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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랏빛인생 Sep 08. 2021

02. 슬기로운 상견례 생활(1)

결혼을 준비하면서 엄마 가슴에 못 박을 수는 없다

코로나 상황 속, 스몰웨딩을 꿈꾸다!


  작년 10월, 결혼 준비를 시작할 때만 해도 코로나가 이렇게 내 결혼에 많은 민폐를 끼칠 줄은 몰랐다. 약간 철없는 소리이긴 해도, 나는 내심 코로나 상황 속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 것이 좋았다.


결혼 준비에 필요한 수많은 절차들, 연락이 끊어진 지 오래인 지인들을 초대할지 말지 결정하는 일, 웨딩촬영, 식장 선정 등등 나에겐 무겁고 귀찮은 일들이 대폭 줄어들고 쉽게 지나갈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소위 말하는 '스몰웨딩' 가능할 줄 알았던 것이다.


나의 철없는 기대는
상견례 시작부터 무참히 짓밟혔다

올 10월에는 결혼식을 올릴 생각이던 우리는 결혼 날짜를 잡으려면 양가 상견례부터 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주변에 결혼한 친구가 없는 나는 결혼을 위해 해야 할 일에도 순서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모르면 검색이라도 해서 알아내야 하건만 무언가를 계획성 있게 준비하는 일은 어릴 적부터 잼병이었다.


2월이 되어 상견례는 언제 하냐는 아버님의 은근한 압박두세 차례 이어져서야 본격적으로 상견례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상견례 때 나누지 말아야 할 대화 목록이 있다는 사실을 미혼인 사람들은 상상조차 못 할 것이다. 상견례를 할 때는 불편한 다툼이 생기지 않도록 결혼 장소, 결혼 날짜, 예물, 예단 등 결혼과 관련된 대화를 절대 나누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니 사전에 신랑 신부가 부모님의 의견을 잘 탐색하여 조율을 모두 한 뒤에 만남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검색을 싫어하는 나를 대신해 기특하게도 그가 여러 카페를 전전하며 알아온 일종의 상견례 지침이었다.


그렇다면 결혼 장소는 어디로 할 것인가

우리가 근무하는 지역은 북부 지역의 시골 C시, 나의 부모님이 사시는 곳은 중부 지역의 중소도시 G시, 그의 부모님이 사시는 곳은 남부 지역의 대도시 B시였다. 보통 결혼식은 여자 쪽에서 한다고들 하지 않는가. 그럼 G시로 할까. 아니 아니 G시는 괜찮은 예식장이 없을 수도 있어. 그럼 친척들이 많이 사는 근처 D시가 나을까.


생각이 복잡할 무렵, 그가 입을 열었다. 자신의 부모님이 고향인 B시에서 하기를 원하신다는 것. 솔직히 처음 드는 생각은 'B시면 엄청 큰 도시니까 예식장 고르기는 좋겠구나'였고, 다음은 '우리 부모님은 괜찮으시려나'였다. 그리고 관행적으로 여자 쪽에서 하는 결혼을 B시에서 하자는 아버님이 왠지 얄밉게 느껴지게도 했다.


착하디 착한 그가 어렵게 꺼내는 말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 엄마에게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결혼식을 G시 아니면 B시에서 해야 할 텐데 대도시인 B가 식장도 선택지가 많을 것 같고 결혼 준비를 하기가 더 좋을 것 같아."


"어머 얘는, 근처 D시에서 하면 되지. 친척들도 거기 많이 사는 구만. 원래 결혼식은 여자 쪽에서 하는 거잖아."


그래, 역시 우리 엄마.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다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양식, 관행, 전통을 따르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 엄마답게 첫마디는 난색이었다. 결국 사실을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아버님께서 B시에서 하길 원하셔. 교수님이시니 아시는 분도, 초대하실 분도 많으신가 봐."

"그리고 나도 B시가 좋아. 결혼 준비하는 데는 대도시가 좋지!"


결혼 첫 시작부터 아버님 의견을 중요하게 전달하는 딸이 서운하지는 않을까 황급히 뒷말을 덧붙였다.


다행히 엄마는 아빠랑 의논해보고 결정하겠다 했고, 별 탈 없이 부산에서 결혼을 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겨우 결혼 장소 하나 결정하는데 이리저리 눈치를 얼마나 보았는지 숨이 다 찼다.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가슴 졸이며 변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한 번은 아버님이 C시에 잠깐 들리셨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식사를 하러 나갔다. 갑작스러웠지만 인사까지 한 마당에 안 나갈 수도 없었다.


식사 중에 결혼 후에 C시에서 우리가 거주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다. 향후 몇 년 정도 더 C시에 거주할 것이기 때문에 그가 살던 원룸을 내놓고 결혼하면 살게 될 아파트 미리 구해 그가 먼저 이사를 할 계획이었다.


그곳으로 나도 함께 이사를 하라는 제안이었다. 곧 결혼할 건데 뭐하러 떨어져 사느냐는 것이었다. 솔깃한 제안이었다.


무엇보다 그렇게 하면 둘의 이사를 한 번에 끝낼 수 있었다. 짐이 많은 나는 그가 아파트로 들어갈 때 한 번, 내가 아파트로 들어갈 때 또 한 번 이사를 하는 일이 버거웠다.


오호! 동거도 흔한 세상에 곧 결혼할 남녀가 미리 집을 합치는 것이 뭐가 문제겠는가.


식사가 끝나고 엄마와 통화를 하다 이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가 좀 보수적이긴 하지만 지난번에도 아버님 말씀에 따라주셨으니 이번에도 그렇지 않을까 하던 기대도 있었다.


아버님 아니라 할아버님이 와도 안된다.


시집도 가기 전에 집을 왜 합친다는 거냐. 엄마가 같은 여자로서 말하는데 절대 안 된다. 이게 다 널 위한 거다.


사실 엄마가 저 때 한 말은 아직도 다 이해하지 못했다. 평소 같았으면 합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엄마의 말을 따랐을 리가 없다. 내 의견을 100번이고 말하고 싸워서 관철시켰을 것이다.


 내가 부모님의 의견을
이토록 중요하게 여겨본 적이 있었던가


그동안 부모님 말씀에 단 한 번도 곱게 "예. 알겠습니다." 한 적이 없던 나로서는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정서적 독립을 핑계로 엄마와 얼마나 크게 다퉈왔던가. 제멋대로 살던 나에게 부모님의 의견을 이토록 존중하고 쩔쩔매는 상황은 너무나도 생경하였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우리 엄마 마음에 못을 박을 수 없다


결혼 준비를 시작하며 생긴 대명제였다. 내가 그동안 엄마 말을 안 듣는 잘난 딸이었지만 시집은 곱게 가고 싶었다. 안 그래도 서운할 엄마 마음을 조금이라도 아프게 하지 않고 결혼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2번의 이사를 하기로 하였다.


처음으로 엄마 말을 순순히 따랐다. 예쁘게 꾸며진 아파트를 뒤로한 채 좁고 낡은 사택에 살아야 하는 내 마음은 씁쓸하기 그지없다. 이런 게 어른이 된다는 것인가. 결혼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그런데 아직 상견례는 시작도 못했다


본격적인 상견례 준비에 관한 이야기는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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