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
2023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집 - 안보윤 外
꽤나 자주,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익숙하지 않고 생소한 작가들이 많다는 건 또 그만큼 읽어야 하고, 알아가야 할 작품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리라.
안보윤 작가의 '어떤 진심'은 사이비(?) 종교 공동체에서 가스라이팅을 겪은 주인공이 다시 새로운 대상을 찾으며 적극적으로 포섭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소년심판이라는 시리즈에서 청소년 보호센터에서의 이중성 (겉으로 포장되는 착함의 이미지와 달리 실상은 집단적 차별과 폭행이 횡행하고 있다는)에 관련된 내용을 봤는데 많이 오버랩된다. 물론 가스라이팅을 통한 종교 공동체에서 특권적 지위를 누리는 인물에 대한 내용은 뉴스나 고발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도 접했던 부분이지만 그 대상자가 어떻게 생활을 하게 되고 (사랑이나 엄마를 빼앗겼다고 느끼게 돼가는 과정 등), 또 스스로가 어떻게 다시 그러한 논리들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행하는지에 대해 보여주면서 진실과 진심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안보윤 작가의 '바늘 끝에서 몇 명의 천사가' 또한 놀라움을 안겨다 준 소재였다.
이혼한 엄마가 아빠에 대한 복수심 (네 딸이 어떻게 죽는지 망가져가는지 보여주기 위해)의 감정으로 친딸에게 행했던 살인의 기억.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은 채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가까스로 일상'을 견디고 유지하는 인물을 보며 그 깊은 상처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 또한 아빠라는 이름으로,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소중했던 사람들에 대해 가슴 시린 상처와 아픔을 주지는 않았는지, 더 나아가 공포와 두려움을 주지는 않았는지 깊이 반성해본다. 앞으로라도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주지 않는 삶을 살아가도록 해보자.
문진영 작가의 '내 할머니의, 모든 것'은 그간 마음 속으로 설정하고 있었던 할머니에 대한 정형화된 생각(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패션에 무감각하며, 자기 삶을 우선시 하지 않는 등)을 다소 갸웃거리게 만든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수상집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박지영 작가의 '쿠쿠, 나의 반려밥솥에게'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부양하면서 겪은 일상을 웃음으로 희화화시켰는데, 그 내용들이 그저 웃고만 넘기기지는 못할 만큼 또 가슴 한켠을 아리게 했다.
'긴 병에 효자없다'는 말도 있듯이 아프신 부모님을 간호하며 생활하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을만큼 감당이 쉽지 않을 것이다. 하나의 미션을 수행하듯 연극을 하듯 아버지의 치매를 간호하며, 그 과정에서 등급별 케어 요금을 매겨 형제들에게 청구한다거나, 유투브에 치매 父子의 일상이라는 채널을 개설해 수익을 창출한다든가, 유쾌한 설정들 속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 같다.
아울러, '착한' 사람으로 규정지어진 인물이 일종의 '억압'적 상황 속에서 어떻게 '착하게' 살아가는지도 보여주고 있는데, 주위의 시선에 지나치게 신경쓰고, 어떻게 보여질까에 많은 고민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도 또 다른 의미를 안겨주는 것 같다.
남자친구와의 이별과 원치 않은 임신으로 인해 임신 중절 수술(작품에서는 '임신 중지'로 표현되는)을 결정하고 이후 버텨내는 일상을 보여주는 이서수 작가의 '엉킨 소매'의 경우도 정말 수없이 많은 현실에서의 케이스가 나올 것이라 생각해 본다.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낙태의 부당성과 윤리적 당위성, 생명의 소중함 등은 누구보다 깊게 공감하는 바이지만, 원치 않은 임신으로 당장의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여성'의 삶을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못하는 현실은 안타까움을 넘어서고 있다.
당연히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에 대한 생존권을 결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지만, 비단 윤리적인 문제만으로 견디고 지내라고 하기에는 현실에서 겪게 될 실제적인 난관을 개인적인 부분으로만 돌리기에는 너무 과한 처사가 아닐까 한다. 사회적 제도나 특히 사회적 시선이 개선되지 않은 채 윤리적 당위만을 강요하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교통사고로 영혼만 남게 된 주인공의 시선으로 사고 가해자, 또 다른 죽은 영혼, 자신의 남자 친구, 부모님 등을 바라보며 상대의 생각과 생활 등을 판단하게 만드는 위수정 작가의 '몸과 빛'은 실제 그런 현상(몸과 영혼이 분리되며 영혼으로 얼마간 지상에서의 삶을 정리할 기회를 갖는)이 있음직하긴 하다.
다만, 영혼의 시선으로 봤을 때 해결되지 않은 보여지는 사람들의 진심과 속내까지는 드러나지 않아 다소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굉장히 현실적이고도 직접적인 제목인 윤보인 작가의 '압구정 현대를 사지 못해서'는 옛 연인의 아들에게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법 (자신이 인생을 겪어왔던 방식으로)을 알려주는 주인공의 서사를 통해 책임감과 애틋함과 진정한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그저 무시해도 무방한 상황에서 그토록 진심으로 다가가는지, 그런 마음에 대해 알고 싶다.
한 시골 마을의 개발과 환경보존이라는 대립되는 주민들의 갈등 상황 속에서 좋은 가격에 매수하려는 인물을 등장시켜 그 속에서 벌어지는 마음의 부유를 보여주고 있는 이승은 작가의 '우린 정말 몰랐어요'는 뭔가 글을 급히 끝낸 느낌을 받았다.
인물들이 그러한 생각을 갖게 되는 전사에 대한 충분한 공감이 부족하다 보니, 결말에서의 급작스러운 화해(?)도 좀 생뚱맞긴 했다.
호평받는 정치평론가에서 현실 정치인의 보좌관으로 변모한 인물의 짧은 하루 밤과 낮을 보여주고 있는 이장욱 작가의 '요루'는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내 입장에서는 하등 무례하거나 결례를 범하지 않은 말과 행동들이 상대방에게는 그렇게 다가갈 수도 있음을 그래서 더욱 살아가기가 힘들고 무서운 현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책을 제대로 읽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닥치는대로 텍스트만을 읽지 않고 느끼고 생각하고 변화하며 읽고 싶다.
나의 이해의 속도를 잘 모르고 그저 읽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고, 속도와 양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함을 다시 한번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