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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 냥이 May 12. 2016

Alhambra

스페인

오늘 나는 ...사라 브라이트만알람브라를 들으며 기억 속 저편의 헤네랄리페 정원의 담장 사이프러스 나무들을 손바닥으로 쓸며 걷고 있다.


스페인 여행에서 돌아와서 한동안은

헤네랄리페 정원을 걸으며 그녀의 알람브라를 들었던 그 느낌을 간직한 채 잠들곤 했었다.

이젠 아련하게 옅어지는 그 느낌은 시간 속에 퇴색되어지긴 했지만, 그날의  나의 감성을 잊을 수 있을까!

그날 가이드가 헤네랄리페 정원에 도착하기 전에 우리들에게 고목나무의 슬픈 전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것은 왕후의 슬픈 사랑이야기였으며 왕후의 사랑을 지켜본 죄목으로 그 나무가 잘렸다는 이야기였었다. 헤네랄리페 정원에 도착했을 때는 알람브라 궁전의 모든 설명을 끝내고 우리들에게 자유시간을 주면서 이어폰으로 사라 브라이트만의 노래 알람브라가 흐른다.

왠지 모를 가슴에 슬픔이... 아니, 왕후의 슬픔이 내게 전이된 듯... 아무래도 나는 그 알람브라 궁전에 있는 고목나무의 전설에 깊이 빠져있었던 것 같다. 헤네랄리페 정원의 사이프러스 나무를 손바닥으로 쓸며 걷는 나의 눈에는  알 수 없는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니..... 그건 감성적인 목소리 사라 브라이트만의 알람브라가 나의 심장에 감정이입되어버린 것과도 같았다.

나의 눈물과 가슴 한 구석의 작은 아픔은 뭐라 설명되어지지 않는 것이 었기에  함께 간 재순 언니와 나란히 걸을 수 없었다.

우리들은 가이드에게 그 노래 제목을 알려 달라고 했고, 여행객을 위해 언제나 알람브라를 들려주냐고 물었었다. 알람브라는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이고 오늘 처음 들려주는 것이라고  보기 좋게 웃으며 우리 팀이 좀 더 특별하다는 기분 좋은 멘트를 날렸다. 뒤 이어서 자작시를 낭송했는데 시는 기억이 잘나지 않지만.... 그날 모두들 감동에 취해서 환호했다.

정말이지 마지막 시낭송은 우리들을 감동시키기에  적시적기였었다. 최 수우 그는 진짜 최고의 가이드였다.

나는 스페인 여행하면서 가이드란 직업이 멋진 직업이라는 생각을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해보게 되었다.

스페인 여행은 나에게 어떤 변화를 요구했으며 또한 나를 다시 한번 되짚어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행은 나이와 관계없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내면의  성장을 주기도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 당시만 해도, 언젠가는 세계여행을 다녀야지 하고 막연히는 생각했었지만, 그에 따른 준비는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스페인 여행을 다녀와서는 구체적인 준비가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뒤늦게 나에게 서서히 늦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스페인 여행의 시작은.....

2014년 9월 친한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스페인 여행을 함께 하기로 한 친구가 갑자기 다리 수술을 하게 되어 못 가게 되었다고 나보고 함께 갈 수 있냐는 것이었다.

나는 계획에 없던 돈을 써야 해서 조금 망설였더니, 언니는 카드로 긁고 몇 달 굶으면 된다고 나에게 알려준다. 몇 분 고민 끝에 나는 결심했다.'그래  저지르자 이때 안 가면 언제 갈 수 있겠니? 가자!'

과감하게 5개월 무이자 할부로 스페인 여행을 선택했다. 9월 13일에 출발해서 20일 한국 도착이라고 하는데 며칠 남겨 놓지 않고 연락 온 것이라 모든 것이 속전속결이었다.


다행히 그해 3월 골프여행으로 태국을 한번 갔다 온 적이 있었기에 여권은 준비되어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세계 여행하는 것이 꿈이 었지만, 한 번도 시도해본 적이 없었던 그때는 여권도 만들고 여행가방도 사고 여러 가지로 준비를 하냐고 나름 바빴다. 태국도 3팀 가는데 한 사람이 아파서 못 간다고 해서 내게 연락이 와서 대신 가게 되었었다.


태국 골프여행은 말 그대로 한국 오는 날까지 계속 골프 라운드만 했고 딱 하루 관광한 것이 다였었다.

기대하던 콰이강의 다리를 보긴 했지만 생각만큼 진한 감동을 느끼진 못했고, 태국 하면 강이 깨끗하지 못한 것과 미안하게도 코끼리를 탄 것 그리고 콰이강의 다리, 맛난 망고...... 사실 더운데 골프만 하루 27홀 36홀씩 치냐고 힘들었지만, 골프가 너무 재미있던 때라 제대로 된 관광은 시간이 없어서 할 수없었다. 태국에서 마사지를 받아본 언니들은 마사지를 받아 보지 못한 아쉬움을 이야기했지만,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고기 맛을 안다고,  마사지는커녕 목욕탕에서 등의 때도 남의 손에 맡겨본 적 없는 나는  그 느낌은 알 수 없었다.


나의 외국여행은 언제나 남의 자리 메꾸기로 시작되었지만, 결과는 항상 즐겁고 좋았었다.

어쩌면 나에겐 내가 몰랐던  김삿갓의 방랑자 기질이 있는가 싶다. 그때만 해도  나는 가족과 함께가 아닌 여행은 생각해 보지 못했고, 사실 가족 여행도 많이 해보지 못했다. 가족을 떠나서 처음으로 과감히 태국으로 나갔으니...... 나갈 때는 집 걱정과 아이들 걱정 때문에 고민도 많았지만 태국 도착과 함께 한국의 모든 것을 싹 잃어버리는 나의 머리는 정말 대단했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란 말은 다 거짓말이란 것을.....


이른 새벽 우리는 공항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 사당 롯데리아 앞에서 만났고, 나는 밤새 뒤척이다가 한숨도 잠을 못 잔 눈으로 기분 좋게 버스에 올랐다.


공항에 도착해서 가이드 분과 함께 여행할 팀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비행기 수속을 마쳤다.

여행자들이 여행을 행복하고 즐겁게 제대로 된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함께하는 여행자들과 가이드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준다고 스페인 여행 경험상 말할 수 있다. 다행히도 우리 팀들은 나름 여행을 즐길 줄 아는 팀으로 제대로 잘 묶인 환상의 팀이었다.

재순 언니와 나만 여행 초보자였지 다른 사람들은 해외여행을 많이 다녀본 베테랑 여행자들이었다. 하지만 좀 더 멋진 여행을 하고 싶다면 단체여행보다는 개인적으로 하는 여행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노선은  영국을 경유해서 드리드도착으로 되어있었다.

비즈니스석의 전용 출입구를 이용하는 사람이 조금 부럽기는 했지만, 스페인 여행을 한다는 것으로도  그저 기분 좋아서 그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을 다졌다.

하지만 막상 그들의 좌석을 보니 부럽기도 하고 나도 언젠가는 비즈니스석을 꼭 한번 타보리 라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게 맞는 말인가 보다.


스페인에서 우리들의 여행은 수도 마드리드의 스페인 광장부터 시작되었다.

광장에 도착해서 세르반테스의 동상과 그의 책 속의 주인공   키호테 판초의 동상 앞에서 한 컷씩 사진을 찍고 찬찬히  세르반테스의 동상을 살피니  왼팔이 없다. 그가 외 팔이였는지 몰랐었는데 스페인 여행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많은 지식이 없는 나는 여러 가지로 스페인 여행이 신기하고 재미있고 행복했다. 우리는 마드리드 궁전을 들어가 보지 못하고 그저 지나가면서 볼 수밖에 없었다. 궁전은  언제나 오픈하지 않는다고 가이드가 말한 것 같다. 예약해 놓지 않으면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팀의 일정에는 마드리드 궁전이 없었던 것이다. 마요로 광장을 거쳐 프라다 미술관에 도착했는데 나는 그곳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나는 마요로 광장을 둘러보기 전에  작은 가죽 가방을 하나 장만했는데 아마  프라다 미술관서부터는 그 가방을 들고 스페인 여행을 시작했다.

가이드 최수우 씨는 그림들에 조예가 깊었다. 아니, 직업이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으리라 그래도 그의 이야기들은 진정성과 미술에 대한 깊은 지식으로 우리들에게 제대로  설명을 해주었고 또한 우리 팀들은 듣는 자세가 되어 있었다.

그림에 대한 문외한인 나는 아주 많은 감동을 받았었다.

지금 프라다 미술관을 떠올려 보면 <쾌락의 정원>이라는 그림과, 화가로는 '고야'가 생각날 뿐 다른 그림들의 제목과 화가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리고  미술관 앞에는 고야의 동상이 있다. 고야가 기억에 남는 건 그의 동상 때문일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많은 사진들을 핸드폰에서 삭제했고 남아 있는 사진들이 많지 않다. 내가 이런 글을 쓰게 될 줄 알았다면 나는 조금 더 가지고 있었으면 좋왔을 거란 아쉬움이 남아 있다.

사실 나의 기억도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 여행 다녀온 후 여행기를 정리해서 적어 놓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낯선 이국땅의 도시명칭이나 관광지 이름이  익숙지 않아서 기억이 따라주지를 않는다.

그리고 여행 중에 스페인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까 걱정을 하기도 했었지만 그건 정말 나의 쓸데없는 기우였다. 우리 여행자들에게 어울릴만한 식당들로 다 예약이 되어 있었고 나는 한국에 있을 때보다도 왕성한  식욕을 보였다.


이튿날 우리의 여행은  돈키호테의 고장 라만차의 풍차 앞에서 사진을 찍고 다시 안달루시아의 대 평원을 지나고 있었으니.... 끝이 보이지 않는 대평원에 올리브 나무가 널렸으며, 올리브 생산국 세계 1위라는 스페인의 넓은 대평원은 우리나라의 작은 국토와 비교가 되었고, 나는 조금 부럽기까지 했다. 보아도 보아도 보이지 않는.... 산, 끝없이 펼쳐지는  넓은 대 평원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었던 기억을 감출 수 없다.

안달루시아를 거쳐 이슬람 유적이 많은  코르도바에 도착해서 네로 황제의 스승인 세네카의 동상을 보았고, 유대인 구시가지에서 들러서 사진들을 찍었다. 세네카는  코르도바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동상이 그곳에 있는 것이다. 유대인 구시가지는  예전에 유태인들이 거주한 곳인데, 골목들이 아주 좁았으며 집집마다 창가에 화분들을 많이 내놓고 키워서  많은 꽃들이 인상적이었다.

메 스키 따사원을 들러서 여유 있게 사원을 둘러보며 건축에 대한 신비함을 새삼스레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성당을 많이 다닌 것  같은데 내가 다 기억할지 모르겠다. 나는 남아 있는 사진을 보면서 기억을 더듬어 간다.

플라멩코와 투우의 고장 세비야, 우린 투우 경기는  보지 못했지만, 플라멩코는 돈을 추가로 더 내고 보았다.

그들의 춤을 보면서 나는 왜 스페인을 정열의 나라라고 부르는지 알 것도 같았다. 플라멩코를 관람하고 나오면서 남아있는 나의 여흥에 못 이겨 나는 캐스터네츠를  샀다. 파는 사람에게 캐스터네츠의 손가락 놀림을 배우고는 여행하면서 가끔씩 캐스터네츠 치는 손가락 놀림을 연습했었다. 한국에 나와서도 한동안은 캐스터네츠를 연습하긴 했었는데 계속 이어 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의 문화유산인 톨레 또....

아름다운 강을 끼고 있는 그곳의 전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그곳을 보는 것만으로도 낭만 적인 감성이 절로 생길 것 같은 도시였다. 재순 언니와 나는 너무 사진 찍기에 열심히다 보니 모이라는 시간에 항상 맨 꼴찌였다. 그래서  언니와 나는 언제 부터인지 우리 팀에서 암암리에 관심대상이 되어 버렸다.

사실 나는 종교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성당들을 본다고 할 때는 사진만 찍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성당들을 하나하나 보니 세계의 역사공부도 되면서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유럽의 역사는 성당과 함께였고 또한 건축양식들도 시대 따라 달라서 어느덧 나는 스페인 성당들에 푹 빠졌다. 아니 세계 역사공부에 푹 빠졌다고 하는 것이 옳다.

생각보다 성당들을 보는 것은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흥미와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더욱 여행은 즐겁게 무르익어 갔다.

특히 세비야 대성당에는 콜럼버스의 관을 네 명의 왕들이 들고 가는 동상이 있다. 콜럼버스가 죽어서 누리는 추앙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그곳에는 콜럼버스의 무덤도 있다. 세비야 대성당을 관람하는 동안 나는 집에 가는 대로 콜럼버스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ㅎㅎ 한국 도착과 동시에 내 머리에서 콜럼버스는 사라졌다. 다만 그의 관을 네 명의 왕들이 메고 가는 사진만이 잘 간직되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는 내가 어느 순간 세비야 대성당의 역사와 건축물에 동화되어 남모르게 살짝 기도까지 했었다는 ㅎㅎ....

우리 팀들은  버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도 가이드에게 다른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기를 원해서 그는 쉴 수가 없었다. 우리 팀들은 여행의 즐거움을 아는 고수들이 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한 나는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후에 연금술사라는 책을 다시 한번 더 읽게 되었다. 2006년  연금술사가 베스트셀러 였을 때 책을 구입해서 읽었었는데 , 생각만큼 내 가슴에 와 닿지 않았었다. 8년이 지난 후 다시 연금술사를 보는 나의 마음은  뭔가 달랐었다. 아무래도 스페인 여행 다녀온 후라 연금술사에 나오는 여러 지명 들을 알고  또 다녀온 곳을 기억해 내서 읽어 내려가니  더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우리 팀이 알람브라 궁전을 가기 전에 론다를 관광하고 간 것은 아는데 어느 날의  일정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론다에서는 도착하면서부터 자유시간을 갖게 되었다. 재순 언니와 나는  높은 계곡까지 등반하고 사진을 찍고 내려올 때쯤 비가 살짝 내렸는데  비를 맞는 것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론다의 경관은 우리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땅이 넒어서 그런가 모든 자연경관들도 웅장함의 아름다움이 함께하는 듯했다. 재순 언니와 나는 10분 남겨두고 급하게 액세서리 가계에서  가죽 팔찌를 하나씩 샀다.

그리고 만나기로 한 장소로 달렸다. 우리가 도착하니 당연하다는 듯이 사람들이 버스 있는 곳으로 이동하려고 하는데,  가이드가 아직 네 사람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  확인해보니 여자네 사람이 한 팀인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30분 정도 지나니 네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온다.  시간을 착각했다고 한다. 사실 재순 언니와 나는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딱 맞추어 도착하는 맨 꼴찌였지 늦지는 않았었다.

론다에서 등산하고 ...잠시...이상하게 론다에서 찍은사진이 이것밖에 없다 ㅜㅜ


어찌 되었건 내 기억에 대망의 알람브라 궁전에 도착하게 되었다. 카를 5세의 궁전은 알람브라 궁전과는 건축이 다른 방식이었는데 알람브라 궁전이 섬세함과 화려 함이라고 한다면 카를 5세의 궁전은 남성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웅장함이 느껴졌다. 카를 5세의 궁전은 밖에서 보면 사각형의 건축물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원형의 넓은 터가 나오며 기둥들로 둘러싸여 있다. 기둥의 양식은 이오니아식과 도리아식으로 되어있었고 건물 밖의 벽면을 보면 아주 큰  쇠고리들이 벽에 박혀있는데 쇠고리의 용도는 말의 고삐를 메어두는 곳이라고 했다.


우리들은 카를 5세 궁전을 보고 나서 커피 마실 여유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스페인에서는 커피를 사 먹을 때도  팁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스페인 여행하면서 알게 되었다. 커피를 2잔 주문하고 보니 최수우 씨와 한국에서 함께 온 가이드분이 자신들이 주문한 커피값을 계산하려고 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두 분이 우리를 위해 애쓰는 데 물한병 대접을 못한 것이다. 나는 얼른 우리 것과 함께 계산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궁을 내려다보는 기분을 말로 어떻게 표현한단 말인가....... 나의 스페인 여행에서 알람브라 궁전은 나의 절제되지 않는 흥분의 절정을 맞이 했었다.

건축물과 자연이 내게 서정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을 주체하기에는  나의 가슴은 너무나도 작고 미미했었다.

건물 하나하나의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나의 상상은 그 시대의 무어인들을 머릿속으로 넣어 보았지만 뚜렷하게 확신이 서는 상상은 할 수 없었다.


우리는 그라나다에서 바르셀로나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최수우 씨와 함께 바르셀로나로 못 간다는 것이었다.  

"왜 우리와 함께 바르셀로나에 가지 않지요, 바꾸면 안 되어요?"

"함께 가면 좋긴 하지만. 그곳 가이드도 먹고살아야지요"

우리 팀은  그와 헤어짐을 아쉬워하면서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그라나다에서 출발해서  우리의 마지막 여행지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우리들은 피곤한 여장을 풀기 위해 숙소로 향했다. 우리들의 스페인 여정은 새벽부터 밤까지 강행군으로 이어졌었다. 시간은 많지 않고 다녀야 할 일정이 빡빡했기 때문이었다.

스페인에 단체여행으로 백인들도 많이 왔지만 그들은 우리들처럼 일정이 빡빡해 보이지 않았다.

단체여행이라도 일정을 조금 여유 있게 잡는 것이 좋지 않느냐고 한국에서 함께 온 가이드한테 말했더니, 일정을 여유 있게 짜면 우리나라 사람들 난리 난다고 한다.  나는 많이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곳이라도 여유 있게 천천히 즐기면서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허겁지겁 허겁지겁 정신없이 다니다 보니 뭔가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아침일찍부터 우리들은 몬세랏으로 떠나기 위해 서둘렀다.  몬세랏 수도원에 도착하니 여행객들과 성당에 미사를 보기 위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우리 팀들은 검은 성모 마리아 상을 보기 위한 줄에 합류했다. 재순 언니와 나는 팀을 이탈해서 성당 내부를 보고자 했지만 미사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사실 나는 검은 성모 마리아 상이나 성당 내부는 관심 없었다. 오히려 수도원 입구에 있는 성모상이나 몬세랏의 자연경관에  더 관심이 많았다. 바위산으로 병풍처럼 연결된 몬세랏의 전망대까지는 우리 팀은 가지 않았지만 케이블카나 다른 이동경로로 전망대를 올라가는 여행자들을 보니 내심 부러웠다.


드디어 건축가 가우디의 걸작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도착했다. 성당에 들어가기 위해서 30분 정도를 기다린 것 같았다. 다행히도 우리 팀은 가이드가 미리 티켓을 끊어 나서 그 정도 기다린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밖에서 기다린다고 해도 지루하지 않았다. 밖에서 보는 가우디 성당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이라면 건물의 사람 조각상들이 다 무엇을 말하는지 알 것이다.

어떠한 찬사도 아깝지 않은 가우디 성당은 안과 밖이 다 예술이다.

이럴 땐 나의 표현능력의 한계를 여지없이 느낀다. 가우디 성당은 누구의 표현을 빌려서 보는 것 보다도 직접 바르셀로나로 가서 봐야 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가우디 성당보다도 알람브라 궁전이 더 기억에 남는다.

시내 곳곳에도 가우디가 건축한 아름다운 건물들이 있었고, 거리는 비교적 깨끗하고 멋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내 눈길을 끄는 것은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 한가운데에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인도가 있다는 것이다.  폭도 넓고 가로수와 꽃들이 있고 벤치도 있는 산책하기에 좋은 그 길은 어딘지 모르게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나는 한국에 와서 자동차 도로를 볼 때마다 바르셀로나의 그 거리가 생각났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 금메달을  딴  몬주익도 빠뜨리지 않고 다녀왔다. 황영조 기념비에서 사진을 찍으며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FC바르셀로나 축구장에 갔을 때는 경기가 없는 날이라 축구장은 닫혀 있었지만, 돈을 주면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얼마 인지 기억에 없다.

재순 언니와 나는 축구장 맞은편 기념품상에 가서   FC바르셀로나 유니폼을 하나씩 샀다. 가우디의 작품 중 하나인 구엘공원에 도착했을 때는 날이 어두워져서 제대로 다 볼 수는 없었지만 꼭 동화의 나라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스페인 여행의 마지막 밤을 불태울 몬주익 분수쇼를 보기 위해 우리 팀들은 카탈루냐 국립미술관 계단에 자리를 잡았다. 멀리 보이는 분수를 보는 것보다 내려다보면서 즐기는 야경이 더 멋지고 운치 있었다.



나는 이 글을 쓰게 되어서  정말 기쁘다.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더 가보고 싶은 곳 스페인.... 그땐 조금 더 시간의 여유를 갖고 여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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