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AI의 못된 음모다!
틀림없다. 이것은 인간의 모든 감각을 빼앗아 인류를 자신의 노예로 삼기 위한 거대한 어둠의 음모가 되시겠다. 이제 곧 인간은 문자를 잃어버릴 것이고, 종이 넘기는 손끝의 감각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오직 눈과 귀만이 감각의 전부인냥 퇴화되어, 종국에 인간성 마저 완전히 상실하게 될 것이다. 아! 인류의 앞날이 바람 앞에 등불이다.
서론이 길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다. 대형 서점이 그렇게 많고, 곳곳에 동네 서점과 독립서점까지 넘쳐나지 않는가. 인스타그램만 봐도, 책 읽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이 무슨 말 같잖은 소리인가! 반문할 수도 있다. 한데 과연 그럴까?
이제 책읽기는 인류사 교과서에나 실리게 될 팔자다.
출근 시간이다. 당신은 서둘러 지하철을 탄다. 스르륵~ 문이 열린다. 주위를 둘러보자. 어떤가? 모두가 콩나물 대가리 같은 이어폰을 귀에 꼽고 각자 스마트폰을 쳐다보기 바쁘다. 유튜브를 보고, 쇼츠를 보고, 릴스, 틱톡, 게임을 한다. 맞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책 한번 들추는 사람이 없다. 아니다. 책이라는 것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가만, 바쁜 출근 시간이니 그럴 수 있다. 그렇다면 주말은 어떨까? 우리는 안다. 책 읽는 사람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책읽기는 인류사 교과서에나 실리게 될 팔자다.
인류사 교과서 8장 5절 : 인류의 지하철 행동 습성
오랜 옛날, 20세기의 인간들은 교통수단이었던 지하철에서 책과 신문, 잡지 등을 보며 미개한 여가 활동을 보냈다. 이는 인간의 오래전 잊혀진 행동양식이다. 이로써 책은 인류의 사라진 유물이 되었...
다나, 뭐라나. 아무튼 이런 암담한 미래가 곧 닥칠지도 모른다. 책 따위 읽지 않는다고 뭔 대수인가? 어차피, 고등학교까지는 신물나도록 교과서만 끌어안고 다니지 않았던가. 그러니 신물날 수 밖에.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어쨌든, 이것이 바로 빌어먹을 AI의 못된 음모다.
'윤동주의 서시의 두번째 구절이 뭐였더라?'
이제 사람들을 더이상 서재에 꽂힌 책을 꺼내지 않는다. 쓰~윽. 챗GPT한테 물어보면 그만이다. 뭐. 앞뒤 맥락이 없으면 또 어떤가. 바빠 죽겠는데, 시집 따위나 펼칠만큼 한가하지도 않다. 출퇴근 시간엔 스마트 폰을 열고 도파민을 잔뜩 적셔 줄 유튜브 숏츠에 빠져든다. 무거운 소설 따위는 팔자 좋은 소리다. 친구따위도 필요없다.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의 피드에 좋아요를 눌러주고 그들의 일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냥 행복하지 않는가 말이다. 어떤가? 이제 책 따위 없어도 인간에게 하등에 문제 될 것 같지 않다. 즐거운 일들만 가득하다. 아! 앞으로 인류의 미래는 어찌 될 것인가?
책을 다 읽은 후, 라면 냄비받침을 해도 좋다.
보후밀 흐라발 Bohumil Hrabal의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속 한탸는 프라하의 지하 작업장에서 35년 동안 폐지와 책을 홀로 압축해온 남자다. 그러니까, 쓰레기에 파묻혀 사는 독거 노인이 되시겠다. 한데 마냥 외로운 늙은이가 아니다. 그는 버려진 책들 속에서 철학과 문학을 읽고 느끼며 고독하지만 자신만의 삶은 만들어 온 남자다. 그렇다. 그에게 책은 단순한 쓰레기가 아니다. 그것은 온전한 자기 자신인 셈이다. 책 안에서 그는 끊임없이 사유하고, 삶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날, 세상이 변했다. 주인공 대신 들어선 기계들은 빠른 속도로 책을 분쇄하고 갈아버린다. 책은 더 이상 읽히는 존재가 아니라 처리하는 대상이 되버린 거다. 이제 더 이상 세상에는 자신이 설 자리가 없다. 그는 점점 고독해진다. 그래서 어찌했을까? 그가 책들과 함께 압축기 안으로 들어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이유다. 어째 슬프다!
이게 바로 AI의 거대한 음모다. 인류가 책읽기를 잊고, 인간성을 잃게 만들어 기계가 되던지, 혹은 스스로 압축기 안에 들어가 목숨을 버리거 하거나 노예로 만들려는 심사다. 아! 그동안 몰랐다. 그러니, 이제라도 다시 책을 펼치자. 책은 불편하다. 무겁다. 느리다. 그렇지만, 책을 펼치고 읽는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하나의 단어, 하나의 문장을 짚고, 곱씹고 느끼며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공감한다. 그리고 그 사유의 공감만이 우리가 인간임을 느끼게 한다.
그러니 책을 펼치자. 느리고, 불편하고, 쓸데없어서 좋다.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다. 손해볼거 없다. 책을 다 읽은 후, 라면 냄비받침을 해도 좋다. AI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먼훗날 AI가 습격해올때 책 페이지를 찢어 불쏘시개 삼아 못된 AI를 불싸질러도 될 일이다. 아니면 책이라도 집어던져, AI의 전원 버튼을 공격해보자! 그렇다. 아날로그만이 AI를 이긴다.
뭐 어쨌든, 책은 읽고 볼 일이다.
image : pickpik/B급 광고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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