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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fessor Sunny Jan 13. 2022

미국 생활문화에 버무려지기

미국에서 지낸 시간

내가 처음 교수로 자리를 잡았던 대학에, 같은 해에 임용된 인연으로 만나 아직까지 연락을 이어가고 조언을 얻기도 하는 언니 같은, 친구 같은, 좋은 동료 교수가 있다. 


얼마 전 이 동료 교수는 한국의 모교로 이직하면서 역이민을 가게 되었는데, 나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서 자리를 잡고 살게 되었다는 사실에 하나만으로도 “너무 좋겠다”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며칠 전의 대화에서 동료 교수는 한국생활이 다 좋은데, 본인도 모르게 사고나 생활방식이 Americanized (미국화)된 모양이라며 미국에서 지낸 십여 년의 시간은 무시 못하는가 보다라며 반추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내가 얼마큼쯤 미국 문화에 영향을 받았을까를 (acculturation) 생각해봤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구체적일까. 


아이를 학교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에, 소방차가 불을 밝히고 옆으로 지나갔다. 소방차가 지나가면 사방의 모든 차들이 주행을 멈추고 갓길로 차를 정차해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일리노이는, 큰 길가 신호등에 추가적으로 전구가 하나씩 더 붙어 있다. 이 전구는 소방차가 다가올 때 엄청 밝은 밝기로 깜빡 깜박거리고, 소방차가  그 길을 지나간 직후에는 깜빡거리지 않은 채로 약 30초간 밝은 빛을 계속해서 내보내며 소방차가 방금 지나갔음을 알려주는 목적을 한다. 소방차가 여러 대 한꺼번에 지나가야 한다거나, 출퇴근 시간이라 도로가 복잡하면, 소방차의 원활한 직진을 위해, 신호등의 순서가 인위적으로 바뀌기도 한다.  



많이 알려진 것처럼, 스쿨버스에 대한 룰을 지키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스쿨버스가 불을 반짝 거리며 스탑 사인을 올리면, 그 주변의 모든 차들이 움직임을 멈춰야 한다. 아이 한 명이 그렇게 버스에 타서 안전하게 앉은 것이 확인되면 그때서야 버스가, 천천히 스탑 사인을 내리고, 밝혔던 불을 끄는데, 이 과정이 꽤 시간이 걸린다.  


처음에는 길 한복판에서 이런 스쿨버스의 느긋함이, 또 눈이 쨍하도록 쏘는 신호등의 밝은 빛이 엄청나게 거북하고 안달 나게 했었는데, 살다 보니 어느새 ‘그래 안전이 최고지’ 라며 맞장구가 쳐진다. 그리고는 그것이 없는 상황을 생각해 보았을 때 , ‘안전에 대한 대책이 없군!’ 하며 불안한 느낌까지 든다.  


이것이 가장 최근에 겪은 미국화의 일련의 예가 아닐까 싶었다. 문화는 보이진 않을지언정 나를 둘러싸고 있고,  그것에 대해 억지로 주입하지 않아도 그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물들게 된다. 미국에 살며 미국 생활문화에 버무려지는 과정을 자연히 겪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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