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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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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 냥이 Jun 23. 2016

소설/산다는 건 5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된다.

"흑흑흑......"

민영이 울면서 눈을 떴다. 식은땀으로 민영의 옷이 다 젖어있다.

그녀는 꿈속에서 깨어났지만,  꿈과 생시를 구분하지 못하고 서러움과 분노에 울고 있다. 남편 현우가 민영의 우는 소리에 부스스 일어난다. 민영이 현우를 보는 순간 치솟는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현우의 뺨을 향해 손을 날린다. 찰싹


얼떨결에 뺨을 맞은 현우는 화가 났다.

"이게 무슨 짓이야"

민영의 손을 잡고 소리치는 현우의 소리에, 민영이 넋을 빼고 쳐다보다가 다시 소리 내어

엉엉 울어 버린다.

민영이 현우의 큰소리에 정신 차리고 보니, 자신의 꿈속 감정이 현실을 인지 하지 못하고 그대로 분출된 것이다. 벌써 일은 벌어졌고 화난 현우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민영은  울었다.

현우는 처음엔 화가 났지만, 민영의 상태가 이상해서 잠깐 침묵하다가 무슨 일이냐고 조심스럽게 묻는다.

확실히 현실로 돌아온 민영이 꿈 때문이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다시 쓰러져 잠을 자는 척한다.

현우는 민영을 향해 몇 번을  괜찮냐고 물었지만 민영은 눈을 꼭 감고 쿨쿨거린다.


"뭐야 , 잠꼬대야. 이게 뭐야 자다가 뺨 맞고...... 어휴 저걸 그냥"

민영은 눈을 꼭 감고 꿈들을 다시 생각했다.

그녀의 꿈속에서는  현우가 그녀를 속이고 두 집 살림을 하며 살다가 발각되고도 너무나 뻔뻔스럽게 민영에게 큰소리치는 아주 가증스러운 상황이었다.

꿈속에선 분노에 차서 울며 마구 어디론가 뛰어가는 중이 었는데, 어떻게 꿈속의 감정이 그대로 민영의 가슴에 남아 있는지 가슴과 손이 벌벌 떨고 있었다. 여전히 흐르는 눈물을 참으며 잠을 청하는 그녀가 눈을 뜨니 아침햇살이 그녀의 창가로 환하게 비춘다.


그녀의 눈은 퉁퉁부어서 보기 흉한 몰골이 되었지만 출근하는 현우와 아이들을 위해서 토마토 주스를 준비한다.

그런 그녀의 등 뒤로 현우가 한마디 한다.

"야 ~너 혹시 어제 나 일부러 때린 건 아니지"

"무슨 말이야 "

"너 기억 안 나"

"뭐 "

"네가 어제 자다가 깨서 잠깐 울고 불고 하더니 내 따귀를 때리고 다시 잠들었는데, 기억이 전혀 없다는 거지 "

"그래... 난 기억은 없지만 , 내 눈이 왜 이렇게 부었는지 알겠네. 자 쥬스... 정말 내가 때렸다고요?"

민영은 괜히 찔리면서 갑자기 요 자가 붙여진다.


꿈은 자신의 잠재된 무의식 세계를 꾸는 것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민영이 어쩌면 요즘 선화 선배 때문에 그런 꿈을 꾸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너무 비약적이긴 꿈이긴 하지만......

요즘 현우는 선화를 자주 만난다.

선화는 민영의 대학 선배이고 현우와는 같은 경영학과 친구였다. 민영과 현우가 이곳 포천 산호아파트에 이사 온 지 5개월 정도 지날쯤 선화에게서 연락이 왔다.

졸업하고는  연락이 끊긴 채로 지냈는데 아는 친구를 통해서 현우가 포천으로 이사 왔다는 말을 듣고 선화가 만나자고 연락이 온 것이다.


선화는 포천과 가까운 의정부에서 산다.

현우는 대학 때의 친구를 만난다는 기쁨에,  선화를 만나기 며칠 전부터 들떠있었다.

사실 민영은 선화와 친하게는 지내지 않았었다. 한때 민영이와 함께 학보사 편집기자로 있던 태식 선배의 여자친구여서 가끔  오가며 인사 정도 하고 지낸 사이였다. 태식 선배가 워낙에 민영이를 예쁜 후배라고 잘 챙겨 주어서 선화가 민영을 곱게 보지는 않았었지만....

민영 또한 선화를 고운 시선으로 보진 않았었다.


민영의 기억으론 선화는 같은 과 친구 진호와 열렬한 CC였었고 진호는 현우의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그리고 현우는 태식과는 같은 동아리 활동으로 알게 된 절친이다. 태식과 진호는 나름 똑똑하기도 하고 장학금들을 받으면서 대학생활을 했다. 특히 태식은 무엇으로 보나 입학 당시 수석 합격한 꼬리 표가 붙어 다니는 학교 탑이었다.


진호와 선화는 어느 날인가 헤어지게 되었고, 그때 당시 선화는 울며 불며 난리를 치며 술이 잔뜩 취해서 현우의 자취집을 찾아갔고 깊은 밤을 보내고 아침에 나왔다는 소문을 들었었다. 그 당시 그들이 그날 밤을 어찌 보냈는지 그들의 속내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들을 향한 말은 많았다. 민영은 현우와 진호가 절친인 것을 알기에 남들이 하는 말을 속단하지는 않았었다. 대학 때만 해도 민영이 알고 지낸 선배는 태식과 진호였다. 진호보다는 태식과 더 많이 친했다고 할 수 있다. 진호는 민영이 학교 입학하고 지리를 잘 몰라서 우연히 도움을 받았고 우연히 또 같은 버스를 타고 다니게 되어서 조금 친해졌었다.  현우는 그들과 친구였기에 인사 정도만 하고 지낸 사이였었다. 진호는 선화와 왜 헤어졌는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며칠 뒤부터  선화는 태식을 보러 매일 같이 도서관을 갔다. 태식은 도서관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는 공부 벌레였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나서 태식과 선화는 사귀었다.

다행히도 태식과 진호는 친구가 아니었다. 현우만이 그들 셋의 친구였다. 절대 다 함께 모일 수 없는 친구....



이런저런 기억을 떨치면서 민영은 생각했다.

현우가 선화를 처음 만나러 가던 날을.......

군화도 군복도 자동차 세차도.... 그가 그날만큼은 여러 모로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역지사지.... 민영은 그런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민영 또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게 된다면 구질하게  차리고 나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현관문을 노크하는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앞집 도영 엄마가 커피타임 갖자며 자기 집으로 오라고 한다.

민영도 오래간만에 도영 엄마와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집을 나서기 전에 <칼의 노래>를 챙긴다. 며칠 전 도영 엄마한테 빌려온 책이다.

그녀들은 독서를 즐겨하고 책을 보는 취향이 비슷해서 대화가 매끄럽게 잘된다.


"이 책 보며 많이 울었다. 이순신 장군을  원래도 좋아했지만 더 좋아하게 된 것 같아. "

"저도요. 이것 좀 드셔 보세요. 저희 어머님이 쑥덕을 해서 보내 셨어요"

"좋겠다. 어머님이 이런 것도 해서 보내 주시고"

"에이, 돈이 얼마나 많이 가는 데어. 이런 것 안 보내도 되니까 , 돈보 내라는 말만 안 했으면 좋겠어요"

"하긴 월급쟁이가 돈이 어디 있다고...."

"그런데 오늘 바깥 선배님 기분 좋은 일이 있나 봐요? 아침에 엘리베이터에서 잠깐 뵈었는데 아주 좋아 보이던데요"

"ㅎㅎ 대학 때 친구와 연락이 되어서 오늘 만난다고...."


"그래요. 여자친구요"

"어, 어떻게 여자친구인 줄 알았어"

"딱 하면 딱이죠"

"난 사실 그 선배 맘에 안 들어. 우리 결혼식 비디오테이프를 빌려달라는 거야, 그래서 오늘 현우 씨가 비디오테이프 가지고 갔어. 그 선배가 예전에 사귀었던 태식이 선배를 보겠다고.... 사실 태식 선배는 교통사고로 죽었거든"

"어머, 그래요. 그 선배라는 분 그분을 못 잊어서 그러는 거예요?"

"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사모님 그 선배라는 사람 남편은 뭐하는데요?"

"대장항문과 의사야. 지금 현재는 의정부에 살고 있는데 서울로 이사 갈건가 봐. 애들은 지금 미국에 유학가 있는 것 같더라고"

"오호~~ 얼굴은요"

"현우 씨는 예쁘게 생겼다고 하는데... 나는 예쁘다기보다는 깔끔한 이미지.... 왜 사감선생 같은..."


"사모님은 어떻게 그렇게 너그러우세요? "

정말 그럴까 , 민영은 그녀의 외모에 대한 점수를 야박하게 쳐주고 있었다.

"친구인데... 그런데 이런 생각은 들어. 그들은 예전에 결혼까지 하려 했는데 태식 선배 집에서 반대해서 하지 못했어. 선화 선배 남편 입장에서 현우 씨가 조금만 생각했다면, 굳이 비디오테이프를 가져가야 했을까? 만약 자기 와이프가 선화 선배 입장이라면 그 사람은 오늘처럼 비디오테이프를 가져갈 수 있을까?  "

"어~~ 사모님 은근 화난 거 아녀요? 그런데 사모님은 성격 좋으세요. 저 같으면 벌써 반죽여나여'

"아냐 , 아니 어쩌면 조금은 기분이 상했을지도 모르지... 그렇게도 자동차 청소와 군화 깨끗이 닦으라고  해도 말 안 듣더니... 여자친구 만나러 간다고 하니까 알아서 다 하더라 ㅎㅎ"


"ㅎㅎ,  이해하면서도 은근 얄미운 거지요. 혹시 반지의 제왕 책으로는 읽어보셨어요. 저는 책 보다 영화가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빌려 드릴까요?"

"그래. 오늘은 이 책 끼고 살아야겠다. 그런데 내가 저번에 도서관에서 < 대지>를 빌려와서 읽고는 1편만 반납하고 2편은 꿀꺽했다. ㅎㅎ"

"뭐예요. 그런 짓을 ㅎㅎㅎ그런데 왜 어제 민혁이는 유치원 안 간다고 그랬어요? "

"ㅎㅎ 그게 자기네 반 애들이 애기들 같아서 싫다는 거야. 그래서 어제 원장님과 바로 상담하고 월반했다."

"민혁이가 형 때문에 빨라서 그래요"


집으로 돌아온 민영은 창문들을 활짝 열고 소라게와 햄스터들 집청를 해주고 베란다에 있는 화초에 호수로 물을 뿌려 주었다. 아이들이 소라게와 햄스터들을 키우겠다고 해서 민영이 사 주었는데 햄스터들이 얼마나 새끼들을 자주 많이 낳는지 고역이었다.

민영은 화초들이나  동물들 그리고 물고기들을 잘 키운다. 그녀는 아이들 돌보듯이 그들에게도 정성과 사랑을 듬뿍 준다. 그들에게 가끔 말을 걸어주는 센스도 발휘한다.

대충 다 끝내고 KENNY G의 색소폰 연주를 틀고 베란다 창가로 나와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로 시선을 돌리니 위층 아주머니가  민영을 내려다보면서 말을 건넨다.


"아이고 ~ 뭘 그리 넋을 빼고 봐"

"앞에 보이는 산이요. 오늘따라  더 멀어 보이네요"

"산이야 항상 그 자리일 텐데. 자기 맘이 오늘 허전한가... 좋다, 색소폰 연주"

" 석양 노을이 질 때 색소폰 연주를 들으면  낭만적인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느낌이 참 좋아요"

"왠지 자기는 그럴 것 같아 보여"


민영이 처음 색소폰 연주를 접하게 된 것은 결혼하고 집으로 초대된 현우의 후배가 CD 한 장을 선물하고부터이다.  KENNY G의 색소폰 연주는  다른 어떤 클래식 음악보다도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아서 태교음악으로 손이 많이 갔었다.

그가 들려주는 색소폰 연주는 그녀의 마음을 언제나 설레게 했다. 비록 그녀에게 색소폰 연주 CD라고는 단 한 장 밖에 없었지만.



저녁 늦게 퇴근한 현우는 선화와 만나서 기분이 좋았는지, 다음에 함께 <르네>에커피 마시러 가자고 한다. 민영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돋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민영은 기분이 마구 나빠지려고 했다.

조심스럽게 현우에게 물었다.

"선화 선배와 르네에서 커피 마셨구나" 민영은 가슴에 차오르는 분노를 조절했다.

"응, 포천에 커피숍이 없더라고"

"그래, 내가 시내를 나가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다방은 널렸던데. 다방에서는 커피 마시면 안됐나 보다"

민영은 자신도 모르게 현우를 향해 비아냥 거렸다.


"그래~ 다방에서 커피 마시기엔 좀 그렇더라. 그래서 너에겐 미안하지만 < 르네>를 갔어 "

민영은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끓어오르는 화를 참으려고... 요 자를 붙여야 했다.

"그래요. 다방에서 커피 마시는 것이 무엇이 이상하다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남의눈도 있고"

"친구 사이에 남의눈을 왜 의식하지요. 그럼 밥은 어떻게 먹었어요? 그리고 그렇게 남을 의식하면서 까지 왜 만나지요?................... 아니..... <르네>에서 저녁 먹고 커피를 마신 거군요."

민영의 가슴이 꽉 막혀 왔다.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는 듯해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때 마침 민기가 내일 학교 준비물을 깜박했는데 문구점을 가야 한다고 한다.

"그럼 엄마랑 얼른 다녀오자"

"내가 데리고 갔다 올까"

"아냐 내가 갈게... 가자" 민영은 자동차 키를 주머니에 넣으며 현관으로 나설 때 민혁이도 따라나선다.

"그런데 민기야 학교 준비물은 학교에서 다 주잖아"

"응 ,.... 내일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줄넘기가 필요하긴 해.... 그리고 엄마밖에 나가고 싶지 않았어"

"그래.... 그럼 축구장에 가서 주차하고 밤하늘 별들 보고 오자."

"알았어 엄마. 그럼 내가 민혁이 데리고 킥보드 타면서 운동장 한 바퀴 돌게"

며칠 전 운동장 다녀온 후  트렁크에서 꺼내 놓지 않은 킥보드를 아이들을 위해 꺼내 주고는 민영은 운동장 스탠드에 앉았다.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왜 갑자기 인생을 이렇게 살고 있는지 의문이 생겼다.

그녀는 '내가 뭐가 모자라서 저런 머저리 같은 놈의 비위를 맞추며 이제까지 살아왔냐고' 갖은 욕을 다하며 악을 악을 쓰면서 고래고래 소리 지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지만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가슴만 쓰러 내렸다.


<르네>는 가평을 지나 현리를 거쳐 포천 가까이 위치해 있다.

간단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양식과 커피를 파는 곳으로 민영이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었다.

민영은 그 예쁜 커피숍에서 한 번쯤 커피를 마셔보는 꿈을 꾸었지만, 매번 현우가 거절하는 바람에 가보지 못한 곳이기도 하다.


눈물로 흐려진 눈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민영은 위로한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커피숍에서 커피 마시는 게 무어라고/나랑은 안 갔지만 친구란 간 게 뭐가 어때서/

그냥 나도 어느 날 커피 마시고 싶으면 친구랑 가면 되는 곳인데/

그게 무엇이 어려워서/


민영은 눈물을 닦고 ,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향한다.


그 작은 고사리 같은 손이 이제는 너무나 커버린 나의아이들 ...민영이 오랫만에 CD를 하나 고른다....집안에 KENNY G의 섹스폰연주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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