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 May 12. 2024

홀로. 카페에 앉아 쓴다

아이들을 애들아빠와 함께 키즈카페에 들여보내고 혼자 같은 건물의 다른 카페에 와있다. 아직 아이들끼리만 아빠를 만나게 하지는 못하겠다. 애들아빠가 집까지 와서 아이들을 데리고 가 면접교섭을 하고 데려다 주는 집들도 많던데. 나는 애들을 그렇게 보내면 아이들이 다시는 내게로 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래서 무섭다. 그래서 이렇게 근처에서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무사히 집로 돌아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작은애는 키즈카페 입구에서까지 엄마도 같이 들어가자고 징징대다 겨우 들어갔다. 얘도 뭔가 두려운걸까. 그래도 잘 놀고 있겠지. 아빠를 만난다며 설레서 잠도 잘 못 잤으니까.


읽던 책을 저 읽고 창밖으로 사람구경을 한다. 뒷자리 사람들의 대화도 듣는다. 남은 자유시간은 30분 남짓. 이제 정오인데 아침부터 세 잔의 커피를 마셨다. 카페인도 내성이 생긴다더니. 커피는 더이상 아무것도 깨우지 못한다. 이젠 그냥 습관처럼 들이붓고 손톱만한 위안만 얻을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이가 들수록 아메리카노보다는 라떼를, 아이스보다는 따뜻한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뜻하고 고소하고 쌉쌀한 카페라떼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만큼은 나도 좀 괜찮고 싶어진다.

 

잠을 안 자거나 잘 자고 살 수는 없을까. 어찌보면 나를 괴롭히는 건 다 '잠'에서 비롯된 것 같다. 자고 싶을 때 잘 수 없고 잘 수 있을 때 잠들지 못한 지 몇 년째니까. 쓰고싶을 때 쓸 수 없고 쓸 수 있을 때 쓰지 못하는 것도 비슷하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 즉 자신의 행동과 의사결정을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데 그것도 꾸준히 써야 유지되는 능력인 것 같다. 내 자유의지는, 쓰지 않아 사라진 온몸의 근육처럼 서서히 빠져나가 이제는 물컹하고 쪼글해져 버렸다. 이제는 내가 일하고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애들 보는 일 말고 뭘 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지친다. 자다 깨면 자주 어지럽고. 잠을 잘 못자니 지친 몸과 마음이 회복되지가 않는다.


어제는 <그것이 알고싶다> 에서 쓰레기집에 사는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발바닥에 먼지가 밟히는 것이 싫어서 하루에도 몇번씩 물티슈를 슥슥 뽑아 바닥을 닦아대고, 한끼 먹은 설거지도 싱크대에 담가두지 못하는 의외로 깔끔한(?)성격이지만, 쓰레기집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대체가 엄두가 안 나고 힘이 안 나는. 나도 그렇다. 겉은 멀쩡한데 어딘가가 그렇다. 정확히 어디가 그런지 알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 도려내든 씻어내든 꿰매든. 어쨌든 좀 쓸만한 것으로 만들고 싶.


밤새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이제 해가 난다. 올해는 유난히 비와 바람이 잦은 것 같다. 더웠다가 추웠다가 날씨와 날짜가 영 들어맞지를 않는다. 사계절이 서서히 오고가는 게 아니라 누군가 막 장난을 치다가 계절 하나를 뭉텅이로 툭 떨어뜨려놓고, 또 어느날 훅 낚아채가는 것 같다. 시간도. 세월도. 삶도.




"엄마 어디야?뭐해?"

큰애에게서 문자가 왔다.

고맙고도 지겨운 물음.

한번 읽어볼 새도 없이 글은 이렇게 끝고.

나는 돌아다.






작가의 이전글 흰죽을 끓이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