의 서늘한 캠퍼의 아침이, 그런 시간들이 층위를 달리하며 계속 쌓여가는 영화이다. 절대적인 결핍도 충만도 아닌 일상을 어떤 여인들은 담담한 풍경처럼 그렇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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