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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글샘 Jan 13. 2024

세상의 외면

오페라의 유령- 가스통 르루


파리에서의 인생이란 가면무도회와도 같다.


이런 것이 바로 파리의 방식이다. 너무나 슬프고 우울할 때 쾌활한 표정을 짓거나, 마음속으론 몹시 기쁘지만 짐짓 지루하고 무관심한 척하는 것. 이런 태도를 취할 수 없는 사람은 진정한 파리 사람이라 할 수 없는 법이다 .파리 사람들은 친구가 곤란에 처했다는 것을 알아도, 친구를 위로하지 못할 것이다. 그 친구는 벌써 마음의 평온을 되찾았다고 말할 테니까. 친구가 굉장한 행운을 만났다고 하더라도 파리 사람들은 아주 조심스럽게 축하의 말을 전한다. 그들은 그 친구의 행운이 기쁘더라도 짐짓 무관심한 척한다.


여기 파리에 추악한 외모로 태어나 부모에게서 조차 사랑도 위안도 받지 못한 채 가면 속에 살아가는 주인공이 있다. 아버지조차 외면해버린 얼굴로. 어머니조차 얼굴을 가리라고 선물하신 가면 속에서. 오페라의 유령 에릭은 늘 고통 속에 살고 있다. 그는 ‘살아있는 송장’으로 구경거리가 되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죽은 자의 육신에서 경멸과 분노로 살아가고 있다.파리 오페라 하우스 지하에 자신만의 거처를 만들어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살아가고 있다. 에릭의 삶은 그러했다.


‘보통 사람!’

에릭이 원한 것은 단지 여느 사람들처럼 ‘보통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평범한 외모였다면, 에릭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인물들 중 하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추한 외모에 대한 보상으로 뛰어난 많은 재능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나 추한 외모 탓에 자신의 엄청난 재능을 발휘하지도 못한 채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그로 인해 분노로 사람들을 괴롭히며 살았던 것이다. 자신에게서 ‘보통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한 그는 심지어 사람들을 괴롭히고도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은 느낄 필요가 없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악행을 저질러왔다.


사랑

그런 그도 변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그녀 ‘크리스틴 다에’가 있었기에.

에릭은 마치 주인 곁에 앉아 꼬리를 치는 개와 같이 그녀를 사랑했다. 그는 충실한 노예였고, 그녀에게 무한한 관심을 쏟았다. 그녀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에 대한 공포심에 어쩔줄을 몰라했다. 하지만, 그녀를 붙잡았던 것은 바로 에릭의 가슴 저미는 흐느낌과 공허하게 울려퍼지는 그의 노랫 소리였다. 그것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강하게 그녀를 그 사람 곁에 묶어 놓았던 것이다.


분노

그녀를 사랑하는 약혼자 라울에 대한 분노는 에릭을 더욱더 자극했다. 살인도 서슴치 않는 에릭은 더욱 과감하게 행동에 나선다. 에릭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수용

에릭은 누구에게도 입맞춤을 해본 적이 없다. 에릭의 어머니는 절대로 에릭이 입맞추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에릭이 다가가면 어머니는 달아나버리곤 하셨다. 그는 한 번도, 단 한 번 도 어머니의 다정한 입맞춤을 받아보질 못했다. 그런 그가 그녀를 신부로 맞이하기 위해 다가가고.. 다가가고.. 다가가서 마침내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던 것이다. 이 세상에도 자신을 받아주는 그녀가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그의 행복감이란! 그는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발 앞에 엎드려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도 울었다. 그에게 입맞춤은 단순한 입맞춤이 아니었던 것이다. 수용이고 사랑이었던 것이다.


사랑의 힘은 어디까지 인가?

그는 평생 살아있는 죽음이었다. 추악한 외모 때문에 세상이 저버린 그였다. 세상의 외면은 그를 유령으로 만들었다. 평생 분노와 고통 속에서 살았던 그도,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를 놓아주었던 순간 그는 가장 큰 행복감을 맛보았다. 사랑하는 그녀를 위한 자신의 선택은 자신을 더욱 더 가치있는  사람으로 느끼게 했다.평생 존재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던 그도!


오페라의 유령 소설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그 절절함을 느끼고 싶다면 뮤지컬을 보기를 권한다. 뮤지컬에서 에릭역을 맡은 ‘조승우’의 ‘밤의 노래’! 사랑하는 그녀를 붙잡았던 바로 그 가슴 저미는 흐느낌과 애절함에 스며들게 된다. 공포감 속에서도 그녀를 그의 곁에 묶어 둘 수 있었던 공허하게 울려퍼지는 그 노랫 소리가 바로 이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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