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 Jun 20. 2024

그래도 일은 해야지

 얼마 전, 시설관리실무원 채용면접이 있었다. 1명 선발에 지원자는 총18명이었고, 그 중 서류심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세 분이 면접심사를 보러 오셨다. 준고령자 우선채용 직종이라 모두 60세가 넘은 분들이셨는데, 세 분 다 무더운 날씨에 양복차려입고 20대 청년들 못지 않게 진지한 표정이셨다. 그 중 한 분은 유독 긴장을 많이 하셔서 에어컨을 틀어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연신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 몇번이나 자세를 고치며 대기실에 앉아계셨다. 두 번째로 그 분의 면접순서가 되어 "OOO님" 하고 호명을 했더니, ㅇㅇ님은 오른손으로 가슴을 한번 쓸어내리고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대기장에서 면접장으로 가는 스무걸음도 안되는 사이, ㅇㅇ님은 두번이나 "잠시만요."하며 걸음을 멈추셨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와 콧잔등에 맺힌 땀을 꾹꾹 눌러닦고, 안경을 다시 고쳐쓰고, 양복을 한번 매만진 다음 "후우-"하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긴장을 푸셨으면 해서 "천천히 편하게 하세요"라고 웃으며 말씀드렸는데, 별로 도움이 된 것 같진 않았다. ㅇㅇ님을 면접장에 들여보내드리고 시간을 재며 복도를 지키고 서있는데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이게 뭐라고, 예순이 넘은 나이에 저렇게 긴장하고 떠실까. 저 나이가 되어도 저렇게 간절하게 일이 하고 싶을까. 내 남루한 경험으로는 그 마음을 조금도 짐작할 수 없어 어쩐지 더 먹먹했다.



 아빠와 엄마 생각이 났다. 1956년생 우리아빠와 1960년생 우리엄마. 자식이 셋이나 있어도 부모를 부양하는 자식은 없기 때문에, 용돈 한 푼 제대로 드리지 못하기 때문에, 부모님 역시 최대한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 걸 삶의 목표로 두고 사는 분들라, 아빠는 여전히 몸쓰는 일을 하고, 엄마 또한 정년퇴직 후에도 여전히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중이다. 3월쯤이었나. 엄마는 시간에 만원공공기관 자원봉사 자리를 구했다가 얼토당토 않은 일로 분노해 그만두셨는데, 한참 후에 '그래도 한번 참아볼걸 그랬나' 하고 읊조리는 모습에 내가 너무 속이 상 "그냥 백화점 한번 안 가면 되지!" 하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차라리 "두시간에 만원 내가 줄게!!"  걸...)

그리고 얼마 전, 아빠는 갑자기 얼굴 반쪽이 마비됐다. 병원에서는 구안와사라고, 무리해서 그렇다고 했단다. 이제 집에서 좀 쉬라고, 이제 아빠도 일을 그만할 나이 되셨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엄마아빠를 부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차마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할 자격이 내겐 없었다. 나는 그저 '무리하지 마세요'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후로는 열흘이 넘도록 전화 한 통 하지 않고 있다. (자식의 자격마저 없는 것 같다.) 우리 엄마 아빠는 언제쯤 일, 그러니까 돈을 벌기 위한 노동에서 벗어나 쉴 수 있을까. 엄마 아빠 중 한 분이라도 퇴직연금이 빵빵한 직업이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등 쓸모도 없는 우리 삼남매의 대학 졸업장을 얻는 데 들어간 돈으로 건물을 한 채 샀다면. 그래서 월세라도 을 수 있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자꾸 든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나라는 것이 말할 수 없이 미안하다.



 지난 3일간집에서 한시간 거리인 연수원에서 업무관련 연수를 들었다. 이렇게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면 어딘가 좀 괜찮아진다.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과 있을 때면 그게 어떤 일이든간에 나와 내 일이 한없이 초라해짐을 느끼곤 하는데, 이렇게 모여있으면 나 혼자만 이렇게 사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내 일도 일이라는 생각에, 안도감과 동병상련 비슷한 걸 느낀다. 한 강사님이 "1,2,3너무 힘드셨지요?" 했을 때 모두에게서 탄식 비슷한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는데 그때 그랬고, 강의가 끝난 후 업무관련 질문을 하기 위해 강사님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을 봤을 때도 그랬다. 이게 뭐라고. 해도 해도 좋아지지 않는 일을, 끝없는 백사장에서 끝없이 모래만 파내는 것 같은 이 일을, 잘 해보겠다고, 그래도 할 수 있는만큼은 해보겠다고 모두들 이렇게 애를 는 게. 뭐랄까... 이런 게 겨우 나를 버티게 하는 것 같다.



 일이라는 건 대체 뭘까. 지금 나는 내 일 덕분에 그나마 안정적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혼자서도 아이를 키우는 데 큰 지장이 없지만, 그렇다고 내 아이들에게 이 일을 권하고 싶진 않다. 아니, 아이들은 웬만하면 이런 일은 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찌됐든 자기가 정말 좋아하고, 힘들어도 보람된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 내 엄마는 아마 반대였을 것이다. 어찌됐든 내가 안정적이고 조금이라도 몸이 편하게 살기를 바랐을 것이다. 엄마의 그 마음도 사랑이고 나의 이 마음도 사랑인 걸 안다. 그리고 이 마음들이 사실은 그리 큰 위력이 없다는 것도 안다. 

이들은 결국 알아서 저마다의 인생을 살니까.



 일하기 싫다. 너무 지겹다. 아침에 눈을 떠서 머리를 감으러 가는 순간부터 지겨워서 미치겠다. 하지만 그래서 오늘도 생각한다. 몇번이나 심호흡을 하땀을 닦으며 면접장으로 향하던 ㅇㅇ님 뒷모습을. 아직도 쉬지 못하는, 아니 쉴 생각을 할 수 없는 우리 엄마 아빠를, 언젠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내 힘들지만 뿌듯하게 살아갈 내 두 딸을. 그러면 결론은 쉽게 난다.



그래도 일은 해야지. 그래. 일은 해야지.

지런히. 끝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