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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딜라 Oct 28. 2023

글이나 사람이나 맥락이란 게 있다

시 [참회록]에 대하여

투어가 끝나고 난 뒤



다른 분들은 다 가셨는데... YOU1, YOU2님 아직 안 가시고..?


YOU2 : 뭔가 할 얘기가 남은 듯해서요. 도슨트샘이 무슨 답을 얻었는지 궁금해요.


저는 이 여행의 시작에서 아무개의 무례한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이었어요. 본때를 보여줄까? 무시해 버릴까?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려니 목구멍에 커다란 알약이 걸린 듯 답답하고 개운치가 않았어요.

머리로는 '내가 먼저 품위 있게 가자', 그러나 속마음은 '굳이 왜?' 나에게 설득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온정의 거리에서 원수를 만나면 손목을 붙잡고 울겠다"는 동주의 말에, 그의 상상을 초월한 High 함에 기가 질렸다고 해야 할까요? 동주가 저에게 제대로 본때를 보여준 거죠. 마치 High의 꼭대기에서 이렇게 얘기하는 거 같았어요.


먼저 품위 있게 가.
왜? 아름답잖아!


이 언덕에서 아래를 보면 커다란 남산타워도 이쑤시개만 해 보이잖아요. 이 윤동주 여행을 통해 그 아무개의 무례함이 저기 보이는 남산타워 사이즈, 딱 저만하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아름다운 원근감을 경험했다고 할까요. ㅎㅎ


 YOU2 : 관건은 나를 어느 위치에 두느냐다. 멋진 대요. 도슨트샘의 관점도 신선했어요. 자신감 없고 떳떳해 보이지 않던 동주를 다르게 보이게 만들었거든요.  


YOU1 : 아무리 우리끼리 떠난 여행이지만, 도슨트 님의 동주에 대한 해석은 너무 작위적인 거 아닌가요? 동주는 창씨개명을 한 것에 참담함을 느껴 [참회록]을 썼어요. 이것은 모두가 아는 상식이죠.


역시 덕후답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시는군요. 저는 동주의 행적을 조사하면서 그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소위 말하는 모두가 아는 상식, "부끄러움을 아는 시인"이라는 프레임, 그 프레임을 걷어내고 봤어요. 그 부끄러움의 정체가 과연 독립투사로 적극적인 저항운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 걸까? 의문이 들었거든요. 글이나 사람이나 맥락이란 게 있다고 봐요. 그것이 바로 정체성이죠. 가상의 인물이 아닌 이상 맥락을 갑자기 벗어나는 일은 크게 없어요. 갑자기 맥락을 벗어나면 의문을 한번 가져봐야 해요. 그래서, 한. 중. 일과 무관한 제삼자의 입장으로 그의 작품과 일생이 표시하는 방향 그대로 따라가 보자 마음먹었죠.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별 헤는 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서시]




딴은 얼마의 단어를 모아 이 졸문을 지적거리는데도 내 머리는 그렇게 명철한 것은 못됩니다.

....

온정의 거리에서 원수를 만나면 손목을 붙잡고 목놓아 울겠습니다.

멀리 봄이 올 것을 믿습니다. [화원에 꽃이 핀다]

 



이 세 편의 시 어떻게 보세요? 41년 11월에 쓴 시들이에요. 저는 이 세 편의 뉘앙스를 같은 맥락으로 봤어요. 동주는 착하고 겸손한 사람이지만 자신감 없고 떳떳하지 않은 바이브는 아니에요. 특히 서시를 완성한 11월부터는 뉘앙스를 달리했죠.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관점을 유지하고 있어요 . 곧이어 12월 연희전문학교 졸업식이 있었고,  새해 1월에 쓴 [참회록].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1942. 1. 24



히라누마 도쥬(平沼東柱)가 된 윤동주(尹東柱). 동주가 창씨개명을 하여 그토록 참담했던 걸까 의문이 생겼습니다.  동주는 한자로 쓰면 東柱. 중국어로 발음하면 동쮸 또는 똥쮸, 일본어로 발음하면 도쥬 또는 토오쥬우. 발음이 조금씩 다르지만 그의 이름 동주(東柱)는 변함이 없습니다. 제가 그런 의문이 든 지점은 중국에서 태어나 이민자 3세로 자란 동주가 평양 숭실학교를 자퇴하고 36년 4월 고향 롱징 광명학원에 편입해 2년 가까이 그 학교에 다녔다는 사실이에요. 광명학원은 일본인이 운영하는 학교였거든요. 그러니 중국인, 조선인, 일본인과 함께 생활하는 중국 롱징에 있을 때, 어떤 이는 중국어 동쮸 또는 똥쥬로, 어떤 이는 조선어 동주로, 또 어떤 이는 일본어 도쥬 또는 토오쥬우로 불렀을 테니까요.


YOU2: "프레임을 걷어내고 사실 그대로를 보자" 동의합니다.


물론 윤 씨 성을 히라누마로 바꿔야 하는 그 상황의 참담함은 부인할 수 없어요. 그러나 관련 자료를 보면 윤 씨 성을 히라누마로 바꾼 것은 동주가 아닌 아버지였고 일본 유학도 아버지의 권유라고 합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 시가 우리가 아는 것처럼 오롯이 창씨개명을 하고 그 부끄러움에 참회록을 썼다고만 보기는 어려웠어요.

  

YOU1: 그럼 그의 [참회록], 무엇을 참회했다는 거죠?


참회록 육필원고 [출처 : 윤동주기념관]


글쎄요. 정확히 알 수는 없죠. 그러나 합리적 추측은 가능하지 않을까요! 참회록을 쓴 노트 밑에 낙서들을 한 번 보세요. 이런저런 고민의 흔적이 역력해요. 이 때는 우측에서 좌측으로 글을 썼으니, 우리도 우측에서부터 읽어 볼게요.

上級(상급), 힘, 生(생), 生存(생존), 生活(생활), 學(학), 詩(시)란? 不知道(모르겠다) 좌측 맨 끝 悲哀禁物(비애금물)


때는 1월, 그는 막 대학을 졸업하고 더 배우기 위해 또다시 일본유학을 가려합니다. 힘의 원리에 지배받는 시대, 하루에도 몇 번씩 삶과 죽음의 처참한 교차의 순간들을 목격합니다. 그 고통을 받아들이며 생존해 가는 이들 속에서 좋은 집안의 큰아들로 유학을 권유받는 사치로운 자신이 민망한데, 아직도 부모에게 의지하며 생활하는 학생신분, 무엇보다 시에 대한 욕구가 강한 동주이지만 아직도 시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는 자신. 그렇다 할 업적도 없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지난 만 이십사 년 일 개월반성합니다. 졸업기념 시집도 한 권 출간 못한 터라 더욱 슬픈 1월. 그러나 노트 귀퉁이에 쓴 마지막 네 글자  "비애금물".


이 맥락으로 참회록이 탄생된 건 아니었을까요?


YOU1: '맥락'이라.. 그렇게 되면, [서시]가 탄생된 41년 11월에 쓴 시가 딱 한편 남았어요. 그럼 시 [간]도 맥락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보나요?

출처 : 윤동주기념관 자료 작품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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