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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까멜리아 Nov 01. 2024

시지프스

적당히의 미덕

집안일 3대 이모님 중 우리 집에 ‘아직’ 오지 않으신 그분, 바로 로봇청소기다. ‘아직’이라는 말이 붙은 이유는 언젠가는, 결국엔 사는 것으로 결말이 지어질 거라는 강력한 염원 담긴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남편, 보고 있나? 안 보겠지?)


로봇청소기를 들이지 않은, 정확히 말하자면 들이지 ’ 못하는 ‘이유는 우리 집 구조 때문이다. 우리 집은 한 층당 대략 10평씩 3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로봇청소기가 스스로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는 한 바닥청소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하기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 10평에서 계단 빼고, 화장실 빼고, 고정가구 빼면 결국 7-8평인데, 이 정도면 로봇 말고 휴먼이 움직이는 게 더 빠르고 효율적이다. 그 움직이는 휴먼은 대부분 나 이기 때문에, 나중에 아파트로 이사를 가거나, 단층 주택에 살게 된다면 그때는 꼭 모시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늘 갖고 있다.


로봇청소기 이모님 언젠가 꼭 만나요!


그렇다고 우리 집에 청소기가 없는 건 아니다. 무선청소기는 있지만 잘 쓰지 않는다. 시끄럽고, 먼지통을 비우고 씻어 관리하는 게 귀찮다. 그래서 일회용 부직포 청소포를 꽂아 쓰는 밀대를 주로 사용한다. 매번 일회용을 쓴다는 죄책감에 빨아 쓰는 걸레를 이용한 적도 있지만 나는 귀차니스트다. 꾸준히 걸레를 빨아 햇볕에 말리는 일은 지속하지 못하고  얼마 못 가 다시 일회용으로 돌아왔다. 다이소에서 저렴한 부직포 청소포를 구입해 한 장을 뽑아 청소 밀대 아래 깔고, 네 귀퉁이 구멍으로 청소포의 바깥쪽 네 귀퉁이를 쿡쿡 눌러 꽂아 고정한다.


빈 바닥, 가구 밑, 물기가 없는 곳이라면 어디든 쉽고 빠르게 청소가 됐다. 청소가 끝난 뒤에는 청소포만 빼서 버리면 되니 세상 간편하다. 단 한 가지, 부직포 밀대는 다 좋은데, 거실 한가운데 깔린 면 러그 위에서는 부직포가 자꾸 밀려서 청소가 되질 않았다. 매 번 큰 면 러그를 들고 터는 것도 번거롭던 차에 큰 병원에 갔다가 미화직원분이 실리콘 빗자루를 사용하시는 걸 보게 됐다.


‘저거다’


하고 바로 찾아보니 실리콘 빗자루로 유명한 브랜드가 있었다. 그런데 가격이 생각보다 비쌌다.


‘빗자루를 몇 만 원 주고 사는 게 맞나?’

‘그래봐야 빗자루인데?’


고민을 며칠 하다가 길이도 훨씬 짧고 어딘가 어색하게 생겼지만 가격은 1/10 인 제품을 발견해 구입했다. 보통 쇼핑은 가격이 나가도 꼭 갖고 싶은걸 사야 헛돈 안 쓴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이번 실리콘 빗자루는 대체품을 골랐음에도 매우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다.


역시, 청소는 빗자루다.


게다가 일회용품도 쓰지 않는다. 실리콘빗자루로 슬렁슬렁 모든 곳을 쓸어내면 매일 쓸어내도 화수분처럼 뭐가 그리 많이 나온다. 아이들이 먹다 흘린 작은 과자부스러기부터 대체 왜 나오는지 모르겠는 모래도 좀 있고, 분명 어제 쓸었지만 같은 곳에서 또 나오는 먼지, 그리고 내가 인간이 아니라 털갈이 중인 들짐승은 아닐까 의심하게 하는 머리카락들이 대부분이다. 모아두고 보면 한 뭉텅이는 될 것 같다. 이 정도가 매일 빠진다면 내 머리 어딘가에 내가 모르는 구멍이 있는 건 아닐까 싶다.


어떤 일이든 꾸준하게만 한다면, 그 꾸준함이 빛을 보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고 하던데, 이 말은 적어도 바닥청소를 두고 보면 틀렸다. 대부분의 집안일이 그러하듯, 분명 꾸준히, 매일 (귀찮으면 하루 거르기도 하긴 하지만…) 바닥청소를 하지만, 청소를 하지 않아도 빛을 내는 순간은 오지 않는다.


평일 낮시간에 주로 청소를 하다 보니 가족들은 내가 바닥청소를 매일같이 하고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열심히 해도 표가 안 나지만 안 하면 표가 난다. 현상유지를 위해 매일같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다니! 이렇게 비효율적인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신화 속 시지프스도 매일 산 꼭대기로 바윗덩이를 굴리는 무용한 일을 반복한다지만, 그건 그에게 내려진 형벌이다.


‘나는 형벌을 받는 중인가?’

‘나는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던가?’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모든 게 부정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얼토당토않게


‘내가 하는 바닥의 먼지와 기타 등등을 치우는 일이 우리 가족 건강에 기여할 것이고 결국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이다.’


라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깔끔한 집은 좋지만, 나는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 아니므로 내가 가진 에너지의 기회비용도 감안해야 한다. (집안일보다 더 중요한 육아 몫도 늘 남겨놓아야 한다.)


그저 머리를 비우고 몸을 움직인다. 가장 편한 도구를 찾아 구비해 두고 (하기 싫은 일일수록 장비발이 중요하다.) 그냥 하는 일, 그마저도 하기 싫은 날은 내버려 둔다. 하루이틀 바닥 청소 안 한다고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다. 오늘 아무리 열심히 반짝이게 치워둔다 해도 반나절이면 원상 복구될 일, 절대 큰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반복해야 하는 귀찮은 일에는 전력투구 하지 않는다.


내게 있어 청소는 적당히의 미덕이 필요한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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