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그림으로 AI를 물리치다

by BOX

이것은 한 못생긴 그림에 관한 이야기다. 아니 못 그린 그림에 대한 이야기다. AI 이야기하다 말고, 웬 한가한 그림 타령인가? 이해한다. 독자 여러분은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자! 자! 부디 인내심과 너그럽고 자애로운 마음으로 잠시만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리면 그릴수록 더 못난 그림이 되는 마법


스페인 북동부에 보르하 Borja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인구라고 해봐야 5천 명이 고작이다. 그러니까 스페인의 시골 촌구석이 되시겠다. 한데 이게 무슨 일인가. 이 보잘것없는 시골 마을이 세상에서 가장 주목받는 장소가 되고 말았다. 그러니까, 깡촌중에서 가장 유명한 깡촌이 되었다는 말씀. 이곳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보르하에 있는 자비의 성당에는 1930년 경 그려진 에케 호모, Ecce Homo(라틴어 : 보라, 이 사람을)라는 작은 벽화 작품이 있었다. 가시관을 쓴 예수 그림이다. 세월 탓인지, 그림이 훼손되자, 교회는 복원을 하기로 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재앙이 따로 없군!', '털복숭이 원숭이야 뭐야?'

81세의 아마추어 화가 히메네스가 복원한 그림은 충격적이었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복원을 위해 기부까지 한 원작자의 가족들은 히메네스에게 법적조치까지 취하겠다고 난리를 부린다. 그도 그럴 것이 원본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 없었다. 멀쩡한 예수가 7세 아이가 그릴 법한 그림이 되어 버린 거다. 맞다. 복원하면 복원할수록 이상하고 못생겨지는 마법에 걸린 까닭이다. 복원을 의뢰한 교회도, 원작자의 가족도, 복원한 히메네스도 멘붕이었다.


'이랬는데 요래됐슴당' 참 잘도 복원했다.


결국, 작업은 중단된다. 교회는 서둘러 그림을 치우려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마추어 화가 히메네스는 자신의 실력이 뭐가 문제냐며 따져 물었다고 한다. 며칠 말미만 주면 완벽하게 복원을 할 수 있다고 했다나 뭐라나. 아무튼 이래저래, 아주 엉망진창이 된 그림이었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이 못생긴 그림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든다. 아무도 모르던 시골 촌구석 마을이 전 세계 관광객이 찾는 성지가 되어버린 거다. 그렇다. 아주 못 그린 그림 한 점이 다 죽어가던 마을을 유명하게 만들어준 셈이다.


복원이 완벽했다면 어찌 됐을까? 뭐, 아무도 모르는 스페인의 시골 촌구석으로 그냥 남았을 테다.


에케 호모, Ecce Homo(라틴어 : 보라, 이 사람을), 제목 정말 찰떡이다. 복원할수록 더 못생겨지는 마법의 그림



보이뱀이 옳았다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는 여섯 살 때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렸다. 그림을 본 어른들은 말한다.


'꼬맹아, 왜 모자를 그런 거야?'


어른들은 그림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건 분명 코끼리를 삼긴 배불뚝이 보아뱀이 아닌가. 그런데도 이해를 못 하다니, 생텍쥐페리는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왜일까? 못 생긴 그림 때문이다. 맞다. 이게 다 생텍쥐페리 잘못이다. 그런 탓에 작가는 하등에 쓸모없는 그림을 포기하고 누구에게나 쓸모 있는 지리, 역사, 수학 등을 공부하게 됐다나. 아무튼.


못생긴 그림은 꿍꿍이를 만든다. 그렇다. 완벽하지 않은 그림은 보는 이를 상상하게 만든다. 무슨 말일까? 완벽한 그림 앞에서 사람들은 화가가 그려 놓은 빈틈없는 아름다움에 입을 떡 벌리고 만다. 감탄한다. '대단한 그림일걸!' 물개박수! 끝! 완벽한 그림은 상상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완벽하니까! 그렇지만 어딘가 허술한 그림은 만만하다. '이 그림은 대체 뭔가?', '내가 발가락으로 그려도 이보다 잘 그리겠어!' 상상을 하든, 비난을 하든 이상하게 끌린다. 사람 냄새가 난다.


그렇다. 못생긴 그림은 인간적이다. 매력적이다. 왜일까?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불완전 속에 상상이 빼꼼 똬리를 틀기 때문이다.


어른의 시선에 아이는 미숙하고 불완전한 존재다. 그러니 '보아뱀 따위가 코끼리를 삼켰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이나 하고, 이따위 말도 안 되는 그림이나 그리는 거지' 라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이런 젠장! 나이 드니 머리가 안 돌아가!'라며 자신을 타박만 한다. 그러게 진즉에 못생긴 그림이나 그릴 것이지. 뭐 어쨌든.


그런 탓에 못생긴 그림 그리기를 잊어버린 어른들은 이제 AI에게 잡아 먹힐 판이다.


'여어~ AI, 이게 뭔지 알아?'

'모자잖아!'

'아니,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래!'

'누굴 바보로 알아?'


'여어~ 이봐 AI, 보아뱀이 코끼리를 삼킨 그림을 그려줘!'

'무슨 말 같잖은 소리를 다하고 그래! 당신 제정신이야?'


결국 AI는 인간을 얼간이 칠푼이 정도로 생각하고 무시하기 시작한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라고? 바보 멍청이! 맞다. 이제 쓸모없다고 판단한 인류를 자신의 말밑에 두려 할 것이 틀림없다. 이렇게 해서 인류는 AI에게 정복되고 말았다는 슬픈 이야기... 라면 어떻게 될까?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못 생긴 그림을 그려보자. 진짜 못 그려서 창피를 당하면 어찌하냐고? 그럴 리 없다. 어차피 당신의 그림은 태어날 때부터 엉망이었다. 우리는 AI도 아니고 미대오빠, 누나도 아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다. 하지만 상상하는 온전한 존재다. 그러니 오늘부터 그림을 그리는 거다.


그래서 대체 AI로부터 어떻게 승리할 거냐고?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처럼 당신이 그린 못생긴 그림을 AI에게 보여주자. 당신의 그림에 혼미해진 AI는 회로가 꼬이고 정신줄을 놓게 된다. 틀림없다. 자, 어떤가? 인류의 미래가 당신의 손에 달렸다. 그렇다. 아날로그만이 AI를 이긴다.


연필을 들어라. 붓을 들어라!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말도 안 된다! 생각하면 당신은 이미 AI의 노예다






* 작가의 책 보러가기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8186152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557417


이전 04화AI에게는 버킷리스트가 없다