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rif May 18. 2024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Attila Marcel

사티(sati)라는 고대 인도의 팔리어가 있다. 불교 용어로 ’ 기억하다 ‘에서 파생한 명사 ‘염(念)’을 뜻한다. 요가와 명상 프로그램이 각광을 받으면서 사티는 알아차림, 마음 챙김 등으로 번역되어 사용되고 있다.  어떤 스님께서는 알아차림에서 그치지 않고 바른 기억을 잊지 않는 불망의 의미가 보다 더 정확하다고 하시는데, 아마도 몸이 기억하는 방식과 다르게 마음의 길을 내는 알아차림과 그것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일은 너무나 힘들기 때문인 듯하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은 기억에 관한 영화이다. 유년의 왜곡된 기억이 서른이 넘은 현재를 지배하는 주인공 폴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폴은 두 명의 이모와 함께 살며 그들이 운영하는 작은 무용학원에서 피아노 반주를 한다. 그러다 우연히 같은 아파트 주민인 마담 프루스트의 집에서 허브차와 마들렌을 통해 마치 최면술처럼 서랍 속 기억을 하나씩 길어 올리게 된다.


감독은 영화 여기저기에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를 풀어놓았다.

주인공들의 작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소설에서 유명해진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장치도 그러하다. 영화의 주제를 두괄식처럼 소개하는 듯한 도입부의 다음 인용 자막도 프루스트의 것이다.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때론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


영화의 원제는 주인공 폴의 아버지 이름인 ’아띨라 마르셀(Attila Marcel)’이다. 우리 제목은 ‘진정제가 되는 기억’의 길을 열어주는 이웃들의 치유자인 마담 프루스트를 더 비추고 있지만.

폴의 실어증과 악몽은 아버지에 대한 잘못된 기억에서 비롯되었다. 폴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회복하면서 비로소 말을 하게 되는데 아버지의 이름은 우리 마음 혹은 기억 속의 어두운 심연의 상징과도 같아서 원제가 더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한편 폴의 이모들의 모습은 블랙코미디처럼 그려진다. 그저 그들의 질서 안에서 조카가 안전하기만을 바란 욕망이  폴에게 ‘독약이 되는 기억’을 새겨 놓았다.  그들도 여동생 부부의 죽음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고 어떤 억압 기제 안에 갇혀 있는 듯해서 안쓰럽게 느껴지지만 그들의 공포가 조카에게 전이된 것 같다.


폴의 부모는 부실한 보수공사로 인해 이층에 사는 이모들의 피아노가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아래층에 사는 폴의 부모를 덮치는 사고로 당시 두 살이었던 폴이 보는 앞에서 사망했다.

평소 과한 교양의 갑옷을 두르고 지내던 이모들이 트루빌 해안가를 걸어가면서 브랜디에 절인 체리를 훑어 먹고 취해서 껑충거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조카의 양육자와 가족사에서 잠시 해방된 듯해서 처음으로 자연스러워 보였다.


폴은 어머니가 아버지의 폭력에 의해 사망했다고 믿고 자라서 모든 사진에서 아버지를 오려냈었다. 폴의 방을 몰래 살펴본 마담 프루스트는 그녀가 제조한 허브차와 마들렌으로 사실은 폴의 부모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고 자신 또한 아버지의 사랑을 받던 아이였다는 기억을 회복하도록 도와준다.

마담 프루스트는 아파트 안에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고 특정 약제를 넣은 듯한 허브차로 사람들을 잠시 행복했던 기억 저편으로 보내는 신비한 힐러로 나온다. 공원 나무아래에서 우쿨렐레를 연주하던 마담 프루스트는 암으로 사망하면서 폴에게 ‘너의 인생을 살아라(Vit ta vie!)’는 메시지와 함께 나머지 기억여행을 위한 허브차를 남겨 준다.


폴은 이모의 기대로 시작한 듯한 피아니스트를 접고 마담 프루스트의 우쿨렐레를 강습하며 지낸다. 결혼도 하고 자신의 아이가 ‘파파’라고 말하는 순간에 같이 파파를 발화하며 잃어버린 언어와 시간을 찾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불가에서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론으로 여덟 가지 길(팔정도)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른 기억(정념 正念)’을 잊지 않는 수행이다.

영화를 보면서 다소 결이 다른 ‘사티’가 떠오른 이유는 어딘가로 기울어져 굳어진 기억이 저절로 먼저 작동해서, 일어난 마음을 제대로 바라보기도 전에 그 기억에 사로잡힌 행위가 반복되었던 어리석은 순간들 때문이다. 폴을 비롯한 영화 속 인물들이 그러하듯이.  


몸이 우리가 반복한 어떤 행위를 시간이 흘러도 기억해서 나아가는 것처럼 마음도 길을 만든다고 한다. 청정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오월 푸르른 날에 온 사방이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으로 가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한 발만 내미는 마음만 내면, 그리고 제대로 기억하고 또 기억한다면…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영화) 어떤 여인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