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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장재형 Jul 30. 2023

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

제목 : 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

저자 : 리처드 J. 번스타인

출판사 : 한길사

분야 : 인문학

쪽수 : 200쪽 / 양장본

난이도 : 중

《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는 아렌트가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인 1972년부터 학문적 교류를 이어온 뉴욕 뉴스쿨의 리처드 J. 번스타인 교수가 쓴 책이다. 아렌트 정치사상을 ‘난민’, ‘악의 평범성’, ‘혁명정신’이라는 3가지 주제 아래, 무국적 상태와 난민, 정치 그리고 거짓말, 인종주의, 혁명 그리고 정치적 책임 등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문제에 한나 아렌트가 답하는 책이다.

이 책의 서론에서는 아렌트의 사유를 형성한 그녀의 삶의 여러 국면 가운데 일부만을 간단히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1906년에 비종교적인 독일계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아렌트는 후설, 하이데거, 야스퍼스, 불트만 같은 독일의 탁월한 철학자 및 신학자와 함께 공부했다. 나치와 강력한 반셈주의의 불길한 성장에 대항해 시온주의자 친구들을 돕다가 구속당한다. 8일간 조사받고 운좋게 풀려난 아렌트는 체코슬로바키아를 거쳐 파리로 도망친다. 이후 미국으로 망명해 미국 시민권을 얻기까지 공식적으로 18년간 아렌트는 무국적 상태로 지내게 된다. 이것이 아렌트가 무국적자의 곤경과 난민들의 어려운 상태에 민감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다. 즉, 무엇보다 아렌트가 난민이었다는 점은 그녀의 주요한 정치사상이 ‘무국적 상태’와 ‘난민’ 주제에서 비롯하는 이유다.

일반적으로 난민이란 어떤 행위나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피난처를 구해야만 하는 내몰린 사람이다. 그런데 그녀는 우선 우리는 ‘난민’이라고 불리기 원하지 않고, 자신들은 ‘신참’ 또는 ‘이주자’라고 부른다고 선언한다. 그 이유는 그들은 행위나 말 또는 그 어떤 것 때문에서가 아니라 나치가 유대 종족의 일원이라고 판결했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난민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무국적 상태의 난민이라는 지위는 인권, 양도 불가능한 권리, 인간적 권리 등에 관한 다름과 같은 어려운 문제를 야기한다.

“인간이 자신만의 정부를 지니지 못하거나 또는 최소한의 권리만을 갖는 상태로 추락하자마자, 어떠한 권위도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남겨져 있지 않고, 또 어떠한 제도도 인권 보장을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권리를 갖지 못한 자의 파국은 그들이 삶, 자유, 행복 또는 법 앞에서의 평등을 추구할 권리 그리고 의견의 자유를 박탈당했다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더 이상 그 어떤 공동체에도 더 이상 속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무국적 난민은 “잉여적인” 존재로 남게 되었을 때, 어느 누구도 그들을 “요구하지” 않을 때, 바로 그때에만 그들의 삶은 위험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특정한 권리의 상실이 아니라, 인간적 품격을 상실하지 않고서도 소위 인권이라는 모든 권리를 상실할 수 있음이 드러난다. 정치제 자체의 상실만으로도 인간은 인류에게서 축출될 수 있다고 아렌트는 말하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전체주의적 해결책들은 전체주의 정권의 몰락 이후에도 인간에게 가치 있는 방식으로 정치적 · 사회적 또는 경제적 고통을 완화하는 일이 불가능해 보일 때면 언제나 나타날 강한 유혹물의 형태로 살아남을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즉, 전체주의 체제의 붕괴 이후에 일어난 대량학살과 고문의 사용에서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무국적 상태의 인간과 난민이 전 세계적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점과 그들이 마치 잉여적 존재인 것처럼 다루어지는 모습에서, 우리는 권리를 가질 권리를 파괴하고 있다는 아렌트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어야 한다.

1965년에 출간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 개념을 제시했고, 그녀의 주저인 《인간의 조건》에서 ‘활동적인 삶’을 노동과 작업과 행위의 삼중 구조로 조명했다. 또한 그녀의 유고작 《정신의 삶》 역시 사유, 의지, 판단의 삼중 구조를 갖추고 우리의 삶에서 정신의 삶이 왜 중요한지를 조명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오늘날 한나 아렌트를 읽어야 하는가?

그녀가 지닌 긍정적인 정치관은 오늘날 정치에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비판적 기준을 제공한다. 즉 아렌트는 이념적 대립의 틀에서 강조된 정치를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이론을 제시하면서 그의 저서들은 냉전 질서의 붕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재조명하고 있다.


그리고 아렌트의 사유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책임에 대한 가장 깊은 그리고 오늘날에도 적실성이 있는 주제는, 우리가 자신의 정치적 삶에 책임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거짓된 희망과 잘못된 절망에 모두 저항했다. 그녀는 우리 시대의 어두움, 즉 거짓말, 기만, 자기기만, 이미지 메이킹, 진실과 거짓의 차이를 소멸하려는 시도 등이 여전히 존재하며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고 끊임없이 경고했다. 아렌트 자신이 설정한 과제, 즉 우리의 세기가 우리에게 지운 짐을 지고 그것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그 무게에 패기없이 굴복하지 않는 일말이다.


오늘날 우리가 아렌트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아렌트가 우리 앞에 아직도 버티고 서 있는 위험들을 예민하게 잘 이해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이 되지 않도록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우리의 정치적 운명을 책임지라고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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