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레오나르도 다 빈치, 단테, 미켈란젤로 등 수많은 천재들을 낳았고, 학문과 예술의 부활을 의미하는 ‘르네상스’의 꽃을 피웠던 아름다운 도시 ‘피렌체’.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에서 태어나 활동했던 ‘마키아벨리’의 삶은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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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여신 ‘포르투나’는 머리에 왕관을 쓰고, 한 손에는 풍요를 상징하는 ‘코르누 코피아이’라는 염소의 뿔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운명의 키를 들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둥그런 공 위에서 서 있기 때문에 변덕스럽다고 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운명과 역량의 관계에 관해 이야기 하면서 운명은 내 의지와 무관하기 때문에 역량에 기반을 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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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자신에게 저항할 역량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데서 그 위력을 떨치며, 자신을 제지하기 위한 둑이 마련되지 않은 곳을 덮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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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는 유배 시절에도 때를 기다리는 강태공처럼 언젠가 올 기회를 기다리면서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비록 메디치가에게 공직과 재산을 빼앗기고 죽는 날까지 공직에 나가지 못했을지라도 한탄하며 허송세월을 보내지 않았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의 글을 쓰면서 독서와 토론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인문주의자였다. 정치서인 『군주론』『로마사 논고』와 역사서인 『피렌체사』 등이 이 시기에 나온 저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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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에 있어서 메디치가는 금융업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해 예술가와 철학자에게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메디치가는 음악가, 예술가, 철학자를 적극적으로 후원하면서 문화예술의 발전을 이루었고 그로 인해 르네상스가 탄생하게 했다.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브루넬레스키, 갈릴레오 갈릴레이,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메디치 가의 경제적 후원을 받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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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안타깝게도 마키아벨리와 메디치가는 물과 기름처럼 하나가 될 수 없었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공화정이 메디치가의 군주정으로 전환되는 시기에 살았다. 메디치가가 피렌체 시민들의 공화정 복귀 운동으로 피렌체에서 쫓겨났을 때 마키아벨리는 메디치가를 대체한 공화국 정부에서 외교와 국방을 맡아 일했다. 그런데 메디치가가 다시 집권한 뒤에는 자리에서 쫓겨난 데다 반메디치가 음모 혐의로 고문까지 당했다. 마키아벨리에 대해 읽어보면서 정말 안타까웠던 부분은 메디치가가 그를 알아보지 못했던 부분이다.
마키아벨리의 저서인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 등은 그가 살았던 문화와 예술이 부흥했던 르네상스 시대와 강대국들의 침략, 내부의 파벌 다툼이 끊이지 않던 피렌체의 정치 상황이라는 시대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또 그를 악명 높게 만든 군주론 때문에 생긴 ‘마키아벨리즘’은 무엇인가? 왜 마키아벨리는 군주를 정치의 중심으로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군주론》을 썼는데, 왜 《로마사 논고》에서는 고대의 로마공화정을 이야기하면서 공화주의를 주장했을까?
이런 의문점들을 클래식클라우드에서 나온 마키아벨리라는 이 책은 아주 자세히 잘 설명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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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을 다니면서 전령 역할을 하던 마키아벨리가 베토리에게 보낸 편지 속 유명한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나는 내 영혼의 구원보다 조국을 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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