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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비오 Nov 15. 2023

고통 속에서도 희망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신곡 세트(지옥 연옥 천국편) - 단테 알리기에리

 작가와 제목 정도는 학교 다니면서 여러 수업 시간에 언급된 정도로만 인지하고 있었다. 단테 알리기에리가 그저 작가가 아니라 중세 가톨릭 교회의 신앙과 교리에 큰 역할을 했었고, 정치적 활동으로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신곡(지옥/연옥/천국)’ 또한 중세 사회와 가톨릭 신앙에 있어 중요한 책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실제 읽어 보면서야 알게 됐다.


 그저 호기심이 아니라 단테가 그려내는 중세 시대의 정치 현실과 ‘지옥-연옥-천국’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드러내는 신앙적 철학들을 깊이 느껴보며, 나의 신앙이 좀더 공고히 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이 책은 작중 화자인 ‘단테’가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 영혼들의 공간(세계)인 지옥에서부터 연옥을 거쳐 천국의 과정까지 하늘에서의 여정을 순례자의 시선으로 경험해 보고, 그리고 각각의 단계에 있는 중세 시대의 (혹은 그 보다 이전 세대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신앙의 깊이와 철학적 화두들을 던져주고 있다.


 지옥에서 연옥으로, 연옥에서 천국으로 향하는 죽음 이후의 순례 과정을 통해 현세에서의 나의 행동과 생각들이 사후에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현세에서의 죄악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주며 오늘만 사는 우리에게 통렬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특히 현세에서 권력자이건 종교지도자이건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힘의 크기에 상관없이 자신이 저지른 죄악과 행실로 공평하게 사후 세계에서는 죄값을 다해야 하는 점은 실로 우리 신앙이 가지는 가장 기본 정신일 것이며, 늘 기도하며 믿으며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정확하게 성서적으로 맞는 개념인지는 모르겠지만 지옥과 연옥 모두 현세에서 저지른 죄악과 나쁜 행실들로 인해 무시무시한 형벌을 받게 되지만, 지옥은 끊임없는 형벌의 반복만이 있을 뿐이고 결국 연옥으로 나아가고 더 나아가 천국으로 향할 수 있다는 희망 자체도 소멸돼 버린 곳이었음을 깨닫고는 더더욱 몸가짐이나 행동에 대한 반추를 해보게 된다.


 현세에서건 사후에서건 무엇인가 나아지리라는 믿음이 없다면 삶의 의욕과 생활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 들 것이라 생각된다.


책은 서사시의 형태를 띄며 ‘지옥편’으로 시작하고 있는데, 의외로 술술 읽혀 놀라웠다.


 하지만, 텍스트로 읽혀지는 것과 달리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인물들에서부터 중세 종교 지도자는 물론 정치적 인물, 중세철학과 문화, 사상, 정치, 경제 등의 모든 것을 집대성하고 있어 내용을 이해하는 나의 인식의 수준은 정말 더디게도 쌓여갔다. 그럼에도 계속 손을 놓지 못했던 것은 아마도 중세 교회 철학과 신앙적 공고함, 그리고 지적인 만족감을 채우고 싶어서 였으리라.


 아울러, 죄와 그에 따른 형벌만이 무한히 반복되는 ‘지옥편’에서는 그 처절함과 무시무시함이 섬뜩하리만큼 크게 다가왔고, 그러한 끔찍함과 두려움이 바로 현세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타인을 배려하고, 모든 것들을 소중히 다뤄야 하는, 이 생을 치열하고도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리라고 생각해 본다.


 끔찍했던 ‘지옥’을 지나 구원을 얻는 과정으로 가기 위한 ‘연옥편’에서는 좀더 마음이 덜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건너가본다.


 현세에서 정치사회문화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고, 사랑과 선행을 베풀었던 인물일지라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지 못하고, 신앙을 거부하게 된다면 결국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명심하며 ‘연옥’으로 들어가 본다.


 지옥편을 건너오면서 책이 읽히는 속도도 그렇고 내용을 이해하는 깊이도 그렇고 무엇보다 책을 읽는 감정이 지옥편 보다는 좀더 덜 고통스럽고, 덜 절망적임을 느껴본다.


 연옥편은 죽음-심판-천국-지옥이라는 사말교리에 반해 ‘연옥’이라는 가톨릭 신앙 고유의 내세적 개념을 이해하게 되는 중요한 부분이며, 특히 가톨릭 신앙 안에서 나의 신앙 활동과 종교적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현세에서의 나의 기도와 행동들이 어떻게 앞서 기억할 선조들의 내세적 고통 치유에 도움이 되는지도 깨닫게 해준다.


 단순히 천국을 가기 위한 중간 단계로서의 ‘연옥’이 아니라, 그에 더해 현세에서 본인이 저지른 죄에 대한 충분한 ‘죄 갚음’의 과정을 수행하고, 반복적으로 고통을 당하면서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곳이다. 이에 더해 현세에서 본인을 기억하고 기도해주는 마음이 충분히 모여야만 천국에 오를 수 있다는 개념은 특히나 지금 내가 나와 나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위해 더욱 깊이있게, 신심있게 신앙 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앞선 지옥편에서도 느낀 바지만, 단테는 신곡을 저술할 당시 중세 유럽사, 정치사는 물론 교회사에도 통달하며 절묘하게 자신의 작품에 은유와 비유를 통해 녹여내고 있으며, 신앙에 바탕을 두지 않는 현실에서의 모든 활동들은 의미 없음을 또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예수님, 저희 죄를 용서하시며

     저희를 지옥 불에서 구하시고,

       연옥 영혼을 돌보시며,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


 단테 본인 또한 정치적 활동으로 고향에서 추방된 후 20여년간의 유랑 중에 써내려 간 작품이니만큼 당시의 시대상황에 대한 현실적인 비판은 물론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의 다양한 인물들과 신화적 이야기들을 빗대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다. 또한, 플라톤/토마스 아퀴나스/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철학자들은 물론 중세 교황과 황제들의 정치적 이야기들과 중세 당대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들까지도 녹여내면서 다양한 인물들의 천태만상을 보여주고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려주고 있는 듯 하다.


 더 없이 어려운 작품이고 특히나 당시 사회사, 종교사, 철학 등 모든 면에서 기본 지식이 바탕이 되지 않아 이해가 쉽지 않음에도 ‘단테의 순례여정’을 함께 하는 것은 다양한 학문적 깊이와 철학적이고 지적인 사고를 통한 지적 허영(?)을 충족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현세에서의 업적과 행위들이 구원의 희망에서는 크게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도 있다는 믿음과 그러한 믿음에 바탕을 두고 현세를 살아가며 지켜야 하는 ‘화두’들을 계속 던져주고 있어서 일 것이다.


 나부터 마음을 다스리고 기나긴 과정 속에서 찰나의 순간임을, 그리고 무엇보다 방황하는 당사자가 가장 불안하고 힘들어하고 있음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고, 더 나아가 품어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누구의 탓도 아닌, 나 스스로의 문제임을, 하루하루의 고통이 언젠가는 끝날 것이며 모든 것이 잘 되리라는,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견딜 수 있는 고통만 내려주심을,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방식이나 때가 아닌 하느님께서 정하신 방식과 시간에 우리에게 주실 것임을 깨닫고 힘든 여정을 버티고 이겨내보고자 한다.


 앞서 지옥이 신앙을 가지지 못한 채 끝이 없는, 희망 자체가 단절된 끝없는 고통의 연속임을 보여주고, 연옥은 계속되는 고통과 좌절 속에서도 언젠가는 천국에 올라가리라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현세에서 그를 기억해주고 기도해주는 힘이 크다는 점을 보여주었다면, 천국이란 말 그대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넘치는 낙원이며 이는 또한 사랑의 힘을 통해 현세에서도 천국의 마음을 느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단테는 이 모든 순례의 과정을 거대한 서사시의 형태로 써내려 갔으며, 수많은 중세 교회사, 유럽사, 미술사, 고대 신화 등 다양한 지식을 바탕으로 고대와 중세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얽혀 있는 과정을 보여주며, 현세와 사후의 세계가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고 또한 발전해 나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본인 또한 베아트리체라는 여인을 평생 사랑하며 그녀를 마음에 그리며 그녀에 대한 사랑의 연가를 통해 ‘사랑’의 중요성을 크게 생각하고 있었던 만큼, 사랑을 통해 현세에서의 모든 아픔이 치유되고 또한 천국에서의 평안함과 풍요로움도 누릴 수 있으리라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진정한 보금자리로서 온전한 평화의 위안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의 지식과 능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하느님에 대한 의지와 믿음과 사랑으로 이룰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또한 우리의 부족함도 하느님께 온전히 의지하며 서로 사랑하며 살아감으로써 가능해짐을 말하고 있다. (아마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사도로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등장시킨 것도 같은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특히 단테가 존경하는 베르길리우스가 연옥까지만 순례여행을 인도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천국에 가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길은 바로 우리들 스스로가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사랑하는 신앙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중세 정치와 결합하여 가문의 욕심을 먼저 생각했던 변질된 서구 중세 교회사의 잘못된 부분(교황의 세속화, 부패화 등)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올바른 신앙에 대한 화두를 고민하게 하는 가톨릭 교회사라고 할 수 있다.


 천국편의 마지막에 성모님에 대한 공경과 기도로 마무리하는 것 역시 마침 기도로 성모송을 바치는 미사를 떠올리게 하는 등 책의 전체적인 흐름을 신앙의 중요성과 그 안에서 하느님에 대한 전적인 의지와 신뢰, 그리고 사랑의 실천을 말하고 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긴긴 공부와 시험을 끝내고 결과에 상관없이 일단은 홀가분한 마음이다. 그럼에도 뭔가 가슴 안에 꽉 차는 느낌이 드는 것은 그래도 무의미하게 책을 그저 ‘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는 묘한 자부심도 느껴진다. 뭐든 두려워서 시작하지 않는 것 보다는 ‘일단 시작해보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고, 이 책을 5년 정도 후에 다시 한번 읽으면서 지금의 이 생각과 느낌과 비교해 보고 싶다.


 아울러, 책을 다 읽으면서 알게 된 단테의 신곡 원제는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희곡)’이며, 신곡(神曲)이라는 표현은 신들의 노래라는 일본식 표현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로 불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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