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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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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 냥이 Jul 16. 2016

소설 /산다는 건 6

흐르는 강 물 처럼

케니지의 The Joy Of Life를 들으며 지나간 과거에 머물던 민영이 커피포트의 물 끓는 소리에 식탁으로 향한다. 민영이 봉지커피를 머그컵에 털어 넣고 물을 붓는다.

'역시 ~ 3박자 봉지 커피맛이 일품이지'

민영은 봉지커피의 진하고 달달한 맛을 즐긴다.

그리고 그녀는 조금 있으면 도착할 선화 선배를 기다린다. 3일 전 그녀가 민영을 만나고 싶다고 연락했었다. 포천 살 때 이후 민영은 그녀와 통화하거나 만날 일이 없었다.

그런 그녀가 민영에게 전화해서 집으로 오겠다고 하니 민영은 은근 걱정이 되었다.

그녀는 민영의 집에 가끔씩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고 민영은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또 민영을 자극할까 봐 걱정이었다. 커피포트의 물 끓는 소리에 잠시 중단되었던 포천에서의 일들이 다시금 민영의 머릿속을 휘젓는다.


"선배 오랜만이에요. "

"그래.. 너도 잘 지냈지. 아직도 여전히 예쁘네... 현우 만났을 때 너 이야기는 들었지만 만나니 좋은데  "

"선배 애들은 다 유학가 있다고 하던데, 부러운데...."

"나를 위한 시간이 많기는 하지... 민영아 너는 현우랑 사는 게 행복하니?"

"글쎄요 행복이란은 게 작게 소소히 오는 것이라 어떨 땐 행복하기도 하고 어떨 땐 내가 가장 불행한 것도 같고... 이것이 행복이라면 , 행복하다고 말해야 하나요."

"난 사실 네가 현우랑 결혼했다는 소식 들었을 때 깜짝 놀랐어... 그 도도한 서민영이 강현우와 결혼한다는 소식에... 그리고  현숙이는 현우를 죽일 놈 살릴 놈 하던데"

"어머 ~현숙 언니와 연락하고 지내요....ㅎㅎ 현숙 언니가 나한테 사람 소개해 주고 싶어 했거던요. "

"그것 때문에 현우를... 다른 이유 있는 거 아냐. 우린 같은 아파트에 살아. 우연히 아파트 주차장에서 만나게 되었어. 그 이후로 가끔씩 연락하고 지내게 되었어. 현숙이네 시댁이 돈 많은 중소기업이잖아. 너도 알겠네~  그들 부부를 맺어준 장본인이니..."


현숙도 당연 민영의 대학교 선배이다. 졸업 후 민영과 현숙이 다니는 회사가 서로 가까이에 있었다. 그래서 가끔은 퇴근 후에 만나서 맥주나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를 하며 지내는 사이였었다.

현숙 선배의 남편을 만나게 된 그날도 그들은 맥주를 기분 좋게 마시고 있었고, 알코올이 들어가니 민영이 은근 장난기가 발동되었다. 현숙이 보고 맘에 드는 남자를 찜해보라고 했다. 민영이 꼭 미팅을 주선하겠다고 약속한다.

현숙은 민영의 말을 농담으로 들으면서도  맥주집 밖에 서있는 남자를 손짓한다.

남자는 생각보다 용모가 준수했고 키도 컸다. 민영은 자신감 있게 나갔다.

"어.. 죄송한데요. 제가 내기에 져서 그러는데,  제가 참하고 예쁜 여자분과 미팅 주선하려고 하는 데 어떠세요"

"음.. 소개해 주려는 분이 예뻐요. 전 친구를 기다리는 중인데... 그 친구를 소개해주고 전 그쪽을 소개받고 싶군요. "

"예뻐요. 음.. 그리고 전 안돼요 당신을 선택한 사람이 벌써 있어서. 그런데 친구분은 언제 와요."

"그래요. 제 친구는 금방 올 거예요"

"그럼 친구분이랑 저기 맥주집 창가 쪽으로  오세요"

그들의 첫 만남은  민영의 장난으로 시작되어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이다. 민영은 현숙과는 언니라고 부르며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었다. 결혼하면서 떠돌다 보니 잊고 지냈었던 것이다.


"민영아, 너도 결혼생활 어느 정도 되었으니 물어보자. 넌 아직도 현우를 아니.... 남자를 믿니?"

"ㅎㅎ 그럼 당근이지 선배. 나 좋아서 죽자 사자 하던 남자와 결혼했고 또 아직도 나 좋아하는 남자인데 당연히 믿지요. 선배 가정에 뭐 문제 있어요?"

"없어. 그런데 너의 그 자신감은 뭐지"

"아유 선배도... 당연한걸 가지고 자신감이라니요. 그리고 나 같은 여자 만난걸 감사하고 살아야쥥"

"오호라 요것 바라"

"그렇다고 서운하거나 싸우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에요"

왠지 선화의 얼굴 표정이 조소를 날리듯 민영을 본다. 민영은 선화의 표정에서 아무것도 읽지 못하고 현우와 아웅다웅하며 사는 이야기들로 한참을 보내고 헤어졌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퇴근한 현우는 민영과 선화의 만남이 궁금한지 먼저 물어본다.

"오늘 선화랑 뭐했어"

"뭐 할 게 있어. 그냥 점심 먹고 커피 마셨지. 선배는 퀼트를 취미로 하면서 협회 총무를 맡았더라. 그래서 일본을 자주 오가나 보던데"

"일본에... 왜"

"그것까지는 모르겠네. 오늘  선배가 만든 퀼트가방선물도 받았잖아."

그런데 왠지 모르게 현우의 표정이 자꾸 민영의 눈치를 보든 듯하기도 하고 또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해 보인다.

"뭐 할 말 있어"

"아니.. 없는데. 너 내일 민기 학교 엄마들과 모임 있다고 했지. 친한 엄마들 생겼니?"

"아직은... 그런데 자기 이번 달 월차는 언제야?"

"다음 주 화요일. 왜?"

"아니 그냥 ~그런데 이번에는 왜 월차를 연결시키지 않았어. 금요일이나 월요일로"

"아.. 근무서는 것 때문에 다른 사람과 갑자기  바꿨어."

민영은 내일 민기 친구 엄마들과의 모임 때문에 옷장을 열어보았다. 아무리 옷장을 열고 옷들을 뒤적여도  마땅히 입고 나갈 옷이 없는 것 같다. '에잉 있는 옷 입고 나가면 되지 뭐... 새삼 옷을 신경 쓰기는...'

민영은 옷장문을 슬며시 닫는다.

때마침 집전화가 울린다.

"여보세요"

"민영아 나 선화인데, 오늘 너한테 깜박하고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 있네. 너도 우리랑 같이 화요일 태식이 산소에 갈래"

"화요일에 태식 선배 산소에..."

"너 못 들었구나. 내가 태식이 산소에 가고 싶다고 해서 현우랑 다음 주 화요일에 가기로 했잖아. 내가 화요일밖에 시간이 안돼서 현우가 월차를 바꾼 걸로 알고 있는데... 우리 둘 만 가면 네가 혹시라도 서운해할까 봐."

"괜찮아. 태식 오빠 산소에 간다는데 그걸 가지고 서운해할 내가 아니지. 하긴 나도 태식이 선배 묘에 아직 가보지 못하긴 했네....... 난 아무래도 애들 때문에  못가 선배!"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동안 민영은 기분이 점점 나빠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지만 태연한 척했다.

그러면서도  도대체 이 선배가 왜 이러나 싶었다.

"그럼 민영아 서운하지 않은 거지... 그럼 다녀와서 만나자"

전화기를 던지듯이 내려놓는 민영을 보는 현우의 표정이 냉담하다. 그런 현우의 표정을 민영은 역겨워한다. 언제나 현우는 그렇다. 자신이 위기에 몰릴 때의 저 재수 없는 냉담한 표정...... 미안해하는 표정이 저렇게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보았지만, 그래도 그런 표정을 볼 때마다 보기 역겹다.

"자기 화요일에 선화 선배랑 태식 선배한테 다녀온다며. 그거 왜 이야기하지 않았어"

"아니 너도 함께 갈까 싶어서... 좀 생각하냐고"

"뭘 생각하는데. 친구와 친구 무덤 가는데 뭘 생각해. 그리고 내가 아까 월차 물었을 때 이야기해주었어도 괜찮았잖아. 왜 나를 바보 만들어"

"그럼 된 거네... 내가 내 친구와의 일을 미주알고주알 말 안 해도"

"그 말이 아니잖아. 아까 내가 월차에 대해 물었을 때 솔직하게 말해 주었어야지"

"이제라도 들었으니 됐잖아. 뭐가 불만이야. 그럼 너도 함께 가고 싶으면 가던지"

"그래.. 말을 말자. 뭔 대화가 통해야지"

민영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방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하면서 통증이 오는 것 같다. 민영이 결혼하고 언제 부터인지 자꾸 가슴이 답답하고 통증이 오는 것 때문에 병원에 가보았지만 특별한 증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화가 차서 그런다고 했다. 흔히 결혼한 여자들이 겪는 문제라고 했다. 하지만 민영은 그 가슴통증으로 여러 번 쓰러질뻔하지 않았던가.....

민영은 또 눈물이 나려고 했다. 벌써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도대체 그년은 왜 자꾸 나에게 이러는 걸까. 미친년 /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중

민영이 눈을 뜨니 옆에 현우가 없다. 현우는 소파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녀는 결혼하고부터 이런 구절이 가끔씩 떠오른다./나는 한 마리의 독수리가 날아온 줄로 알았더니 날아간 것은 한 마리 참새였다./민영이 좋아하는 소설을 번역한 작가의 말인데.... 왜 이 말이 자꾸 생각나게 될까. 그 소설가는 연애하고 헤어진 애인을 두고 한말인 것 같은데...

아침의 햇살은 민영의 심신이 불편함과 관계없이 마구 쏟아지고 있었다. 그렇다 자신과 관계없이 세상은 돌아간다. 누군가가 알아서 민영을 토닥거릴 것인가. 그건 오로지 민영의 몫이다.

민영이 현우를 선택한 것도 그녀의 몫이고 시어머니와의 갈등도 그녀의 몫이고 남편 직업의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녀의 몫이다. 민영은 민영의 귀여운 강아지들을(민기와 민혁) 깨우면서 다시 밝은 햇살 속으로 자신을 물들인다. 부모의 삶 속에서 아이들이 함께 물들어 간다는 것을 민영은 알고 있다. 오로지 그 애들을 밝음의 빛 속에서 건강하게 살게 하는 것도 그녀의 몫이라는 것을.......


화요일 아침 일찍

현우는  태식의 산소에 가기로 한 날이어서 서둘러 집을 나선다. 그런 현우를 보면서 민영은 말을 건넨다.

"우리 차로 가지 왜 선화 선배 차를, 외제차라 우리 차보다는 났겠다. 천천히 잘 다녀와요"

이른 아침이지만 민영의 마음이 뒤숭숭하다 보니 신나는 음악을 틀었다.  아이들이 깰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면서도 오늘만 조금 일찍 깨우자고 생각했다.  

학교와 유치원을 보내는 아이들과의  아침 전쟁을 끝내고 민영은 외출 준비를 한다. 민영은 테니스 게임하는 수준은 되지만  레슨은 받아 보지 않았었다.  아이들이 없는 아침시간을 활용해서 테니스 레슨을 시작하려고 마음먹었다.


삐리리 링 ~~ 현관 벨이 울린다. 포천에서의 일을 회상하던  민영이 기억을 접고 현관으로 갔다.

"누구세요... 어머 "

"응 ~나야 선화"

"어머 ~ 쉽게 찾았네요. 그리고 어떻게 바로 들어올 수 있었어요 "

" 네비도 있고 또 나 전에 너희 아파트 왔었어. 현우 태워다 주고 갔었는데.. 그리고 경비 아저씨 보구 너희 집 호수 말하니  아무 소리 없이 열어주던데"

"ㅎㅎ 경비 아저씨 내가 혹시 몰라 아침에 떡 갖다 주면서 말은 해놓긴 했었는데.."

민영은 선화가 현우를 태워다 준일은 몰랐던 일이 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어떤 차로 드릴까요?"

"난 녹차로 "

"그래요 그럼 나는 봉지 커피 한잔 더 마셔야겠다."

"그런데 민영아~ 너는 왜 나한테 연락 안 하니?"

"어찌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제가 그렇게 곰살맞은 편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오늘 무슨 일로...."

"그냥.. 너 얼굴 볼 겸. 또 중앙대병원에 볼일도 있고, 고개 넘으면 너희 집이니 이때 한번 들러보아야겠다고 생각했지"

사실 그녀와 학교 때도 친하게 지낸 것도 아니고 또 민영이 좋아할 만한 스타일도 아니어서 딱히 만날 일도 없거니와 그녀는 왠지 민영의 속을 긁는 편이어서 오늘 온다는 연락만 없었다면 만날 일도 없었다.

민영은 선화와 현우가 가끔씩 학교 친구들과 만날 때 보는 것을 알고 있지만 따로 그들에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민영은 포천 살 때 선화 때문에  현우와 크게 다툰 후  되도록이면 선화와 현우 사이에 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현우 보고 웬만하면 선화 이야기는 자신에게 하지 말아달라고 하지 않았던가.

선화의 핸드폰에서 벨이 울린다.

"민영아 잠깐 나가서 전화 좀 받을게"

그런 선화의 뒷모습을 보면서 케니지의 섹소폰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민영은 다시 포천 살 때 선화와 있었던 일을 떠올린다.


"테니스 레슨 받아보니 어때요?"

"나에게 이것저것 테스트하더니 발리부터 가르치네"

"뭐 ~워낙에 선수잖아요"

"ㅋㅋ 글치~ 내가 폼은 끝내주잖아 "

"그런데 바깥 선배님 오늘 여자 친구랑 무덤 간다고 안 했어요 ㅎㅎ 말하고 나니 이상한데요. 사실 나 같으면 절대 둘만 가게 안 해요. 장거리를  두 남녀가 간다는 것에 동의한 사람 뇌 구조가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친구잖아.  나도 학교 때 친구들하고 함께 다녀도 특별히 이상한 감정 안 생겼어"

"헐 ~어련하시려고요. 이건 두 사람이 밀폐된 공간에 장시간 가는 건데요. 남녀 사이는 어느 때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없어요"

"도영 엄마~  번개 맞기 전에는 번개 맞을 까 봐 미리 겁내지 말자"

"에잉~ 이건 방지 차원 이지용"

"난 잘 모르겠어. 그리고 꼭 그렇게 남자와 여자로 엮고 싶지 않아. 그들은 친구고.. 또 현우 씨가 그렇게 허술하지 않아. 좀 친절하고 상냥한 미인한테는 약하긴 하지만 ㅋㅋㅋㅋ"

"어디 바깥 선배 때문인가요. 그 여자가 아무래도 이상서 그러지요. 열 여자마다하지 않는 것이 남 자라는데..."

"너 죽을래. 그리고 한 사람은 전 애인 무덤을 가는 거고 또 한 사람은 친구 무덤에 가는 날인데"

"알았어요. 참 선배는 가끔 보면 무지한 것 같아요. 아니 순수한 건가...."

"자꾸 이상한 소리 말고. 커피나 한잔 더 줘봐"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중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치운 후에도 현우에게는 연락이 없다. 민영은 전화라도 해볼까 싶었지만 친구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 전화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민영은 이틀 전부터 읽던 <신도 버린 사람들>을 넘기기 시작했다.

개 돼지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인간이라는 사실이 불행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읽는 민영은 어느새 눈이 퉁퉁 부었다. 책을 읽으며 너무 울어서... 현우는 11시 30분쯤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너무 늦었지.... 어~ 너 울었어. 전화하는걸 내가 깜박했다. 미안."

"아 ~책 보다가... 그런데 선화 선배 하고는 의정부에서 헤어졌어"

"아냐~ 여기까지 내가 운전하고 오고 , 다시 선화가 운전하고 의정부로 갔어"

"생각보다 많이 늦었네. 난 늦어도 6시 정도면 도착할 꺼라 생각했는데"

"너 여포 알지 , 그 애도 함께 만나다 보니 시간이 늦어졌어. 오랜만에 만나다 보니 할 이야기도 많고, 또 저녁도 먹다 보니...."

"난 여포는 몰라, 별명만 자기한테 들은 기억이 나지. 얼른 씻어. 벌써 자정이다."


다음날 평상시보다 좀 더 느긋하게 움직이는 민영은 청소기 소리에 집전화벨 울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잠시 후 그녀의 앞치마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 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어디야?"

"집인데 "

"그럼 내 가 다시 집으로 할게"

핸드폰을 끊고 다시 집전화벨이 울린다.

"내가 시간 뺐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어제는  여포라는 친구도 함께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늦어졌어. 그리고 현우가 운전하냐고 힘들었을 거야. 내가 운전하려 했는데 현우가 안된다고 해서... 그리고 현우가 뭔 말 안 해"

왠지 불안한 마음을 달래며 민영이 말을 한다.

"무슨 말요? "

" 어제는 내 기분이 많이 다운되어 있었는데 현우와  철없던 학창 시절 이야기들 하다 보니 기분이 한결 나아지더라. 현우 말로는 내가 대학교 때 예뻐서 인기 많았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현우에게 물었지'그럼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했냐고'그랬더니 ㅎㅎ 친구의 여자친구인데 무슨 생각을 하겠냐는 거야.  너무 귀여워서 이마에 뽀뽀를 콱해주었다." 민영이 생각하기에 선화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현우도 선화에게 관심이 있었지만 우정 때문에 포기하였다는 내용이다. 민영은 선화의 말뜻을 모른 척하며 말했다.

"어이쿠,   말을 안 해서 몰랐었는데... 그렇게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할 시간도 없었고, 그런데 선배는  그런 말이 뽀뽀까지 할 정도로 귀여웠어요."

"과거이지만 나를 잠깐이라도 마음에 두었다니 기분이 너무 좋던데. 너 기분 나쁜 건 아니지 "

"괜찮은데... 그냥 친구의 말에  기분 좋아서 이마에 뽀뽀한 거잖아요. 그런데 오늘  무슨 일로 전화했어요"

"아 ~ 선물로 구두티켓이 많이 들어온 게 있어서 민영이한테 선물하려고"

"고마워요. 나중에 현우 씨 만날 때 줘요. 그리고  나 청소하던 중이라 전화 끊어야 할 것 같은데...."

전화를 끊고 민영은 생각해 보았다. 선배가 나에게 왜 이렇게 삐둘삐둘하게 하게 다가오는지 알고 싶었다. 민영이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녀에게 실수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또 한편으로는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선화를 나쁜 쪽으로 몰아가는 것은 아닌지, 민영은 사람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초능력이 자신에게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중

청소를 끝내고 앞집으로 커피 한잔 하러 갔다. 다행히 도영 엄마가 있었다.

"오늘 테니스 레슨 없는 날이에요?"

"있어... 그런데 가고 싶지 않네. 아무래도 인생을 교과서처럼 똑바로 살면 재미없을 것 같아서 오늘은 땡땡이 하려고 ㅎㅎㅎㅎ"

"에구 ~노래방서 춤추는 걸 보면 교과서처럼 사는 거 아닌 것 같은데ㅋㅋㅋ "

두 사람은 한참을 웃었다.

"도영 엄마.. 그게 자기를 포함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편견이야. 그럼 노래 잘하는 사람들 보고는 왜 그런 생각 안 하지. 나는 노래도 못하고 노래방 도거의 안 가는데, 어쩌다 가서 마음껏 춤추는데"

"ㅋㅋ그런데 어쩌다 가서 춤추는 솜씨가 장난이 아니라서 그런 것 아닙니깤ㅋㅋ그럼 혹시 학교 때 껌 씹으셨나요"

"ㅋㅋ 껌 씹었다고 춤 잘 추겠어. 나의 주체할 수 없는 끼지 ㅋㅋㅋ"

"에구구 지랄을 하세요. 그런데 뭔 일 이세여?"

민영은 선화 선배와 통화한 이야기를 했다. 도영 엄마는 이해할 수 없는 아주 위험한 남편 친구를 두고 있다고 더 이상 현우 씨보고 만나지 못하게 하라는  경고를 해주었다. 한나절을 보내고 민혁이 유치원에서 돌아올 시간에 맞춰서 집으로 돌아왔다. 민영은 언제나 솔직하게 마음을 보일 수 있는 도영 엄마가 좋왔다.


저녁을 먹고 현우와 민영은 잠깐 산책을 나섰다.

6월 초이고 밤이라 민영은 긴팔을 걸치고 나왔다. 때 맞춰 불어주는 바람이 시원하다고 민영이 생각했다.

" 이렇게 나오니 좋다. 날도 따듯해졌는데.. 가끔 이렇게 나와야겠다."

"글치...나오니 좋네. 사람들의 감정은 참 다양해. 그 많은 감정들을 우리의 마음에 담고 또 마음이라는 형태는 우리의 몸 어디에도 없지. 하긴 머릿속의 생각이 마음이니까... 우리들은 흔히 마음 하면 심장을 가리키잖아 그건 심장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지. 살아 있어야 마음도 존재하니까... 그리고 또...."

"서두가 길다 뭐 나한테 할 말 있어"

"선화 선배 말이야. 나한테 자꾸 의도적으로  나를 조롱하는 것 같아. 자기가 처신을 좀 잘해 주면 좋겠어"

"왜! 선화가 오늘 전화했어. 선화가 나한테 뽀뽀했다고 했구나... 그래서 그런 거야. 그건 내가 운전하고 있으니까 장난한 거지... 신경 쓰지 말아. 선화가 자기한테 왜 그러겠어. 민영이 너 엄청 칭찬 많이 하는데"

민영이 고개를 돌려 남편 현우를 바라본다. 주의를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고 어둠만 살짝 내리고 있었다.

민영은 심호흡을 한번 하고 말을 꺼낸다.

'그런 미치 년' 민영의 머릿속에 떠오른 말이지만 민영은 내뱉지 않았다.

"자기 대학 때 선화 선배 좋아했어. 태식이나 진호오빠 때문에 그냥 지켜봤냐고. 오늘 선화 선배가 나한테 남기려는 메시지는 그런 것 같던데. 네가 아무리 남편에게 자신감 넘쳐도 남자들이란 다 똑같아. 그 애는 예전에 나를 좋아하였었고 지금도 내가 어떻게 하면 그냥 한방에 넘어올 수 있다는....  뽀뽀만을 말했지만.... 나에게 더 많은 상상을 하게 끔 했지"

현우의 표정이 어둠 속에서도 화가 났음을 알 수 있었다.

"너는 가끔 너무 깊게 오버 좀 하지 말아라.."

"그래~. 내가 오버하는 거야.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나는 더 이상 대화하지 않겠어."

"선화가 왜 그런다고 생각해. 너 예전에 진호가 선화랑 왜 헤어졌는 줄 알아. 다 너 때문이잖아 네가 그 애 마음에 들어가서 진호가 선화한테 더 이상 다른 사람을 가슴에 담고 선화 사귀기 싫다고 한 거야. 그리고 태식이는 왜 선화랑 사귀게 되었다고 생각해... 네가 태식이랑 친하니까 선화가 노력해서 태식이 사귄 거 몰라. 다 네가 원흉이야. 너 때문에 선화가 학교 때 얼마나 많이 울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면서 왜 그래"

민영은 황망하게 남편 현우를 바라보았다. 민영은 절대로 아무것도 몰랐다. 진호 선배도 태식 선배도 민영을 좋아하 했었는지... 하지만 두 선배다 민영에게 한 번도 부담을 주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예쁘고 귀여운 후배로만 대해 주었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태식 선배와는 선화 선배는 사귀었고 결혼까지 하려 하지 않았던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태식 선배와는 결혼하려 했었잖아."

"결혼하려 했었지, 하지만  태식이가  부모님 반대하니까 부모 핑계 되고 헤어진 거지.  너 때문에 시작했지만 선화는 태식이를 많이 사랑했었어"

민영은 머리 속이 아주 빠르게 과거로 돌아갔다. 대학 졸업 후 몇 번인가 태식 선배한테서 편지가 시골집으로 왔었다. 아버지가 민영이 에게 전해 주었지만 민영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답장들을 해주지 않았었다.

그리고 결혼 2달 전에 현우와 함께 진호 선배를 만났을 때 현우와 결혼한다는 말에 농담처럼 다시 생각해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때는 친구사이인데 농담이라도 저렇게 할까 싶었었다.

그리고 그들은 결혼식 때 보고 민기 돌잔치 날 태식 선배와 내가 단둘이 밖에서 나란히 의자에 앉아 이야기할 때 남편 현우가 불편하게 쳐다보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왜 그런지 몰랐었다. 민영이 결혼 후

 2년 뒤에 진호 선배가 결혼하고 또 뒤이어 태식 선배가 결혼했었다. 태식 선배는 신혼 때 음주운전으로 죽었다. 그런 사실을 현우는 다 알고 있으면서도 이제껏 민영에게 한마디 말도 없다가 선화를 변호하기 위해 옛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민영은 현우가 다시 보였다. 아니 아주 소름이 끼쳤다.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그리고 그건 과거의 일인데 선배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야 ~선화가 너한테 무슨 짓을 했다고 그러는데.... 그래 선화가 그러더라 넌 너무 욕심이 많다고."

" 남편이 되어서 고작 한다는 짓이 여자 친구랑 아내 흉보는 거야"

"이게 말이면 다인 줄 알아." 찰싹

민영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냥  머릿속의 과거의 기억들이 영화 필름 돌아가듯이 마구마구 펼쳐지고 있었고 민영은 쓰러질 듯했고  현우가 얼른 민영의 팔을 잡았다.

민영은 어둠 속을 걸어 집으로 향했다. 현우가 민영의 팔을 잡고 때린 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민영은 초점 없는 눈동자로 현우를 보았고 더 이상 우리들 사이에 선화 이야기를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민영과 선화는 8년 만이다.

포천에서의 일을 생각하니 민영의 몸이  진저리가 난다. 민영은 창밖을 보았다. 언제나 그렇듯 그녀의 햇살들은 따듯한 금빛 날개들을 달고 그녀가 원하는 시선에 멈추어 너울대며 비추고 있다.

선화가 들어온다.

"미안 , 내가 요즘 친정에 일이 생겨가지고..."

"그런데 중앙대 병원에는 무슨 일로..."

"친정아버지가 입원해 계셔서 내가 자주 들려, 너한테 예전에 미안한 일도 있고 해서 너를 만나서 사과하고 싶었어. 내가 예전에 고의적으로 괴롭힌 거 알고 있지. 민영이 네가 너무나도 당당하게 현우를 믿는다고 말하는 게 얄미웠다고 해야 하나. 오래된 일이지만 미안하다."

"그랬군요. 그것도 모르고...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시간이 해결해 주네요"

선화는 빙그레 미소 지어 보이며 녹차를 입에 댄다. 현우를 믿는다고 말하며 민영이 아니면 죽고 못 산다고 장담하는 민영이 얄미워서 예전에 했던 일들을 떠올려 본다. 사실 선화는 학교 때 현우와 사귀지는 않았지만 현우만큼 자신을 잘 알고 자기를 위해 애써주는 이는 현우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여전히 현우는 자신을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 일 인양 현우를 필요할 때마다 친구라는 가면을 쓰고 불러낸다.

요즘 그녀의 여러 상황들이 친구 현우의 위안을 필요로 했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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