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나무의 ‘뿌’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거나 색다른 경험을 하는 일은, 매일을 열심히 살아내느라 비워진 내면을 채우는데 꼭 필요하다. 누군가에게는 방학, 또 누군가에게는 휴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시간이 주부인 나에게는 여행이다.
집을 떠난다는 것은 내 일터이자 보금자리를 떠나 낯선 경험을 시작하는 일인 만큼 약간의 설렘과 큰 해방감이 함께 찾아온다. 이번 여행도 3할의 설렘, 7할의 해방감과 함께 했다.
밥 안 해도 되고, 청소 안 해도 된다! 유후!
(다만 빨래는 돌아가서 2배로 해야 한다.)
여행을 가게 되면 꼭 지역특산물을 찾아 먹는다. 대체로 나의 여행은 ‘00 먹으러 가자.‘로 시작되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오대산 아래 있는 산채정식을 먹고 왔다. 주문을 하자 나물이 담긴 수많은 접시가 등장했다. 대충 봐도 15개는 넘는 것 같았다.
‘어후.. 설거지 어마어마하겠다.’
는 생각은 여행이니까, 고이 접어 넣어두고 즐겁게 먹기로 했다. 다들 너무 비슷하게 생겨서 이름을 들어도 모를 것 같아 굳이 묻지 않았지만, 저마다의 맛과 향을 가진 산나물들은 맛있었다.
물론 그 나물들이 산지직송인지, 가락시장을 거친 마트 산인지, 그도 아니면 중국산인지 알 수 없었지만 단풍 든 오대산을 배경으로 사치스러울 만큼 다양하고 많은 나물을 입에 넣는 순간만큼은 오대산 자연인이 된 느낌이었다.
어쩌면 재료가 가진 고유의 맛보다는 주변 환경이 맛을 규정하는 것 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들어온 ‘자린고비 이야기’ 내지는 ‘일체유심조’가 딱 들어맞는다 생각했다. 약초꾼이 망태를 둘러메고 오대산에 올라 한 땀 한 땀 손으로 뜯어 온 나물이라 생각하며 먹으면, 나는 국산 산나물 모둠을 먹은 것이다.
이렇게 여행지에서는 ‘남이 해 준’, 그래서 더 맛있는(?) 음식을 열심히 찾아 먹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것 못지않게 집에서 매일 먹는 ’ 집밥‘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는 대부분의 살림을 대충 하는 편이지만 음식만큼은 늘 최선을 다한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고 기숙사를 들어가기 전까지, 엄마는 매 끼니를 한식으로 정성껏 챙겨 주셨다. 그래서인지 마흔이 된 지금도 ‘엄마’를 떠올리면 ‘엄마밥’이 생각난다. 언제라도 엄마에게 가면 맛있는 밥을 얻어먹고 편히 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잘 얻어먹고(?) 자랐음에도 정작 나는 요리에 관심도 없었고 할 마음도 없었다. 꽤 오랜 시간
‘사 먹는 게 싸다.’
가 내겐 진리였다. 혼자 살 때도, 결혼해 둘이 살 때도 사 먹는 게 당연히 싸고 맛있었다. 내가 뭐라도 해 보려 하면 버려지는 재료도 많고 시간도 오래 걸리며 그렇게 만든 결과물이 맛있지도 않았다. 아직도 기억나는 결혼하고 처음 맞은 크리스마스, 그저 썰고 몇 가지 볶기만 하면 되는 월남쌈 2인분을 만드는데 3시간이나 걸렸다. 다행히 먹을만은 했지만 집에서 음식을 해 먹을 전투력을 완전 상실했다.
그 진리가 바뀐 건 아이가 태어난 다음부터였다. 예정일보다 9일이나 늦게 태어난 첫째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작았고, 입도 짧았다. 그렇다 보니 체력도 약하고 병치레도 잦았다. 한 숟갈이라도, 한 조각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마음에 이것저것 많이 도전했고(‘도전’이란 단어를 선택한 이유는 그만큼 실패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다 보니 자연스레 음식 하는 ‘기술’은 다른 살림력에 비해 빠르게 늘었다.
사실 12년 하면 늘지 말라 해도 는다. 덕분에 평소 웬만한 음식은 모두 집에서 해 먹을 수 있게 됐다. 할 수 있는 음식이 많아지면 ‘난 언제, 어디서라도, 뭐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물론 매일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끼를 다른 메뉴로 차려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점심은 대부분 나 혼자 도전적인 메뉴를 먹는다.) 효율적 재료 사용을 위해서는 나름 ‘크리에이티브 씽킹’이 필요하다.
’ 지금 제철 식재료는 어떤 것인가?‘
’ 냉장고에는 무엇이 있는가?‘
’ 식비 잔액은 얼마나 있는가?‘
’ 매운 거 못 먹는 아이도 먹을 수 있는가?’ 등등
모든 걸 고려한 후 신규 장보기를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메뉴를 정하고 음식을 한다. 전처리부터 설거지에 이르는 요리 전 과정에는 품도 꽤 들기 때문에 저녁밥 차리고 치우고, 종종 출출해하는 아이들을 위해 간식까지 만들고 나면 에너지가 별로 남지 않는 날이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매일같이 집밥을 차리는 이유는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내가 있는 ‘집’이라는 곳이 따뜻한 밥을 먹고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이 됐으면 싶어서다.
’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뮐세.‘
라는 말이 있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우리 가정의 뿌리를 다지는 중이다. 아직은 ‘뿌-ㄹ’ 일 지라도 언젠가는 ‘뿌리’가 되겠지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