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하다가 기둥에 앞 범퍼가 걸렸다. 엑셀에서 발을 떼기엔 이미 늦었고 그대로 뜯겨 나갔다.
그냥 덤덤했다. 그 상태로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고 돌아왔다.
겨우 이것 때문에 내 시간을 낭비할 순 없으니까.
사고가 터졌을 때 항상 거치는 생각의 프레임워크가 있다.
당황하고 슬퍼한다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고 감당 가능한지 파악한다.
그다음 내가 해야 할 액션을 순서대로 그려본다.
1. 놀라긴 했지만 당황하진 않았다. 차에서 혼자 웃고 있었다. 상황이 너무 웃겼다.
2. 센서까지 다 나가고 차를 새로 바꿔야 된다고 해도 감당할 수 있다. 이런 여유를 위해 열심히 살았으니까.
3. 테슬라 Service centre에 예약하고 가서 수리 맡기면 한 번에 해결된다.
범퍼가 뜯긴 건 처음이지만 인생에서는 이것보다 더한 사고들이 많았고 그때마다 잘 이겨내 왔다.
그리고 사고가 났는데 뿌듯했다.
예전의 나였으면 어쩔 줄 몰라서 여기저기 전화하고 난리 쳤을 텐데 많이 강해졌다 생각했다.
이제 난 폭풍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빗속에서 춤추는 방법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