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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까멜리아 Oct 31. 2024

500원

사소한 일은 사소하게 대하기


일주일에 한 번쯤은 화장실 청소를 한다. 부지런한 프로 살림러들은 요일을 정해두고 한다는데 나 같은 헐랭이 살림러에게 요일을 정한다는 것은 스트레스를 하나 늘리는 것과 같으므로 눈으로 봤을 때 거슬린다 싶으면 청소를 하는데 그 간격이 보통 일주일에서 열흘 간격쯤 되는 것 같다. 다이어트도 체중계 숫자보다 눈바디가 중요하다고 하듯, 내게 있어 화장실 청소도 지정 요일보다 눈화장실이 중요한 셈이다.


청소의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젠다이 위에 올라가 있는 치약과 핸드워시, 양치컵 등을 한 곳으로 치워두고 칫솔과 칫솔걸이는 거울장 안에 넣어둔다. 세제뭍은 청소용 수세미로 여기저기 문질러 닦는다. 수전, 세면대, 벽 등을 차례로 닦고 마지막으로 변기를 닦은 후 버린다. 샤워기 물줄기를 가장 세게 틀어 헹궈내고 하수구를 열어 불순물까지 제거 한 뒤 스퀴지로 보이는 물기를 제거하고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두면 끝난다. 웬만큼 마르면 치약을 비롯한 도구들을 다시 있던 자리에 올려두면 진짜 최종 끝이다. 치약과 화장실을 볼 때면 한 번씩 신혼 초가 생각난다.


나는 4년 좀 넘게 연애 후 결혼했는데, 연애할 때 주 7일을 만났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서로 만나보고 결혼했음에도 신혼 초에 별의별 것이 다 다툼 혹은 감정상함의 소재가 됐다. 지난 4년간 내가 만나온 남자친구와 남편이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은 순간들이 찾아왔다. (물론 남편도 그런 생각을 했겠지만…)


다툼의 소재는 한없이 사소했는데 우리 집의 경우 대표적인 게 치약과 화장실 문이었다. 신혼집 화장실에는 창문이 없었다. 눅눅한 게 싫었던 나는 사용하지 않을 때는 늘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두었는데 남편은 화장실에 세균이 많은데 왜 열어두냐며 이 점을 매우 못마땅해했다. 나는 그러니 더 열어두고 덜 습하게 해야 한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한편, 남편은 치약을 쓸 때 손에 잡히는 중간부 아무 데나 꾹 눌러 사용했는데 나는 이 점이 못마땅했다. 끝부터 눌러쓰라는 나의 말에 남편은 어차피 나중에 눌러쓰니 똑같다고 받아쳤다.


‘창과 방패의 싸움이 이런 것인가?’


‘나는 결혼을 한 것인가?

뫼비우스의 띠에 올라탄 것인가? ‘


회사를 다니던 때라 아침, 저녁 적어도 하루에 두 번 이상은 쓰는 치약을 볼 때마다 단전에서부터 화가 올라왔다. 그럴 때면 더 보란 듯이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놨다. 시간이 좀 지나자 이런 일로 싸우는 게 싫으니 남편은 보일 때마다 조용히 화장실문을 닫았고 나는 치약을 매 번 앞으로 밀어두었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다른 문제와 함께 묶여 터지기도 했지만 그럭저럭 시간은 지나갔다.


두 번째 집으로 이사를 했지만 여기도 화장실에 창문은 없었다. 세 번째 집에도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걷기 시작하자 나는 화장실 문 앞에 안전문을 설치하고 여전히 문을 열어뒀다. 아이가 좀 더 자라 스스로 화장실을 이용할 즈음 안전문을 떼고 화장실 문을 닫아두기 시작했다. 이쯤 되니 아주 가끔은 남편도 치약을 끝까지 밀어뒀다. 더 이상 서로 이런 문제로 다투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난 다음부터는 신경 쓸게 훨씬 많아졌으므로 화장실문과 치약 같은 문제는 싸움의 테마가 되기에는 많이 사소해지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거슬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의 못마땅함을 마음 한켠에 두고 현 상황을 받아들였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결혼 12년 차가 됐고, 그 사이 우리 부부는 드디어(?) 화장실에 창문이 있는 네 번째 집으로 이사를 했으며 두 아이가 생겼다. 이제 우리 집 화장실 문은 남편 퇴근 전까지 웬만하면 한 뼘 정도 열려 있으며 치약에는 다이소에서 1000원에 두 개 든 치약 짜개가 걸려있다.


가끔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두면 남편은 습관적으로 닫으려 하지만


“화장실 습해서 잠깐 열어둔 거야.” 하면


“아~그래? “

하고 그냥 지나친다.


하나에 500원 하는 치약 짜개 덕에 남편은 마음껏 치약을 아무 데나 눌러 짜도 되고, 나는 한 번씩 치약짜개를 아래로 스윽 밀어주기만 하면 된다. 심지어 치약짜개를 미는 순간 묘한 쾌감도 느낄 수 있으니 매번 내가 밀어야 함에도 불만은 없다. 물론 500원짜리 치약짜개로 모든 게 해결된 것은 아닐 것이다.


하루하루 시간이 쌓이며 축적된 데이터가 가장 큰 역할을 했을 것이고, 어쩌면 그때는 단순히 치약이나 화장실 문이 문제가 아니라 지기 싫어하는 마음이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원인이 무엇이든 지금은 원만하게 해결이 됐으니 이런 글도 쓸 수가 있다.

지나고 보니 사소한 갈등거리에 거창하게 저 사람을 바꿔서 해결해 보겠다는 대의를 품었을까 싶다. 닭 잡는데 소 잡는 칼 쓸 이유 없다는 말이 있듯, 사소한 일은 그저 사소하게 해결하면 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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