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삶을 지지하고 이해하는 것이란
2023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이미상 外
정말 숙제처럼 무조건 읽어야 하는 책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빼놓지 않고 주문하고, 도착하면 거의 바로 손에 들고 끝날 때까지 놓지 못하는 흡입력이 있는 것 같다. 그만큼 현실적이거나 또는 非현실적이고 상상 속의 세계 안에서도 깊이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서 일 것이고, 그 안에서 나 또한 뭔가 마음의 정화와 힐링을 얻게 되는 것 같다.
수상작품집의 절반 이상이 읽었던 작품이고, 특히 김멜라 작가의 작품은 거의 서너차례 읽었던 후라 잠시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관행처럼 다시 또 읽게 됐다. 물론 책은 그때그때 내가 처한 상황과 현실에 비춰 다른 느낌을 준다는 나름의 당위성을 부여하면서.
대상 수상작인 이미상 작가의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은 처음 읽었을 때와는 확실히 던져 주는 느낌이 다르다.
그때는 그저 몽환적이고 뭔가 남성 중심적 세상 속에서 고모와 조카들이 겪은 에피소드를 통해 바라본 사회적 상황을 보여주는 것으로만 단편적으로 이해했었다. 이번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작품 속의 형식(액자 구조를 가져온 형식)과 철들지 않은 어른으로 ‘사고 뭉치’로만 여겨졌던 고모의 고민의 지점과 그 당시를 겪었을 아이들의 시선(특히 묵묵하기만 한 무경의 시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그저 사회적 시선으로 재단해버리는 특히 남성적 시각인 지배적인 주류의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나 또한 호의를 베풀고 있다고 착각은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본다. 그리고 무경이 말했던 ‘할 순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김멜라 작가의 ‘제 꿈 꾸세요’는 그저 망자의 추억과 관계의 정리에 대한 느낌에서 좀 더 확장돼 돌연사 한 화자(사실 성소수자로 자살 시도를 한 이력이 있는)가 삶에서 죽음으로 전환되면서 ‘깨어나는’ 과정에서 관계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들과의 소중함을 기쁨으로 변환하겠다는 마음이 새롭게 읽혀진다.
나의 죽음으로 슬퍼할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꿈’으로 가서 즐겁게 추억하고 작별 인사를 하겠다는 마음, 그리고 가장 소중했던 엄마의 ‘꿈’에 가서 해피엔딩으로 죽음을 바꾸겠다는 의지는 신앙인으로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자세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네가 태어났을 때 너는 울음을 터트렸지만 사람들은 기뻐했다. 네가 죽을 때에는 사람들은 울음을 터트리겠지만 너는 기뻐할 수 있도록 살아야 한다”는 말처럼, 생애를 후회없이 살아가고 싶다.
김멜라 작가도 말했듯이 “사랑하는 것은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것도 헛되지 않다”는 말처럼, 나를 사랑하고, 나의 소중한 관계들을 사랑하면서 그리고 사랑을 주면서 살아가기를 희망해 본다.
일전에도 뭔가 미스터리함을 느꼈음에도 확실한 마무리(?) 덕에 흥미롭게 읽었던 성혜령 작가의 ‘버섯농장’.
친구 사이에도 계층 간의 구분이 지어진, 그리고 진정으로 다 줄 수 있는 친구임에도 그 친구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깊이 공감을 못하는 관계까지, 그저 열심히 살아감에도 주어진 환경의 차이로 결국에는 아등바등할 수밖에 없는 청년 세대의 안타까움과 고달픔이 이번에는 좀 더 크게 느껴졌다.
비극적 결말이지만 그럼에도 속 시원히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그저 기성세대들은 ‘너희들이 게으르고 열심히 하지 않은 탓’으로만 돌려버리는 실제적인 현실이 갑갑하면서도 ‘나 만이라도’ 그러지 않기를, ‘꼰대스러워 지지’ 않기를 다짐한다.
또한 기성 세대의 눈이나 보수적이고 주류적인 관점에서 보면 철부지 행동으로 밖에 판단되지 않는 ‘동생(근희)’의 소위 노출 유투브 방송을 통한 ‘가장’으로서의 언니(문희)의 생각과 공감을 그려주고 있는 이서수 작가의 ‘젊은 근희의 행진’.
조금 앞서 나가고 생략된 면도 있고 특히나 갑자기 갈등이 급작스럽게 화들짝 해소되는 것이 생뚱맞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모든 존재로서의 자아들이 각자 처한 상황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고, 또한 해결책도 잘 알고 있음을,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더 염치도 있고 눈치도 있고 상황 파악도 하고 있음을 생각해 본다. 특히 그 존재가 아이들이라도, 동생이라도, 나약해진 부모님이라도 내가 나의 시선과 관점으로 그들을 재단하고 판단하고 이끌어가려고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
고단한 백년의 삶을 살아오며(어찌보면 견뎌오며) 이제는 사회의 주목을 받게 되는 서연화 할머니의 삶을 통해 소외된 존재로서의 ‘자기’를 돌이켜보고 있는 정선임 작가의 ‘요카타’ 또한 묵직함을 던져주었다.
실제 100년이라는 생을 살아온 자신의 생이 사실은 먼저 죽은 언니의 삶이며 (이름 또한 언니의 이름이다) 그저 삶을 생존하기 위해 일제 치하에서 일본인의 현지처(여기서는 외처라고 표현되고 있다)를 시작으로 인천 어시장에서 혼자 살며 한글을 익혀 나가고 있는 현재까지 그 고단함과 애달픔이 정말 덤덤하게 전해져 온다.
그저 귀찮아서 본인의 출생신고도 하지 못한 아버지를 시작으로 자신의 이름도 존재도 소멸된 채 그저 하루하루 견디고 살아왔던 100년의 삶(실제로는 96년의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야 자신의 존재성을 자각하고 인식해 가고, 또한 죽은 언니의 존재를 떠올리며 이제야 분리를 생각하는지 가슴이 먹먹할 따름이다. 그저 ‘시대가 그래서’, ‘여자들은 다 그래서’라는 말로 넘겨 버리기에는 잃어버린 할머니의 일생이 너무도 가엾다는 마음이다.
SF 형식의 소설인듯 너무나 확장해 버린 소설적 상상력인듯 처음에는 다소 생뚱맞고 공감이 어려웠으나 ‘자개장’은 그저 소재일뿐이고 그 속에 4대에 걸친 여성들의 삶과 서사를 들여다 보게했음을 깨닫게 해준 함윤이 작가의 ‘자개장의 용도’.
어린 시절 누구나 집에 있었을 자개장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4대를 이어져 온 여성으로서의 ‘증조모-조모-엄마-나’가 누구보다 주체적인 삶을 선택했을 그리고 삶으로 돌아왔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해방과 회귀의 여성 서사로 읽혀지고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주체적인 존재로서의 여성의 선택은 하지만 또한 결혼과 사회 제도가 만들어 놓은 틀 속에서 ‘더 멀리 갈 수 없음을’, ‘돌아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선택을 하게 되고, 결국에는 회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어 두 딸의 아빠로서 다소 먹먹하다.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한계에 본인 스스로들 규정지어 버리지 않고, 그저 멀리 더 멀리, 더 자유롭게 하고 싶은 바람들을 꿈들을 키워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고, 그러한 딸들의 제일 첫번째 지지자가 되어 주리라.
다소 생소한 ‘연필 샌드위치’라는 소재와 주제로 여성들의 모질게 이어져 온 희생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현호정 작가의 ‘연필 샌드위치’.
이 작품 역시 ‘할머니-엄마-나’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여성으로서 집안의 보조적인(?) 존재로서 역할을 했던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존재인) 자아들을 돌이켜 보고, 거식증과도 같은 증상에 걸릴 정도로 ‘부엌데기’로서의 우리 어머니, 아내, 자녀들의 존재를 규정지어 버린 모순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여성이 그저 남성의 보조적인 역할이 아니라, 여성 스스로 역할을 하고 꿈을 펼치고, 단순히 먹는 것에만 역할을 하고 기능하는 (소중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존재가 아니라 사회와 제도와 틀 안에서 역할하는 존재로서 당연해 지는 사회가 하루빨리 오기를 바래본다.
그저 재미로서 소설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상상을 더하며 내 삶에서 우리의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고, 또한 소설에서의 문제제기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소설에서 던지는 메시지와 주제에 공감하며 나 스스로가 먼저 변화하며 그러한 삶의 지지라로서 역할을 해보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