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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Jun 10. 2024

어제는.

 내가 이렇게 늦은 밤에, 부담스러우리만큼 새하얀 창을 열고 굳이 쓰고자 하는 것이 일기인지 글인지 모르겠다. 일기도 글이라면 글이지만, 왠지 '오늘은 뭐했고 뭐했고 그래서 뭐했다.' 식의 단순한 일기는 여기에 쓰면 안 될 것 같다. 그런 일기는 블로그에 천도 넘게 쌓여있다. 나는 일상적인 것은 뭐든 잘 잊어버리기 때문에, 다 잊혀지는 게 싫어서 종종 그날 찍은 사진과 함께 간단한 일기를 기록해둔다. 조회수는 0에서 3사이. 정말 단순히 '기억하기 위한 기록'이외의 의미는 없는 글들이다. 지금 쓰고 싶은 것도 어찌보면 어제의 일기인데, 그래도 오늘은 왠지 여기다 쓰고 싶다. 아마 단순한 기록을 넘어서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하루였단 뜻이기도 할다.


 어제는 비가 왔다. 아이들과 아침을 챙겨먹고 오전 11시에 하는 캐리러브콘서트 공연을 보러 갔었다. (방방 뛰는 수많은 들과, 그렇고 그런 내용의 어린이 공연을 보면서 네번이나 울컥했는데 이건 따로 한 편의 글로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애들 아빠를 만났다. 벌써 세번째 만남이다. 인수인계하듯 아이들만 전해주고(?) 나는 근처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둘째가 격하게 거부해서 결국 넷이 같이 하루를 보냈다. 둘째는 아빠랑만 있는 건 싫다고 했다. 언니가 있는 건 상관없고 엄마가 꼭 있어야 한다고 했다. 며칠을 설득해봤지만 엄마도 제발 같이 있자고 징징대더니 결국 울기까지 했다. 아빠를 만나는 게 싫으면 언니랑 아빠 둘이 데이트하게 놔두고 너는 엄마랑 둘이 있을래 물 봤더니 그건 또 싫단다. 아빠도 보고 싶은데 엄마가 없이는 안된단다. 생각해보면 둘째의 반응이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다. 겨우 돌이 조금 지나서까지, 그것도 주말에만 보던 아빠가 4년만에 나타났으니, 아이 입장에선 그냥 어떤 아저씨가 갑자기 나타나 "내가 니 아빠야" 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아빠'란 존재는 간절했으니까 좋았을 거고. 좋지만 불편한데다, 아빠를 만나면 엄마가 자꾸 혼자 사라지려고 하니까 불안하고. 그랬을 것이다. 그 마음을 알기에 억지로 떼놓진 못했다. 아빠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생길 때까지는 싫어도 내가 같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사실은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 얼마나 스스로 확신이 없었으면 네이버 검색창에다 면접교섭할 때 부모가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있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거기가 아니면 물을 데가 없고, 이런 걸 말할 데도 없는 게 현실이다.


 아무튼 넷이 같이 피자를 먹고, 넷이 같이 아쿠아리움에 가고, 넷이 같이 바닷가를 거닐고, 넷이 같이 아이스크림도 먹고, 넷이 같이 지하철도 탔다. 귀여운 딸 둘을 가운데 두고 다정하게 넷이 손을 잡은, 아니면 딸 둘이 노는 걸 뒤에서 흐뭇하게 지켜보는, 누가 봐도 평범하고 행복한 가족의 외형이었다. (아, 아쿠아리움 직원이 가족사진을 찍어주겠다는데 내가 심하게 손사레를 치며 뒷걸음질 쳤던 것만 빼면.) 솔직히 나는 그 모든 상황이 불편해서 평소와는 달리 아이들 사진도 한 장 찍지 않았고, 행여나 그 사람이 찍는 아이들 사진에 내가 걸리지나 않을까 이리저리 피해다니기 바빴다. 내가 불편한 만큼 그 사람도 불편했을 것을 알기에, 나중에는 내가 사과해야 하나 생각도 들었다. 한달만에 만나는 아이들인데, 아무래도 내 눈치가 보여서 편하게 시간을 보내진 못했을 테니까 말이다. 재판상 판결 결과만큼의 양육비를 받게 되니, 판결 결과만큼의 면접교섭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에 신경이 쓰인다. 규칙적으로 뭔가 방법을 정해서 면접교섭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데, 굳이 내가 먼저 말을 꺼낼 필요가 있나 싶어서 그냥 있다. 자기가 한 짓을 생각하면 자기가 더 노력해야지, 필요하면 자기가 먼저 말하겠지, 4년이란 시간이 고작 세번의 만남으로 메꿔지겠니, 이게 다 누구때문인데. 자꾸만 이렇게 욱하는 마음이 든다. 그러면서 어떤 순간, 어떤 모습에는 또 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동정심이나 미안한 감정을 느껴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저사람이라고, 속으로라도 스스로에게 매섭게 굴어야 겨우 그런 생각이 떨어져 나간다. 이혼할 때 누군가 내게 '너는 마음이 약해빠져서 큰일이다. 걱정이다.' 하길래 너무 화가 났었는데, 아주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이게 다 공존할 수 있는 감정인가 싶다. 얼마나 지나야 아무렇지 않게 애들 엄마로서, 애들 아빠로서, 감정없이 서로를 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애들 고모는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선물을 보내왔다. 고모는 전남편보다 나이는 많지만 결혼하지 않은 싱글인데 예전부터 아이들 선물을 자주 주곤 했었다. 아이들은 선물은 둘째치고 자신들에게 고모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큰애는 생각끝에 강아지를 여러마리 키우던 고모를 기억해냈고, 작은애는 고모라는 단어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질문을 필요로 했다.  "아빠는 고모를 어떻게 알아? 아빠는 고모를 볼 수 있어? 엄마는 고모를 알아? 고모는 왜 자꾸 나랑 언니한테 선물을 줘? 고모는 어떻게 생겼어? 고모는 어디에 살아?" 등등... 고모는 아빠의 누나고, 이모랑 비슷한 존재라고 설명을 해주면서 앞으로 고모보다 더 큰 존재, 더 많은 질문이 기다리고 있을 것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애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말이다. 아이들은 머지않아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고모를 만나게도 될까. 좋은 걸까 안 좋은 걸까. 나는 또 어떤 표정을 지으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을 해줘야 할까.

 그동안은 마음껏 미워하기만 하면 됐는데, 이제는 생각할 일도, 해야 할 일도, 감당해야 할 감정도 더 늘었다.


 대충 헤어지면 될텐데, 비도 추적추적 내리는데, 그 사람은 굳이 아이들을 내 차에까지 태워주었다. 내가 작은애 카시트에 벨트를 매는 동안 내 등짝이 비에 지 않도록 우산을 들어주고 짐도 실어주었다. 매번 아이들이 차에 타는 것까지 보고 가는데, 그래도 차가 출발하는 건 절대 보지 않는다. 태워주고 안녕하면 그 길로 곧장 뒤돌아 가버린다. 슬플까, 후회될까, 그래서 울면서 갈까. 아니면 내가 너무 미울까, 그래서 증오하면서 갈까. 항상 뒷모습을 봐야하는 나는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무거워진다. 앞으로 잘할테니 아이들이랑 같이 살면 안되겠냐고 애원하는 모습과, 안 돼 싫어, 하는 내 모습, 그리고 너무 힘드니 그냥 다같이 죽어버리자 하고 무섭게 구는 모습이 상상된다. 그동안 범죄관련 프로그램을 너무 많이 본 것 같다. 나쁜 상상을 너무 많이 하면서 살아온 것 같다. 고개를 휘저어 정신을 차리고, 백미러로 아이들을 한번 더 확인한 뒤 "이제 출발한다!" 하고차를 움직인다.


 아이들이 그랬다. 엄마는 아빠를 만나면 조용하고 착해진다고. 그리고 예쁜 척을 한다고.('예쁜 척'이란 말은 좀 당황스럽지만 아마 말을 거의 안하고 화도 안 내고, 애들을 보며 빙긋 웃는 일만 많으니 그렇게 느끼나보다.)  내가 얼마나 어색한 모습인지 아이들도 아는 거겠지. 다음번에는 아빠랑 뭐하고 싶냐고 물어보니 큰애가 오래 고민하다가 물었다. "근데... 아빠가 우리집에 오는 건 안되지? 같이 집 밑에 놀이터가고 집에서 놀고 싶은데... 그건 좀 그렇지?"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아, 아니다. 다음에는 놀이동산 가자고 할까?" 하고 말을 돌리는 딸. 어떤 아이에겐 가족이 다같이 놀이동산에 가는 게 소원일 수도 있지만, 어떤 아이에겐 (집에서 잠만 자는 아빠라도, 부스스한 모습으로 화만 내는 엄마라도) 그저 가족이 모두 같은 집에 모여있는 게 소원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한다. 마음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다. 누구에게나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으니, 아이도 나도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


 내가 사진 한 장 안찍는 걸 봤는지 전남편이 거의 100여장 가까이 되는 아이들 사진을 보내왔다. 이렇다저렇다 말은 없다. 나도 말없이 사진만 받으려다 용기를 내서 메시지를 보냈다. '고마워요, 아이들 보여줄게요.'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 맞게 하고 있는 건지, 뭘 더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어렵다. 처음만 어렵다더니 갈수록 더 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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