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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 냥이 Nov 19. 2016

앙코르 와트 안녕!

여행을 통한 자각

인천공항 AIR SEOUL 데스크에서 씨엠립 공항 가는 티켓을 발급받고 돌아선 내 가슴이 조금은 두근 거렸다. 왠지  이번 여행을 계기로 가이드 없이도 자유여행을 다닐 수도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팍팍 생겼다. ㅎㅎ 마음만....

아무튼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민희 엄마와 비행기에 올랐다.

우리들의 출발 비행시간은 19시 15분이고 씨앰립 도착시간은 22시 40분의 3박 5일의 일정이었다.

저가비행기라 기내가 비좁을 거라는 우리의 예상을 깨 주는 기쁨과 함께 좌석배치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티켓팅 해주는 담당자에게 좌석을 조금 신경 써 달라고 부탁한 보람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사람씩 앉아가야 하는 비행기 좌석 몇 군데가 두 사람씩 앉게 되었는데 바로 우리에게 그 운이  주어진 것이다.

"그래, 옆의 여직원한테 어떤 자리 쓰겠다고 양보받으며 우리 좌석 배당 해줄 때부터 느낌 오더라"

"나도 혹시나 했는데, 부탁해 보길 잘했지."

" 미인하고 있으니 이런 행운도 있네, 잘생긴 외모를 칭찬이라도 해주고 올걸"

" 뭔 그런 농담을 , 누구라도 부탁했으면 해 주었을 일이야. "

"  너는 항상 사람들의 호의를 받잖아"

" 아닌데...."

우리들의 기분 좋은 캄보디아 여행의 서막이 열리고 있었다.


비행시간 동안 읽을 책을 꺼냈다. 씨엠립 공항까지 다섯 시간 걸린다고 해서 오고 가며 한 권 읽을 거라 생각하고는  챙겼지만, 민희 엄마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냐고 책은 뒷전이 되었다.

민희 엄마의 목소리가 점점 커질수록 내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지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아무도 우리 보고 조용하라고 탓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여행 시작 이틀 전 시어머니 생일상을 집에서 치르면서 겪은 스트레스로 그녀의 목소리가 커졌었다. 20명의 대 식구를 저녁과 다음날 아침까지 집에서 음식을 해서 대접했으니,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거라는 것을 안다. 이해는 하지만 여행하면서 그 스트레스의 일들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을 즈음, 승무원이 캄보디아 출입국카드와 세관신고서, 비자신청서를 작성하라고  용지를 준다. 작성하는 데는 별 어려움은 없었다. 무심코 앞좌석의 사람들이 한국 거주지 주소를 한국말로 꼼꼼히 쓴 것을 보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캄보디아 비자는 30불을 받기 위한 형식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나는 간단히 SEOUL이라고만 썼기 때문이다.

용지를 작성하고는 그녀와 나의 화제는 비자 발급받을 때 드는 비용 30달러 말고 1달러를 요구하는 이야기로 바뀌었다.

나는 적은 돈이라도 줄 수 없다는 말을 했다.

"그럼 20~30분 기다린다고 하잖아"

"알아,  1달러라도  부당한 요구에는 응하기 싫어"

" ㅋㅋ 그럼 우리 둘 다 생까 볼까, 기대되는 데 ㅋㅋㅋ 근데 계속 달라고 하면 너 뭐라고 할 건데  ㅋㅋㅋ 말이 나 할 수 있어야 따지던 말던 하지 ㅋㅋ 영어로 모르는 척하고 WHAT만 외쳐 볼까 ㅋㅋ"

"ㅋㅋㅋㅋㅋㅋ "


나는 씨엠립 공항에 도착해서 그곳 공항이 작다는 것이 의외였다.

그리고 입국 비자 발급에서 당연 우리는 1달러를 주지 않은 대가를 치렀다. 그리고 당연하게 1달러를 주는  사람들이 미웠다.

공항 밖으로 나와서 모두투어를 찾으려 했던 우리들은 조금 당황했다. 현지 가이드들 모두가 모두투어라고 쓴 종이들을 들고 있었다.

다행히도 우리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가이드분은 성격 좋아 보이는 젊은 여자분이었다.

우리 팀은 우리 둘을 포함해서 12명이었다. 우리 둘만 친구끼리 온 여행이고 열 분은 모두 부부가 함께 온 여행이었다.

우리들보다 더 연배가 있어 보이는 부부들이라 조금은 부담스러웠지만 함께 여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게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팀의  숙소로 정해진 소카라이 호텔에서 푹 자고 여행 둘째 날은 호텔에서 제공하는 뷔페로 아침을 먹은 후 여유 있는 아침 산책을 누리고 가이드 분과 11시에 로비에서 만나서 실크 농장으로 향했다. 뷔페에 나온 음식들은 다 먹어 보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내 입맛에는 맞았다.

나는 언제나 여유 있는 아침을 누리며 좀 더 낭만적인 여행을 해보고 싶었는데 이곳 캄보디아의 여행에서 여유 있는 아침을 누리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다만 생각보다 조금 쇼핑이 많다는 것이  애로 사항이었지만, 관광 쇼핑의 즐거움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실크 팜(실크 농장)을 견학할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본 누에는 내가 기억하는 누에 크기보다는 작았다. 누에도 사람들도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작다.

그리고 실크 짜는 농장도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의 룸만큼이나 밝지 않았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캄보디아는 전력공급을 베트남이나 태국에서  받는다고 했다. 비바람이 심하게 쳐서 전기가 끊겨서 한 달 정도 그냥 정전상태로 지낸 적도 있다고 한다. 한 달이나 참다니 우리나라 사람들 같으면 절대로 있을 수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들의 행복지수가 우리나라 사람들보다도 훨씬 높다고 했다.

요즘은 태양열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쓰는 곳들도 많이 생겼다고 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한다.

우리는 완성된 실크제품 쇼핑을 하고 웨스트 바래이(인공호수)를 잠시 들렸다.

황토색의 넓은 호수의 끝자락에서 아이들이 수영하는 모습이 보였다. 진흙물이라 피부에는 좋아질까?라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역시 물이 더럽다는 생각이 나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래도 천진난만하게 수영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내 가슴에 남는다. 또한 캄보디아에서는 물을 조심해서 먹어야 한다며, 호텔이나 여행사에서 준비한 물 이외는 먹지 말라고 우리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아티상 예술학교는 장애인들에게 미술이나 조각 같은 것을 가르쳤고 졸업 후에는 공예학교에서 그들이 만든 작품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들의 집중력과 손재주로 멋진 예술품들이 쏟아지고 있는 곳이었다.

점심은 한국식당에서 우묵 정식으로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캄보디아에서 음식으로 고생은 하지 않았다. 아침은 호텔 뷔페로 먹고 점심과 저녁은 가이드가 안내한 한식당으로 다니면서 맛나게 먹었다.

그날 저녁으로  민속춤을 관람하면서 압살라 디너에서 먹은  독특한 향이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나름 참을 만했다.

점심식사 후 망고농장을 견학하고 맛난 과일을 맛보는 동안 나는 마당에서 놀고 있는 새끼 고양이 3마리를 안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얼마나 귀여운지 나는 3마리를 한 번에 다 안아주었다. 어디서건 냥이들은 너무 사랑스럽고 예쁘다.

 현지인들의 실생활 체험으로 시장과 싸르 라는 재래시장을 돌아보고 그날의 마지막 일정으로 LE'SPA오일 마사지를 받았다.

나는 아직 한 번도 마사지라는 것을 돈 내고받아본 적이 없어서 내심 기대를 했다. ㅎㅎ 하지만 그들의 마사지는 힘들게 열심히는 하는데 뭔가가 부족하다. 시원한 느낌이 아니라 아프다. ㅎㅎ 다행히도 가슴은 마사지를 하지 않는다. 가슴도 문지르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다. 고생한 그녀의  손에 5달러를 건넸다. 사실 내 굵은 허벅지와 큰 엉덩이 때문에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서 3달러를 주려다 5달러를 주었다.

사람들의 생각이 다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상하게도 작은 체구의 순해 보이는 그녀들에게 연민을 느꼈다.

호텔로 돌아온 우리들은 그날 쇼핑한 옷들을 꺼내서 입어 보았다. 나는 실크 팜에서 원피스를 한벌을 샀고 민희 엄마는 가방과 웃옷 2벌 치마 1벌을 샀다. 순간, 행복지수가 돈으로 80% 이상을 차지하는 건 아닐까 하는 속물근성이 꿈틀거렸다. 사실 돈 쓸 일이 뭐 있겠나 싶어서 현금을 많이 가지고 가지도 않았었다. 다만 만약을 위해 카드를 챙겨 갔는데, 첫날부터 카드를 긁었다. ㅜㅜ

나는 가끔은 엉뚱하게 돈을 쓴다. 서울 가면 겨울인데 여름옷을 사고 참 생각이 없다.

민희 엄마는 호텔도 캄보디아의 날씨도 모두 마음에 들어했다. 나는 그녀가 기뻐하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좋았다. 그녀는 입을 다물고 있으면 화가 난 사람처럼 보인다. 나는 그녀의 웃는 모습과 웃음소리가 너무 예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자주 웃는 그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사교적이어서 이곳에 와서도 사람들과 금방 친해졌고 유머스런이야기도 잘 해서 모두를 웃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분 좋게 침대에 누워 잘 준비를 하려니 1달러를 외치는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가이드는 아이들에게 돈을 주지도 말고 물건을 사지도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돈벌이하냐고 학교를 나가지 않는다고 캄보디아 정부에서 아이들에게 물건을 사지 말고 돈을 주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생계가 달린 문제 같아서 외면하기 힘들었다.

우리에겐 아주 작은 돈이지만 그 아이들에겐 생활에 꼭 필요한 돈인 것 같다. 그냥 구걸하는 아이들은 웬만하면 외면하려 노력했고 물건을 팔거나 다른 서비스를 하는 아이들에 대해선 그냥 지나 칠 수가 없었다.

그들의 맑고 순한 눈동자들은 내 마음을 자꾸만 흔들고 있었다.

내가 참 평탄하게 살아왔고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캄보디아에서  새삼 느끼게 되었으며 여행이라는 것은 돈만 쓰고 다니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여행 셋째 날 아침의 눈을 떴다.

집 떠나면 잠자기 힘들어하는 나였는데 둘째 날도 셋째 날도 6시간씩 푹 잤다. 민희 엄마와 나는 부부가 아니어서 트윈으로 된 방을 썼다. 우리 방 침대는 싱글 트윈이 아닌 킹사이즈 더블 트윈이었다. 내가 볼 땐 한 침대당 3 사람이 자도 충분했다. 다행히 민희 엄마도 나처럼 잠을 푹 잘잔다고 한다. 착한 가격의 여행인데 어느 곳 보다도 좋은 호텔을 이용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캄보디아의 여러 가지 조건들이 나와 민희 엄마를 기쁘게 했다.

고대하던 앙코르 와트와 타프롬 사원을 관광하는 날이라  조금 서둘러 아침 7시 30분에 버스에 올라

타프롬 사원으로 향했다.

앙코르 와트에 가기 위해서 복장을 청바지와 소매 있는 반팔로 입었다. 복장이 그들이 정한 기준에서 벗어나면 입장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고 했지만 그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다만  서운한 게 있다면 두 곳을 보는데 반나절밖에 할애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툭툭이를 2인 1조로 타고 타프롬 사원으로 향했다. 바람을 맞으며 우거진 숲의 경치를 바라보며 툭툭이로 달리는 우리들의 기분은 좋았다. 또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는 연약한 흰소들의 모습도 낯설었지만 너무 정겨웠다. 우린 흰소가 말인 줄 착각을 했었다. 캄보디아에서는 흰소는 농사를 짓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닭들도 다 방목해서 키워서, 치킨으로 먹을 때 튀김옷을 입히지 않으면 아주 맛이 있다고 했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튀김옷을 맛나게 입히지를 못한다고 했다. 가이드의 말은 맞는 것 같다. 아침마다 호텔에서 튀김옷을 입히지 않고 구운 닭들은 정말 맛이 있었다

그곳의 날씨로는 4모 작도 가능하다고 했지만 정작 4 모작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나는 그곳의 쌀이 참 맛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향긋한 향도 나는 듯한 것 같으면서도 맛났다. 나는 아침마다 적은 양이지만 밥을  빼놓지 않고 맛보았다. 대신 빵 만드는 기술은 부족한지 빵맛은 별로 였다.

타프롬 사원을 들어가기 전 표를 검사하는 곳에서 어린아이가 나에게 온다. 옆에 있던 민희 엄마가 웃으면서 나에게 말을 한다. "자기한테는 아이들이 잘 오네 ㅋㅋ 아이들도 돈 줄 사람을 알아보는 가 보네. 비자 심사에서는 1달러 안 주려고 아둥대더니 ㅋㅋ"

"상황이 틀리 잖아"
"알아 "

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작은 슬픔이 밀려왔다. 아마도  아이들과 눈이 마주치기 때문에 아이들이 내게로 왔는지도 모르겠다.

오지랖인지 조금은 지저분한 그들을 씻겨주고 싶었고 조금 지저분한 옷들도 빨아 입혀주고 싶었고 신발도 신겨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더럽게 느껴져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냥 아이들을 향한 측은지심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그곳은  신발을 신고 다니지 않아도 유리조각 같은 것이 없어서 발을 베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말을 듣긴 했다.

타프롬 사원을 향해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지뢰피해 군인들이 음악을 연주하는 곳에 도착했다.

그들이 연주가 녹음된 CD 판매와 기부금 받는 통도 보였다. 우리가 한국사람들임을 알고는 아리랑을 불러주는데 얼마나 잘 부르는지 아리랑에 대한 답례로 민희 엄마와 나는 기부금 통에 1달러씩 넣었다.

그들은 캄보디아 내전 당시 참전해 지뢰폭발로 팔다리에 심한 부상이나, 수족이 절단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었다. 캄보디아는 수차례의 전쟁으로 전 세계에서 지뢰가 가장 많이 매설되어있다고 한다.


타프롬 사원은 자야바르만 7세가 모친을 위해서 지은 불교사원이다. 거대한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는 타프롬 사원은 그동안 사람들이 돌보지 않아서 나무들로 인해 사원이 붕괴되는 것을  복원하고 있는 중이었으며 영화 툼레이더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더 많이 유명 졌고 그 영화에 출여한 배우가 안젤리나 졸리였다. 그래서 그곳엔 앤젤리나 졸리로 불리는 나무도 있다. 타프롬 사원과 거대한 나무들의 조화는 우리들의  경탄을 자아내게 했다. 더 많은 시간을 가지면서 타프롬 사원을 둘러보고 싶었지만 서두르는 가이드의 성화에  앙코르 톰 유적군으로 향했다.

바푸온 사원과 코끼리 테라스를 거쳐 바이온 사원을 간 것은 기억나는데 피미아나까스와 레퍼 왕 테라스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사진이라도 찍어두었으면 찾아보면 기억할 텐데, 사진도 없다.ㅜㅜ

뜨거운 태양에 지쳤을 때쯤 꽃왕관을 쓴 어린 천사들을 만났다. 천사들의 예쁜 모습을 사진 속에 제대로 담지 못했지만  너무 사랑스럽고 예뻤다.

 드디어 앙코르와트를 향해서 툭툭이를 타고 달렸다. TV다큐로 보고 너무 감동받아서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나처럼 캄보디아를 방문하는 여행객 대부분의 목적도 앙코르와트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원의 도시라는 의미를 가진 거대한 앙코르와트는 프랑스 박물학자가 발견해서 알려지게 되었는데, 12세기 초에 크리 메제 국의 황제 수리야바르만 2세가 사후에 비뉴수와 합일하기 위해서 만든 사원이다. 앙코르와트로 들어가려면 강처럼 넓은 해자를 건너야 하는데  물의 신이 조각되어 있는 200미터 길이의 다리를 건너면 된다. 우리도 그 다리를 건너서 앙코르와트를 들어갔다. 앙코르와트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정말 시간을 충분히 두고 천천히 꼼꼼히 보고 싶었지만 우리들에게 시간이 없었다. 천상의 계단을 올라 앙코르와트를 내려다보는 풍경은 너무 아름다운 그림이 되어 있었다. 마음의 평온함도 함께 주는 아름다움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위대한 앙코르와트나 타프롬 사원을 보게 되어서 너무 행복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짓기 위해 고생하거나 죽은 이들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혼자 놀고 있기에 잠깐 고양이를 안아주었다. 캄보디아의 고양이들은 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거 같다.


"저는요 개인적으로 앙코르와트는 UFO를 타고 온 외계인들이  살다가 간 곳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

가이드의 농담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앙코르와트의 풀리지 않는 신비함들이 외계인을 상상하게 했다. 어느 순간 앙코르와트의 태양이 너무 뜨겁게 느껴졌다. 까뮈의 이방인이 떠올랐다.

강렬한 태양 하면 이상하게 까뮈의 이방인이 떠오른다.

타프롬 사원을 둘러 볼 때까지도 좋다고 느끼던 날씨는 너무 뜨거워졌고, 눈가로 흐르는 땀은 나의 신경을 희미하게 자극하고 있었고  은근하게 허기져 오는 배고픔은  기분에 들떠 아침을 조금밖에 먹지 않은 내 탓이었다. 나의 배꼽시계는 한국에 맞추어져 있었고 우리의 점심시간도 캄보디아 시간으로도 한참을 지나있었다.  

앙코르와트를 뒤로하고 나는 빠르게 다리를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점심을 빨리 먹고 싶은 나의 맘이 작용했다. 앞사람이 빨리 걸으면 뒤에 오는 사람들도 따라오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점심을 웰빙 쌈밥정식으로 먹고 호텔에 도착한 우리 팀은 저녁식사와 선택관광으로 로사나 브로드웨이 쇼와 나이트마켓과 PUB STREET를 방문하기로 해서 5시에 로비에서 만나기로 하고 각자의 방으로 헤어졌으며 민희 엄마와 나는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호텔 실외 수영장으로 향했다. 발이 아파서 피곤하다고  썬베드에 누워있는 그녀와 체력이 남아도는 나 ㅎㅎ

저녁을 먹고 로사나 브로드웨이 쇼를 보고 우린 곧장 PUB STREET와 나이트마켓을 갔다. 난 개인적으로 PUB STREET가 마음에 들었다. 거리엔  흥겨운 음악이 흘렀고  외국인 여행자들로 북적거렸다. 기분 같아선 춤추러 가고 싶었지만 우리 팀의 분위기상(ㅎㅎ) 당치 않았다. 가이드와 나는 거리의 분위기에 몸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이트마켓을 돌며 물건들을 구경하고 거리의 무서운 음식들도 보았다.

로사나 브로드에이쇼에서 아리랑도 들었는데 북한식 아리랑이었고, 무대엔 트랜스젠더들도 출연했다. 공연이 끝나고 나는 가장 예쁘게 생긴 트랜스젠더에게 1달러를 주고 사진을 찍었다. 사실은 그들 공연을 보면서도 트랜스젠더인 줄 몰랐다. 그리고 가장 예쁜 여자와 사진을 찍고 보니 1달러를 달라고 한다. 주고 나서 보니 가이드가 트랜스젠더라고 한다. 민희 엄마도 나처럼 트랜스젠더인 줄 몰랐다. 우리들은 기분 좋은 3일째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서 얼굴에 마스크팩을 올리고 누웠다.

"자기가 낙천적인 성격인 줄 이번 여행을 함께 하다 보니 알겠더라"

"설마, 나는 조금 소심한 내성적인 성격인데"

"그래, 나도 자기가 내성적이면서도 자기 고집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어, 낙천적인 줄은 몰랐어"

"응... 그런가. 난 잘 모르겠는데"

" 내가 왜 몰랐었지, 허긴 새댁 때 헤어지고는 전화로만 소식 주고받고 지냈으니 알턱이 없었지, 함께 지내보니 알겠더라"

" ㅎㅎ 여행을 함께 한다는 건 좋은 거 같다. 이렇게 나의 좋은 성격도 알아봐 주고 ㅋㅋ 내가 볼 땐 여행의 즐거움 때문에 마음의 여유가 생기나 봐....."

쿨쿨.... 그녀가 잠들었다.

창문을 열고 씨엠립의 밤하늘을 보았다. 이곳에 와서는 별을 보지 못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낮에 좋았던 날씨가 야시장 돌 때부터 비가 오다 안 오다 했었다.

내일 떠날 걸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어수선했다. 남들은 집 떠나면 집 걱정한다고 하던데.... 나는 여행하면서 집 걱정을 한 적이 없으니, 내가 정상이 아니다. 오히려 캄보디아를 떠나는 마음이 서운했을 뿐이다. ㅎㅎ그래도 전화통화할 땐 무지 보고 싶다고 한다. 이곳에 빠져서 미쳐 생각도 못했는데 ㅎㅎ.......


여행 넷째 날 그녀와 나의 아침식사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았다.

"아, 나 오늘 한국 간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시댁 생각이 나네 ㅋㅋ"

"ㅎㅎ 밥 주고, 청소해주고, 맛난 거 먹으며 즐겁게 여행하다 보니 가기는  싫고, 엄하게  시집살이하는 시댁이 떠오르는 거지 뭐 , 사람 마음이 넘 웃기지"

"그러게 말이다. 매일 이렇게 차려주는 밥 먹으며 여행하고 싶다."

나는 그날 아침에도 캄보디아 쌀밥을 먹었다. 우리나라 쌀처럼 찰지지는 않지만 맛나다.

우리의 비행 출발시간이 밤 00시 05분이라 여유 있게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씨엠립의 작은 킬링필드, 왓트마이로 향했다.  킬링필드는 캄보디아에서 폴 포트의 공산주의 정권 크메르루주가 4년 동안 양민 200만 명이 넘는 대량 학살한 최악의 사건이다. 학살 대상은  지식인과 부유층이 대부분이었고 그때 당시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다고 한다. 씨엠립에서도  너무 많은 유골들이 나와서 추모탑과 유골 안치소를 세우고  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랬다. 그곳이 왓트마이이다. 아직도 땅을 파면 유골이 나온다고 한다. 킬링필드라는 영화로도 유명하다. 영화 킬링필드의 실제 주인공 샌버그가 캄보디아 내전의 참상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렸다고 한다.

수차례의 전쟁으로 지금은 빈곤한 나라가 되었지만 한국전쟁 때는 우리나라에 쌀을 원조해주었다고 한다. 여러 가지로 정이 가는 캄보디아였는데 그 말을 들으니 더욱 정이 갔다.

그곳을 떠나 로열 독립공원 내 박쥐 공원을 들려 잠깐 휴식을 취하고 쇼핑센터들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상황버섯, 보석 공장, 명품 면세점, 라텍스 공장 등.... 몇 군데 더 가긴 했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안 든다.

나는 그날 다른 쇼핑은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250년 산 상황버섯에 혹해서 또 한 번 카드를 긁었다. 몇백 년 된 버섯은 미리 쪼개 놓지 않고 살 사람이 정해지면 그 즉시에서 쪼갠다. 250년 된 버섯을 우리 팀에서 네 사람이 나누어 사기로 했다. 서비스로 40년 된 상황버섯 한 봉지가 딸려 왔다. 패키지여행경비보다 쇼핑으로 돈이 더 많이 지출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ㅜㅜ  아껴 쓰겠다고 달러를 조금밖에 가지고 가지 않아놓고는 비상용으로 가지고 온 카드를 쫙쫙 잘도 긁는다. ㅎㅎ그래도 어쩌겠누 건강하게 살겠다는 나의 의지를...... 몇 달간 조신하게 몸조리하면서 지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톤레샵 호수와 수상가옥촌을 유람선을 타고 돌 때 너무 웃긴 일이 있었다. 유람선 옆으로  작은 배가 지나가면서 타고 있던 어린아이가 손을 흔들었다. 맨 앞쪽에 앉은 나와 맨 뒤쪽에 앉아 있던 부부가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 손 흔들지 마세요. 쫓아옵니다"라고 가이드가 큰소리로 말을 했다.

나는 그 소리에 얼른 손을 내렸지만  그 부부들은 계속 손을 흔들었다.

가이드는 선장 보고 빨리 달리라도 하는 것 같았다. ㅎㅎ 그런데 벌써 그 아이가 배에 음료수 통을 들고 올라탔다.

우리들은 그 조금만 배가 그렇게 빨리 달려온 사실이 놀랍고도 웃겼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아이가 나에게 온다. 에궁 손을 끝까지 흔든 부부에게 안 가고 왜? 유람선에 타고 있던 우리 팀과 민희 엄마는 웃냐고 난리다. 그 아이는 음료수를 내게 건넨다. 나는 음료수를 받지 않고 1달러를 주고는 손 흔든 부부나 다른 부부들에게도 음료수를 사라고 권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웃었어"
"그럼 안 웃기니, 끝까지 손 흔든 사람에게 안 가고 너한테 가서 사라고 하고, 유람선 타자마자 어깨 주물러 주는 아이도 너한테 왔고,  ㅋㅋ빨간 옷이 눈에 튀는가 보다 "

유람선을 타기 전에 어깨 안마해주면서 팁을 받아 생활하는 아이들이 있으니 몇 명만이라도 안마를 받아 달라고 가이드가 부탁했다. 그때만 해도 우리 팀의 어르신들보다 내가 훨씬 젊기에 나에게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나에게 먼저 와서 안마를 하겠다고 작은 손을 내 어깨에 올린다. 나는 안마를 조금만 받고 1달러를 지불하고 다른 사람들도 안마를 받게끔 주선하고 다녔다. 아무래도 그 웃음의 정체를 선함으로 정해야겠다. 왜냐하면  내가 권하는 대로 안마들도 받고 음료수들도 다 사주지 않았던가.

수상가옥들과 수상학교 그리도 베트남 난민 2세들이 살고 있는 수상가옥들, 모든 것이 즐겁게 만 여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수상학교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가이드와 함께  배의 지붕 위로 올라갔다.

지붕 위에 서서 톤레샵 호수의 수평선을 바라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톤레샵 호수의 황토색은 멀리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까지 물들었고  하늘의 깨끗하고 맑은 파아란 색과 호수의 탁한 황토색이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잠깐 유람선에서 내려 카누를 탔다. 혹시 카누가 뒤집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은 붙들어 매도된다. 유유히 차분하게 노를 얼마나 잘 젓는지 흔들림 하나 없었다. 카누를 타고 호수를 천천히 가르며 다니는 것이 몸도 마음도 편안하며  좋았다. 태양을 피하고자  꽃우산을 쓰고 카누를 타는 내 모습에서 ㅎㅎ 어떤 상상의 나래를 잠시 펴본다. 왜 있지 않은가... 영화나 명화 속의 ㅎㅎ배 타고 양산 쓰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

호수엔 부레옥잠 같이 생긴 식물들이 많이 자라고 있었다.

점심과 저녁을 맛나게 먹고 마지막 일정인 마사지를 받았다. 오일 마사지와는 다른 지압 마사지라고 했는데 전에 받은 마사지와 조금 비슷하긴  했지만 좀 더 부담이 없고 편안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처음 마사지를 받을 때와는 다르게  경험에서 오는 여유... 뭐든 첫 경험이 부담이 된다.

마사지를 받으며 잠깐 잠이 들었다.


공항에 들어서며 가이드와 작별인사를 하고 우리는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좋은 여행은 언제나 뒤에 뭔가를 남겨 놓은 듯 아쉽다. 내가 다시 그곳을 가는 날은 좀 더 다른 모습으로 그 땅을 밟고 싶은 작은 소원이 생겼다. 여행은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던 꿈을 향해 구체적으로 자각하는 과정도 선물한다.

정말로 보고 싶었던 앙코르 와트를 본 것으로도 나는 너무 기쁘고 행복했다.


그리고

그녀의 여행 후 폭풍,

신은 언제나 그녀를 시험한다.

정말로 그녀가 장담한 알뜰한 여행을 했는지

ㅎㅎ 그녀의 신은 언제나 그녀를 이긴다. ㅜㅜ 몇 달은 조신하게 방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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